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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9

1호선

나흘 뒤

지오는 방법을 하나 찾았다.

돌을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이었다. 당연한 방법인데 그동안 해보지 않았다. 조끼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 습관이 돼서, 그게 선택지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던 것이다.

첫날은 서랍에 넣었다. 양말 밑에 넣고 서랍을 닫았다.

그날 잘 잤다.

여섯 시간을 통으로 잤고 꿈도 꾸지 않았다. 일어났을 때 방이 멀쩡했고 몸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지현이 냄새 얘기도 하지 않았다.

둘째 날도 그랬다.

셋째 날에는 서랍을 열어 확인했다. 돌은 거기 있었다. 여전히 차가웠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오는 서랍을 닫았다.

끝난 건가, 싶었다.

19:40

비가 왔다.

여름비는 종로에서 특히 성가시다. 지하 통로로 물이 들어오고 계단이 미끄러워지고, 우산 든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짜증이 쌓인다. 역무실에는 우산 관련 민원이 하루 스무 건씩 들어온다.

비 오는 날 승강장에는 사람이 더 많다. 다들 지하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늘 미친 날이네.”

최유진이 젖은 어깨를 털면서 들어왔다.

“밖에 많이 와요?”

“장난 아니야. 8번 출구 앞에 물 고였어.”

“양수기 돌려야 되나.”

“아직은 괜찮은데 더 오면 몰라.”

박성호가 시계를 봤다.

“오늘 조심들 해. 이런 날 꼭 뭐 터져.”

21:15

무전이 왔다.

3호선 상행 승강장, 여성 승객 신고. 성추행

지오는 이미 뛰고 있었다.

3호선 승강장은 사람이 벽처럼 서 있었다.

비 때문에 접힌 우산들에서 물이 떨어져 바닥이 미끄러웠고, 열차가 방금 나가서 다음 열차는 삼 분 뒤였다.

승강장 중간에서 여자 하나가 남자 팔을 잡고 있었다.

“이 사람이에요!”

이십 대 초반이었다. 목소리는 떨리는데 손은 놓지 않고 있었다.

“이 사람이 아까부터, 세 번이나…”

남자는 사십 대쯤 됐다. 회사원처럼 입었고 접은 장우산을 들었고, 표정이 이상하게 태연했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세 번이나 그랬잖아요!”

“사람이 많으니까 닿았겠죠.”

“세 번이요.”

“아가씨, 여기 지하철이에요.”

지오가 사이에 들어섰다.

“손님, 잠깐 저쪽으로 가시죠.”

“뭔데요, 당신은.”

“직원입니다.”

남자가 지오의 명찰을 봤다. 조끼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공익이네.”

지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시간도 없었다.

“손님, 저기 벤치 쪽으로만 잠깐…”

남자가 여자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뛰었다.

21:17

환승 통로는 이백 미터다.

3호선에서 1호선까지 걸어서 삼 분, 뛰면 사십 초.

남자가 사람들 사이로 어깨를 밀며 뛰었다. 비 오는 날 저녁 아홉 시의 통로는 가득 차 있었고, 누가 넘어졌고, 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지오가 그 뒤를 따라갔다.

“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

사람들이 갈라졌다. 갈라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무전기를 입에 댔다.

“1호선 방면 도주 중, 사십 대 남성, 회색 정장, 검은 우산.”

보안관 3호선 쪽으로 갔는데

“돌려주세요!”

1호선 승강장에 연락한다

지오는 무전기를 놨다.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사람들 사이를 잘 빠져나갔다. 지오는 조끼 덕에 사람들이 알아보고 비켜줬는데 그게 오히려 늦었다. 비켜주는 데 반박자가 걸리는 것이다.

통로 끝에서 남자가 계단으로 꺾였다.

21:18

1호선 승강장에는 열차가 들어와 있었다.

지오가 계단을 내려갔을 때 남자는 이미 열차 안이었다. 문 안쪽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지오와 남자 사이에 열다섯 걸음, 그리고 스크린도어.

출입문 닫습니다

닫혔다.

열차 문이 먼저 닫히고 스크린도어가 그다음에 닫혔다. 두 겹이 순서대로.

남자가 유리 너머에서 지오를 봤다. 웃지도 않았다. 그냥 봤다. 다 끝났다는 것을 아는 얼굴로.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오는 유리에 손을 댔다.

여기서 끝이었다. 규정대로라면 무전으로 다음 역에 인계하고 인상착의를 전달하고 열차 번호를 확인하면 된다. 그러면 다음 역에서 잡을 수도 있다.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은, 못 잡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저 사람은 다음 역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 역에서도. 사람 많은 역에서 섞여 내릴 것이고 그러면 끝이다. 그리고 아까 그 여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세 번이라고 했다.

세 번을 당하고 소리를 내고 팔을 잡았다. 그 사람이 팔을 잡기까지 얼마나 걸렸을지, 지오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열차가 속도를 냈다.

그럼 안 되지.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에는 틈이 있다.

손바닥 하나쯤 되는 틈. 매일 수만 명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한 번도 내려다보지 않는 틈. 노인이 거기에 무언가를 떨어뜨렸고, 여자가 거기에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것들은 아래로 간다. 아래는 선로다.

지오는 떨어지지 않았다.

무게가 없는 것은 떨어지지 않는다. 흐른다. 닫힌 열차 문과 문 사이, 고무 패킹이 맞물린 얇은 선. 바람이 드나드는 자리라면 어디든 길이 된다.

지오는 그 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기억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완전히 비어 있지도 않았다.

몸이 없어지는 감각이 있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옷을 벗는 것과 비슷한데 벗는 것이 옷이 아니라 몸이었고, 벗고 나니 가벼웠다.

그리고 좁은 데로 들어갔다.

문틈이었던 것 같다. 고무 패킹 사이.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폭인데 지나갔고, 지나가는 동안에는 자기 몸이 어디까지가 자기인지 알 수 없었다.

어두웠다.

그다음에, 다시 무거워졌다.

21:19

지오는 열차 안에 서 있었다.

3-4 문 앞. 열차는 이미 터널 안이었고 창밖은 검었고, 형광등이 얼굴을 하얗게 만들고 있었다.

승객 마흔 명쯤이 그를 보고 있었다.

몇 명은 뒤로 물러났고 몇 명은 그냥 굳었다.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들고 있던 커피를 놓쳐서, 종이컵이 바닥을 굴러갔다.

숨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오는 손잡이를 잡았다. 잡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았다. 입안에서 탄내가 났다.

칸 끝에 남자가 있었다.

남자가 지오를 봤다.

그 얼굴은 이제 태연하지 않았다.

“…뭐야.”

지오는 대답 대신 걸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비켰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아서, 열차 바퀴 소리만 남았다.

“오지 마.”

지오가 계속 걸었다.

“오지 말라고!”

남자가 우산을 들었다.

첫 번째는 어깨에 맞았다.

아팠다. 장우산 손잡이가 딱딱해서 어깨뼈에 정통으로 들어왔고, 지오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몸이 있었다.

두 번째는 머리를 노렸다.

지오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피할 시간이 없었다.

우산이 얼굴을 지나갔다.

지나갔다.

부딪히지 않았다. 우산 끝이 지오의 광대뼈가 있어야 할 자리를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나갔다. 그 궤적을 따라 검은 것이 잠깐 흩어졌다가, 우산이 지나가고 나서 다시 모였다.

남자가 우산을 놓쳤다.

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칸 안에서 누군가 짧게 소리를 냈다. 비명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작은 소리였다.

지오는 자기 얼굴을 만졌다.

있었다.

남자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등이 문에 닿았다. 더 갈 데가 없었다.

“오지 마, 오지 마…”

“손님.”

“뭐야 너, 뭐야!”

“다음 역에서 내리시면 돼요.”

“…뭐?”

“보안관이 나와 있을 거예요.”

지오는 더 다가가지 않았다.

다가갈 필요가 없었다. 남자는 이미 움직이지 못했고 지오는 문 앞에 서 있었고, 다음 역까지는 사십 초가 남아 있었다.

지오는 숨을 골랐다.

잘 골라지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열차가 다시 움직였고 지오는 그대로 서 있었다. 다음 역까지 앉을 생각도 못 했다.

숨이 반쯤 돌아왔을 때, 왼손이 조끼 주머니로 갔다.

버릇이었다. 며칠 전까지 하루에 스무 번씩 하던 동작. 손을 넣으면 거기 차가운 것이 있었고, 그러면 손을 뺐다.

주머니가 비어 있었다.

지오는 그 상태로 삼 초쯤 있었다. 반대쪽 주머니에도 손을 넣었다. 비어 있었다. 가방은 역무실에 있었고 그 안에는 지갑과 충전기뿐이었다.

돌은 집에 있었다.

창신동, 방, 서랍 안, 양말 밑에. 나흘 전부터 거기 있었다.

지오는 손잡이를 잡은 채 창밖을 봤다. 터널이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벽에 케이블이 지나가고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가고, 그것들이 유리에 비쳐 자기 얼굴 위로 흘러갔다.

돌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제 버릴 수도 없었다.

21:21

문이 열리자 보안관 둘이 서 있었다. 무전을 받고 미리 나와 있던 것이다.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상태가 아니었다. 끌려 나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봤다.

승객들이 내렸다.

내리면서 아무도 지오 옆을 지나가지 않았다. 다들 반대쪽 문으로 나갔다.

지오는 열차 안에 혼자 남았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을 봤다.

승강장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내린 사람들, 타려던 사람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온 사람들. 오십 명쯤 됐고, 그 절반이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굴이 가려져 있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지도 자고 있지도 않았고, 형광등 아래 정면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사복이 아니었다.

지오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서울교통공사 로고가, 그 아래에는 명찰이 있었다. 명찰에는 이름이 적혀 있다.

지오는 오른손을 들어 명찰을 가렸다.

렌즈 스물다섯 개 앞에서.

21:24

무전이 왔다.

지오야

“…네.”

어디야

“…다음 역이요.”

잡았어?

“네.”

다친 데 없고?

“…네.”

박성호가 잠깐 말이 없었다.

“네.”

너 조끼 입고 있었지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명찰도 달고 있었고

“…네.”

무전기 너머에서 숨소리가 났다.

…씨

무전이 끊겼다.

22:10

종로3가로 돌아왔다.

3호선 승강장 벤치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아까 그 사람이었다. 보안관 하나가 옆에 서 있었고 경찰이 오는 중이라고 했다.

지오가 다가가자 여자가 일어섰다.

“잡았어요?”

“네.”

“진짜요?”

“네. 다음 역에서요. 지금 경찰서 갔어요.”

여자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앉았다. 앉으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니, 진짜로요.”

“…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저기요.”

“네.”

“아까 어떻게 하셨어요?”

지오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열차 출발했잖아요. 저 위에서 봤는데, 문 닫히고 출발하는 거 봤는데.”

“…네.”

“근데 어떻게 잡으셨어요?”

옆에 있던 보안관이 지오를 봤다.

지오는 명찰을 다시 손으로 덮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안 보는데 덮었다.

“…뛰었어요.”

“뛰어서요?”

“네.”

“열차를요?”

“…다음 역이 가까워서요.”

여자가 지오를 삼 초쯤 봤다. 그리고 더 묻지 않았다.

지오는 그것이 고마웠다.

23:40

역무실에서 조끼를 벗었다.

박성호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서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십 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앉아.”

지오가 앉았다.

박성호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놨다. 화면이 켜져 있었고, 영상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이랬다.

지하철 직원이 사람 통과함 ㄹㅇ

조회수 사천. 올라온 지 십일 분.

“…이거 벌써요?”

“응.”

“십일 분이요?”

“응.”

박성호가 화면을 껐다.

“내일 아침에는 백만이야.”

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명찰은 흐릿해. 확대해도 이름은 안 보여.”

“…다행이네요.”

“근데.”

박성호가 지오를 봤다.

“우리 역 조끼는 선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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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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