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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4

선로

01:45

승강장 끝, 차막이 옆에는 선로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이라기보다 사다리에 가깝다. 폭이 좁고 각도가 급하고, 난간을 잡으면 손에 쇳가루가 묻는다.

박성호가 먼저 내려갔다. 세 칸쯤 내려가서 한 번 멈추고 위를 봤다.

“천천히 와.”

“네.”

지오가 난간을 잡았다.

내려가는 동안 이상한 생각이 잠깐 스쳤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누가 실수로 전기를 넣으면 어떻게 되나. 그러자 박성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에는 없어. 만약에가 있으면 아무도 못 내려가.

발이 자갈에 닿았다.

선로는 생각보다 넓다.

승강장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좁아 보이는데 실제로 서 보면 양쪽 벽까지 거리가 꽤 되고, 무엇보다 승강장이 눈높이보다 위에 있다. 세상이 한 층 올라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발밑은 도상 자갈이라 밟을 때마다 발목이 흔들렸다. 그 사이로 침목이 규칙적으로 누워 있고 그 위에 레일 두 줄이 얹혀 있는데, 레일은 위쪽만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하루에 수백 번씩 쇠가 쇠를 문지르면 그렇게 된다.

승강장 쪽 벽을 따라서는 도랑이 하나 나 있었다.

물이 흐른다. 늘 흐르고, 여름에는 더 많이 흐른다. 지하 3층까지 내려오면 벽에서도 스며 나오고 위에서도 떨어져서, 그것들이 전부 이 도랑으로 모여 어딘가로 빠진다. 폭은 한 뼘쯤 되고 깊이는 알 수 없다. 손전등을 비추면 검은 물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지오는 그 물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하루에 수십만 명이 저 위를 지나가는데, 그 아래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물이 계속 흐르고 있다.

냄새도 있었다. 쇳가루와 기름과 먼지, 거기에 물비린내가 한 겹 섞인 냄새. 그 아래에 뭔가 더 오래된 냄새가 하나 있는데 지오는 그게 뭔지 아직도 몰랐다. 백 년 된 지하 공간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머리 위로는 전차선이 지나갔다. 검은 선 하나가 터널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 저기에 아까까지 천오백 볼트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관제가 말했다.

“손전등 아래로.”

“네.”

“위 보지 마. 목 아파.”

01:50

“몇 번째 문이라고?”

“네 번째 칸, 두 번째 문이요.”

박성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손님이 그러셨어요.”

“…정확하네.”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 시간을 그 자리에 서 있으면 그 정도는 외운다. 아마 그 여자는 지금도 자기가 몇 번째 타일 위에 서 있었는지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승강장을 따라 걸었다. 위쪽에 스크린도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아래 콘크리트 벽에 흰 페인트로 번호가 찍혀 있었다. 4-1. 4-2.

“여기다.”

박성호가 손전등을 내렸다.

빛이 자갈 위를 훑고 지나가는데 검은 것, 검은 것, 전부 검은 것이었다. 자갈은 원래 회색이지만 여기 자갈은 오래돼서 다 검다. 그 위에서 검은 휴대폰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런 건 대개 튄다.”

“튀어요?”

“떨어지면 튕겨서 굴러. 옆으로 일 미터쯤.”

두 사람이 갈라졌다. 박성호가 벽 쪽, 지오가 레일 쪽.

지오는 쭈그려 앉았다. 허리가 당겼다. 무릎을 접는 것은 괜찮은데 이 자세로 오래 버티는 것이 문제였다.

손전등을 낮게 들고 자갈 사이를 훑었다. 담배꽁초가 있었고, 언제 것인지 모를 영수증 조각이 있었고, 동전이 하나 있었다. 십 원짜리였다. 지오는 그것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뭔가 검고 각진 것이 보였다.

“주임님.”

“찾았어?”

“…아뇨. 이거 남의 폰인데요.”

박성호가 왔고, 손전등 두 개가 한 곳을 비췄다.

폴더폰이었다. 액정이 완전히 깨졌고 배터리 커버가 없고 뒷면에는 흙이 굳어 붙어 있었다.

“이거 몇 년 된 거예요?”

“몰라. 한 십 년?”

“…십 년이요?”

“여기 밑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박성호가 그것을 집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도 대장에 올려야 돼요?”

“올려야지.”

“주인을 어떻게 찾아요.”

“못 찾지.”

“…근데 왜 올려요.”

“규정이니까.”

02:05

휴대폰은 처음 지목한 자리에서 일 미터 반쯤 떨어진 곳, 레일 바깥쪽에 있었다.

박성호 말대로 튕겨서 굴렀던 것이다. 지오가 먼저 봤다. 검은 케이스가 자갈 사이에 반쯤 박혀 있었고, 손전등을 비추자 뒷면에서 흰 것이 보였다.

곰이었다.

“찾았어요.”

“어디.”

“여기요.”

박성호가 손전등을 비추더니 짧게 웃었다.

“운 좋네.”

“왜요.”

“봐.”

폰에서 도랑까지는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이십 센티, 많아야 삼십 센티.

“저기 빠졌으면 못 찾아.”

“…물이 어디로 가는데요.”

“몰라. 아무도 몰라.”

지오가 집어 들었다.

케이스 오른쪽 위 모서리가 뜯겨 나가 있었다. 거기가 먼저 바닥에 닿은 모양이었다. 그 자리를 기준으로 액정에 금이 하나, 위쪽 모서리에서 화면 가운데까지 사선으로 가 있었다. 케이스가 없었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원 버튼을 눌러봤지만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안 켜지는데요.”

“배터리 나갔겠지. 다섯 시간이면.”

“깨졌잖아요.”

“액정만 깨진 거일 수도 있고.”

지오는 그것을 손수건에 싸서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박성호가 손목시계를 봤다.

“됐다. 올라가자.”

“네.”

박성호가 먼저 돌아섰다.

지오는 돌아서지 않았다.

돌아설 이유가 없는데도 그냥 한 번 더 봤다. 손전등을 왼쪽으로, 아까 안 본 쪽으로 천천히 옮겼다.

여기까지 오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그 여자는 물도 마시지 않고 대합실에 앉아 다섯 시간을 기다렸고, 이 아래에는 십 년 된 폴더폰이 굴러다니고, 주인을 못 찾을 게 뻔한 물건이 그래도 대장에는 올라간다.

한 번 더 보는 게 손해는 아니었다.

“뭐 해.”

“금방요.”

“야, 오래 있으면 안 좋아.”

“네.”

빛이 자갈 위를 지나갔다.

그리고 뭔가에 걸렸다.

02:10

처음에는 유리 조각인 줄 알았다.

자갈 사이에 작은 것이 끼어 있고 손전등 빛이 거기서 한 번 튕겨 나왔는데, 지하철 선로에서 유리 조각은 흔하다. 병뚜껑도 흔하고 거울 파편도 흔하다.

지오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두 걸음 가서 멈췄다.

빛이 이상했다.

유리는 빛을 튕긴다. 각도가 맞으면 반짝하고 안 맞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데 아까 그것은 튕기는 게 아니었다. 빛이 표면으로 스며들었다가 잠깐 머물고, 그러고 나서 나왔다. 물속에 손전등을 비출 때와 비슷한, 그러나 그것과도 다른.

지오는 돌아가서 쭈그려 앉았다.

자갈 두 개 사이에 그것이 끼어 있었다.

주먹 안에 완전히 들어갈 크기였다. 모양은 딱히 규칙적이지 않아서 깎아 만든 것 같지도, 자연스럽게 굴러다닌 것 같지도 않았다. 색은 검은데 완전한 검정은 아니었다. 아주 짙은 붉은색을 검정에 섞으면 저런 색이 나올 것 같았다.

손전등을 가까이 대자 빛이 표면 안쪽으로 조금 들어갔다. 그리고 잠깐 머물렀다. 그러다 나왔다.

“…뭐야.”

지오는 손을 뻗었다.

손을 뻗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 순간을 여러 번 다시 떠올리게 되는데, 그때마다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을 한 기억이 없었다.

손끝이 닿았다.

차가웠다.

지하 3층에서 밤새 식은 돌이니 차가운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가락이 닿는 그 지점만 차갑고 나머지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보통 차가운 것을 만지면 손 전체가 반응하는데.

지오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무거웠다. 크기에 비해 확실히 무거워서, 손바닥 안에서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야, 뭐 있어?”

박성호 목소리가 뒤에서 났다.

지오는 손을 폈다.

“이거요.”

박성호가 와서 손전등을 지오 손바닥에 비췄다. 이 초쯤 봤다.

“…쓰레기잖아.”

“쓰레기예요?”

“돌이네 뭐. 아니면 뭐 유리 녹은 거.”

“이런 게 왜 여기 있어요?”

“여기 없는 게 뭐가 있냐.” 박성호가 몸을 폈다. “버려.”

“…네.”

“올라가자. 손님 기다린다.”

박성호가 돌아섰다.

지오는 자기 손바닥을 봤다.

버리라고 했으니 버리면 됐다. 여기 있던 것이니 여기 두면 됐다.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펼 이유를 찾지 못했다. 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펴는데 그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예뻤다. 그런 것을 이유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오는 그것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가요.”

“응.”

두 사람이 사다리 쪽으로 걸었고, 지오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02:25

대합실 형광등은 여전히 절반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을 보자 일어섰다. 일어서다가 가방을 떨어뜨렸는데 줍지 않았다.

지오가 손수건을 폈다.

“이거 맞으세요?”

여자가 그것을 봤다. 그리고 두 손으로 받았다.

“…네.”

“액정에 금이 갔어요. 케이스 모서리가 좀 깨졌고요.”

“네.”

“전원이 안 켜지는데, 배터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네.”

여자는 계속 네, 만 했다.

폰을 양손으로 잡고 뒤집어서 곰 스티커를 확인했다. 스티커는 멀쩡했다. 다시 뒤집어 금 간 액정을 보고, 손가락으로 그 선을 따라가려다 말았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켜지지 않았다. 한 번 더, 이번에는 길게 눌렀다.

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박성호도 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눌렀을 때 화면이 아주 잠깐 하얘졌다가 꺼졌다.

여자가 숨을 들이켰다.

“…살아 있는 거죠?”

“충전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렇죠?”

“네.”

“살아 있는 거죠.”

“네.”

여자가 폰을 가슴께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우는 것은 아니었다. 우는 것은 아닌데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박성호가 헛기침을 하고 서류를 뒤적였다.

“수령 확인만 하나 해주시면요.”

여자가 고개를 들고 서류에 이름을 적었다. 이번에는 종이가 파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정말 감사합니다.”

“…네.”

여자가 나가면서 두 번 돌아봤고, 두 번 다 고개를 숙였다.

셔터 옆 비상문이 닫혔다.

02:40

역무실로 돌아왔다.

박성호가 조끼 주머니에서 폴더폰을 꺼내 책상에 놓자 흙이 조금 떨어졌다.

“이거 대장 올려.”

“네.”

“품명은… 뭐라고 써야 되냐.”

“휴대전화 한 점이요.”

“쓸 만하게 써. 감사 오면 걸린다.”

지오가 대장을 펴고 적었다. 휴대전화 한 점, 파손, 습득 위치 3호선 상행 4-2 부근.

적으면서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이 거기 있었다.

여전히 차가웠다.

두 시간 반을 사람 체온 옆에 있었으면 미지근해져야 정상인데 아니었다. 지오는 그것을 잠깐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야간 근무 여덟 시간째였다. 눈이 뻑뻑한 단계는 이미 지났고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단계였다.

“야.”

“네.”

“국밥.”

“…네?”

“오늘은 진짜 먹으러 간다.”

박성호가 서류를 덮었다.

“여섯 시에 여는 데 있어.”

지오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네.”

주머니 안에서, 돌은 식지 않는 차가움으로 가만히 있었다.

End of Episode
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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