막차를 기다리는 승강장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다.
환풍기가 낮게 돌아가고,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고, 하루 종일 사람 이만 명을 실어 나른 콘크리트는 식으면서 아주 낮게 운다. 종로3가역 3호선 승강장은 지하 3층이다. 여름 저녁의 열기가 여기까지 내려오는 데는 반나절이 걸리는데, 한번 내려온 열기는 나갈 줄을 몰라서 습기가 되어 벽에 눌어붙는다.
스크린도어 위쪽 광고판에서는 여자 배우가 웃고 있었다. 화장품 광고였고, 그 옆은 임플란트, 그 옆은 법무사 사무실이었다. 종로3가의 광고는 늘 그런 순서로 붙는다. 젊음, 이빨, 소송.
형광등 하나가 죽어가면서 잘게 떨었다.
노인이 그 아래 서 있었다.
여름인데도 두꺼운 점퍼 차림이었다. 등이 굽어 목이 앞으로 나와 있어서, 가만히 서 있는데도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손에 든 것은 주먹 안에 완전히 들어갈 만큼 작았다. 형광등이 떨 때마다 그 표면에서 빛이 한 번씩 미끄러졌는데, 유리도 금속도 아니었다. 빛이 표면에서 튕겨 나오는 게 아니라 안으로 스며들었다가 잠깐 머물고, 그러고 나서야 나오는 것 같았다.
노인은 그것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오래 들여다보면 못 버릴 것 같아서였는지, 아니면 이미 육십 년쯤 들여다봤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멀리서 바람이 밀려왔다. 터널에서 열차가 밀어내는 공기가 승강장 바닥의 종잇조각을 한 번 뒤집어 놓았고, 이번 열차가 마지막이라는 안내 방송이 그 위로 흘렀다.
열차가 들어와 서고,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승객 대여섯이 내려서 계단 쪽으로 흩어졌다. 아무도 노인을 보지 않았다.
노인은 열차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열려 있는 문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열차 바닥과 승강장 사이, 열차 옆면과 스크린도어 사이에는 손바닥 하나쯤 되는 틈이 있다. 매일 수만 명이 밟고 지나가면서 한 번도 내려다보지 않는 틈.
노인은 손을 폈다.
떨어졌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열차가 내는 소리가 커서,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든 침목에 떨어지는 소리든 전부 그 안에 묻혔다. 소리가 났는데 못 들은 건지 정말 나지 않은 건지, 노인은 확인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나갔다.
노인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돌아섰다.
걸음이 느렸다. 왼쪽 무릎을 쓸 때마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8번 출구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한 번 멈춰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고, 다시 걸었다.
계단 위쪽에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났다.
형광등이 또 한 번 떨었다.
“삼촌, 나 진짜 오늘만 하고 안 나올게.”
한지오는 한숨을 참았다. 참는다고 티가 안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야간 근무 세 시간째였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안구 표면이 모래처럼 서걱거리는 시간이 있는데, 대개 세 시간째에 시작해서 다섯 시간째쯤 익숙해진다. 형광등 아래에서는 그게 더 심했고, 지하 3층과 1층 사이를 두 번 오르내린 조끼 안쪽 등판은 이미 젖어 있었다.
할머니는 종이박스 위에 양말 열두 켤레를 가지런히 펴놓고 앉아 있었다. 다섯 켤레 만 원. 매직으로 쓴 종이가 옆에 세워져 있었고, 자리는 3호선에서 1호선으로 넘어가는 환승 통로 한가운데였다. 길이가 이백 미터쯤 되고 천장이 낮아서 소리가 웅웅 울리는 곳. 하필 사람이 제일 많이 지나가는 자리였고, 하필 CCTV가 제일 잘 잡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밤 열한 시 반의 환승 통로에는 아직 사람이 있었다. 종각에서 술을 마시고 넘어온 무리가 어깨를 걸고 지나가고, 캐리어를 끄는 남자가 바퀴 소리를 길게 끌고 지나갔지만, 양말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 상행위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알지.”
“아시는데 왜 하세요.”
“몰라서 하는 사람이 어딨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지오는 조끼 주머니에서 안내문을 꺼냈다. 모서리가 닳아 하얗게 일어난 코팅지에는 도시철도법 몇 조에 따라 역사 내 상행위가 금지되어 있다는 문장이 굵은 글씨로 적혀 있고, 아래쪽에 과태료 액수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이 할머니에게 세 번쯤 읽어준 적이 있었다.
이번이 네 번째였다.
“학생.”
“네.”
“학생 몇 살이야.”
“스물셋이요.”
“우리 손자가 스물여섯이야.”
“…네.”
“걔는 취직했어.”
지오는 안내문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 손등에는 검버섯이 앉아 있었고, 양말을 정리하는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열두 켤레를 다 팔면 이만 사천 원. 그런 계산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해버린 뒤였다.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환승통로 상황 어때
박성호 주임이었다. 지오는 무전기를 들었고, 할머니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리 중입니다.”
그거 양말 할머니지
“네.”
그냥 둬. 열두시 반 되면 알아서 가셔
무전이 끊겼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어딘가 승리한 사람 같았다.
지오는 잠시 서 있다가 쭈그려 앉았다. 허리에서 뻐근한 것이 올라왔다. 무릎을 접을 때보다 펼 때 더 아프다는 것을, 그는 삼 년 전에 배웠다.

“어머니.”
“왜.”
“저기 기둥 뒤로 두 발짝만 가시면 안 돼요? 거기는 CCTV 각도가 안 나와요.”
할머니는 그를 한참 봤다.
그리고 종이박스를 들고 두 발짝 옮겼다.
지오는 허리를 짚으며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자기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잠깐 생각해 봤는데, 규정 위반은 아니었다. 안내는 했으니까. 그냥, 안내가 실패한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다.
사회복무요원한테는 권한이 없다.
이것은 지오가 복무 육 개월쯤에 완전히 이해하게 된 사실이었다. 조끼를 입고 명찰을 달고 무전기까지 차고 있으니 멀리서 보면 직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지할 수 없고 단속할 수 없고 체포는 당연히 안 되며, 신체 접촉은 원칙적으로 금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조차 규정상 권장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안내뿐이고, 안내가 무시당하면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안내하는 것이다.
작년 겨울에는 만취한 남자가 개찰구를 뛰어넘은 적이 있었다. 지오가 따라가서 멈춰 달라고 하자 남자는 돌아서서 그의 명찰을 손가락으로 툭 치며 말했다.
“너 공무원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다. 사회복무요원은 공무원이 아니다. 공무원 신분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는 조항이 있기는 한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지오는 늘 갔다.
누가 시비를 붙으면 갔고, 누가 넘어지면 갔고, 누가 울면 갔다. 간다고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고, 몇 번은 욕을 먹었고, 한 번은 밀쳐졌다.
그래도 갔다.
박성호 주임은 그걸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야, 너 그거 병이야.”
“무슨 병이요.”
“오지랖병. 그거 산재 안 나와.”
8번 출구 앞에서 남자 둘이 지도 앱을 들고 서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정확히는 화를 내는 건지 원래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는데, 태국어였고, 지오는 태국어를 몰랐다.
8번 출구는 피카디리와 단성사 사이 길에서 조금 올라오면 나오는 사거리에 있다. 거기서 한쪽으로 꺾으면 익선동 골목이 시작된다. 좁고 낮고, 밤이 될수록 사람이 많아지는 골목. 사거리 모퉁이에는 갈매기집이 있고 그 앞 인도에는 늘 플라스틱 의자가 나와 있다.
여름밤 종로의 냄새는 늘 비슷하다. 연탄과 기름, 뜨거워진 아스팔트, 그리고 어디선가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 골목 안쪽에서는 웃음소리가 계속 밀려 나왔다.
“Where you go?”
둘이 동시에 그를 봤다. 한 명이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낙원상가가 찍혀 있었다.
지오는 팔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That way. Five minutes.”
남자가 고개를 젓더니 화면을 두 번 눌러 저장된 영업시간을 보여줬다. 오전 열한 시.
“Now? No. Close.”
“…Close?”
“Yes. Close. Sleep.” 지오는 두 손을 모아 뺨에 대는 시늉을 했다. “Everybody sleep.”
남자 둘이 서로를 봤다. 그러더니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때렸다. 세게는 아니었고, 맞은 쪽이 뭐라고 길게 말하자 때린 쪽이 더 길게 받아쳤다.
지오는 웃었다. 오늘 처음이었다.
“Hotel? Where hotel?”
남자가 다시 누른 화면에는 종로5가가 떠 있었다.
“Okay. Follow me.”
그는 개찰구까지 데려다주면서 교통카드 충전하는 법을 알려주고, 1호선 승강장 방향을 짚어주고, 몇 정거장인지 손가락으로 세어 보였다. 손가락 하나. 종로5가는 한 정거장이었다.
남자 둘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고, 지오도 고개를 숙였다.
이런 건 권한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이런 게 제일 쉬웠다.
돌아오는 길에 낙원동 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지상으로 올라온 김에 크게 도는 것은 지오가 만든 습관이었다. 시킨 사람은 없었다. 다만 여기서 뻗은 사람은 결국 역으로 흘러들어 오고, 흘러들어 오면 자기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낙원상가 뒤편으로 들어가면 좁은 골목이 하나 나온다. 간판이 낮게 붙어 있고 계단이 지하로 내려가고 문 옆에 작은 등이 하나씩 켜져 있는 골목인데, 이 골목의 하루는 밤 열두 시부터 시작된다.
소주방 목련 앞, 계단 두 번째 칸에 사람이 하나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지오가 다가가는데 문이 먼저 열렸다.
“어머.”
정 사장이었다. 오십 대에 앞치마 차림, 손에는 물수건.
“얘 좀 봐.”
“안녕하세요.”
“얘 좀 보라니까. 기럭지 봐라, 얘.”
정 사장이 옆 가게 쪽에 대고 목소리를 높이자 그쪽 문도 열렸다. 거기 사장은 더 나이가 많았다.
“뭔데.”
“우리 지오 왔잖아.”
“어머, 진짜네.”
“내가 저번에 말했지? 얼굴이 그냥…”
“됐다 그래.”
“안 됐어. 얘가 지금 나라 지키느라 이러고 있는 거야.”
“지하철 지키는데요.”
“그게 그거지.”
지오는 계단에 앉은 손님을 가리켰다.
“이분 댁이 어디세요?”
“아, 걔.” 정 사장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택시 불렀어. 곧 와.”
“안 오면 역으로 오세요. 자정 넘으면 셔터 내려가니까 8번 출구로.”
“어우, 얘 봐. 얼마나 야무져.”
“저 갈게요.”
“야, 잠깐만.”
정 사장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나왔다.
“이거 가져가.”
“뭔데요.”
“계란말이. 남았어.”
“괜찮아요.”
“안 괜찮아.”
오늘 세 번째였다. 다들 그 말을 했다.
지오가 받아 든 봉지는 아직 따뜻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너 언제 전역해?”
“내년 봄이요.”
“아이고.”
“…왜요.”
“아까워 죽겠네.”
옆 가게 사장이 끼어들었다.
“뭐가 아까워.”
“그때 되면 못 보잖아.”
지오는 인사를 하고 골목을 나왔다. 등 뒤에서 두 사람이 뭐라고 계속 말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용은 안 들리고 웃는 소리만 들렸다.
봉지가 손안에서 따뜻했다.
역무실에 분실물이 세 개 들어왔다.
역무실은 좁다. 책상 셋과 캐비닛 둘, 모니터 여섯 개가 붙은 CCTV 월이 벽 하나를 차지하고, 구석의 정수기 옆에는 우산통이 있다.
첫 번째 분실물은 우산이었다. 우산은 매일 들어온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들어와서 통에는 언제나 스무 개쯤 꽂혀 있는데, 주인이 찾아가는 것은 일 년에 두어 개다. 나머지는 석 달을 채우고 처분된다. 지오는 그 처분 목록을 세 번 작성해 봤다.
두 번째는 틀니였다.
“…주임님.”
“왜.”
“이거 어떡해요.”
박성호가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숙였다. 그는 야간이면 늘 서류를 붙잡고 있는데, 실제로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기록해.”
“뭐라고 기록해요.”
“의치.”
“의치요?”
“틀니라고 쓰면 좀 그렇잖아.”
“뭐가 그런데요.”
“…그냥 그래.”
지오는 대장에 '의치 한 점'이라고 적으면서, 이걸 잃어버린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일지 잠깐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틀니를 빼는 순간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그리고 그걸 빼놓고 잊을 만큼 정신없는 밤이란 어떤 밤일까.
세 번째는 흰 봉투였고, 안에는 현금 삼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박성호가 봉투를 한참 들여다봤다.
“이건 경찰 넘겨야지.”
“네.”
“…야.”
“네.”
“세상에 틀니 잃어버리는 사람이랑 삼십만 원 잃어버리는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역에서 나오는 게 말이 되냐.”
“안 되죠.”
“근데 되네.”
박성호가 봉투를 봉인 봉투에 넣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이 잘 안 찍혀서 두 번 찍어야 했다.
“그래서 여기가 종로3가야.”
막차가 나가면 역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된다.
셔터가 내려가고 편의점 불이 꺼진다. 조명이 절반으로 줄면 남은 절반이 만드는 그림자가 통로를 길게 자르고, 소리는 이상하게 멀리까지 간다. 백 미터 밖에서 누가 기침을 하면 그것까지 들린다.
지오는 이 시간을 좋아했다.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말하면 이상한 사람 같으니까. 그런데 사람이 없는 지하철역에는 정말로 이상한 종류의 평화가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는, 그냥 콘크리트만 있는 시간.
순찰을 돌았다. 3호선 승강장, 1호선 환승 통로, 5호선 승강장, 화장실, 계단 밑, 자판기 뒤. 계단 밑에는 가끔 사람이 있는데 오늘은 없었다.
3호선 승강장 끝에서 그는 걸음을 멈췄다.
이유는 없었다. 순찰 동선상 여기서 돌아서면 되는데, 오늘은 그냥 몇 초 더 서 있었다.
스크린도어 유리에 이마를 대고 너머를 봤다.

선로는 검었다. 조명이 반으로 줄어 자갈도 침목도 구분되지 않았다. 저 아래 어딘가에 지난 백 년 동안 사람들이 떨어뜨린 것들이 다 있을 거라고, 언젠가 박성호가 말한 적이 있었다. 동전이랑 안경이랑 반지랑 이어폰. 아무도 못 찾은 것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지오야
“네.”
너 저녁에 뭐 먹었냐
“편의점에서 김밥이요.”
…내일 형이 국밥 사줄게
“괜찮아요.”
안 괜찮아. 야간 뛰는 애가 김밥이 뭐냐 김밥이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전기를 조끼에 걸고 유리에서 이마를 뗐다. 유리에 자국이 남아서 손등으로 문질러 지웠다.
돌아서서 걸었다.
형광등 하나가 잘게 떨고 있었다.
그는 그것도 신고 목록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