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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7

사흘 전

첫날은 그냥 눕지 않았다.

퇴근해서 씻고 밥 먹고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을 켰다가 끄고 휴대폰을 봤다가 놓고, 그러다 오후 세 시쯤 눈앞이 하얘져서 결국 누웠는데 삼십 분쯤 있다가 눈이 떠졌다.

깨어난 것이 아니라 눈이 떠진 것이었다. 몸이 알아서 그랬다. 어딘가에서 스위치를 내린 것처럼.

둘째 날에는 방법을 바꿔서 거실 의자에 앉아 잤다. 앉아서 자면 깊이 들지 않고, 깊이 들지 않으면 꿈을 꾸지 않는다. 그것은 맞았다. 대신 두 시간마다 목이 꺾여서 깼고, 셋째 날 아침에는 목이 왼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셋째 날, 학원 가던 지현이 그를 봤다.

“오빠.”

“어.”

“거기서 왜 자?”

“허리 때문에.”

“거짓말.”

“진짜야.”

지현이 신발을 신다 말고 돌아봤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지오는 대답할 말을 골랐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면 몸에서 검은 것이 나온다고 하면 지현은 병원에 데려가려 할 것이고,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올 것이고, 그러면 다른 병원에 가자고 할 것이다. 학원비가 다음 주인데.

“…잠을 못 자.”

“왜.”

“모르겠어.”

“그거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어. 가려고.”

“진짜지?”

“어.”

지현이 나갔고, 지오는 그날도 자지 않았다.

05:50

사흘째 야간 근무를 마쳤을 때, 박성호가 그를 불렀다.

“야.”

“네.”

“거울 봤냐.”

“…아뇨.”

“보고 와.”

지오는 보지 않았다.

“오늘 병원 가.”

“괜찮아요.”

“안 괜찮아. 예약 내가 잡았어.”

“주임님이요?”

“어제 전화했어. 아홉 시 반.”

“근데 저 자야…”

“자면 못 가잖아. 그냥 바로 가.”

박성호가 지오 어깨를 툭 쳤다. 툭 치는 정도였는데 지오가 휘청했다.

“…봐라.”

06:40

지하철로 병원에 갔다.

걸어가면 이십오 분이라 평소라면 걸었을 텐데, 오늘은 계단 하나 내려가는 데도 왼손으로 난간을 잡아야 했다.

종로3가에서 한 정거장.

출근 시간대 초입의 열차는 이미 반쯤 차 있었다. 여섯 시 사십 분은 애매한 시간이다. 아직 만원은 아닌데 앉을 자리는 없는. 사람들은 전부 한쪽을 보고 서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지오는 문 옆 손잡이를 잡고 섰다. 조끼는 가방에 넣은 사복 차림이었다. 회색 반팔에 검은 바지. 지하철에서 지하철 직원처럼 보이지 않는 유일한 시간.

두 정거장 뒤에 자리가 하나 났다.

앉지 말걸.

나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앉으니까 허리가 편했다.

편해지니까 몸이 풀렸고, 풀리니까 눈꺼풀이 내려왔다. 사흘 동안 참았던 것이 삼 분 만에 무너졌다.

고개가 앞으로 떨어졌다. 한 번 들었다. 또 떨어졌다.

검은 것이 있었다.

전에 봤던 것과 같았다. 사방에서 안쪽으로 모이는, 물도 연기도 아닌 검은 것. 지오는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검은 것 너머에 무언가 있었다.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거기 무언가 서 있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아주 큰 것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그리고 소리가 났다.

멀리서 나는 소리라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말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같은 길이로, 같은 간격으로, 그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검은 것이 목까지 올라왔다.

지오는 숨을 들이마셨다.

06:52

여자가 먼저 봤다.

지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조는 남자의 오른손 위에 뭔가 있었다. 그림자 같기도 하고 김 같기도 한 것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

옆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그다음은 빨랐다.

검은 것이 지오의 주먹에서 나오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손목 안쪽에서, 소매 속에서. 처음에는 실오라기처럼 가늘다가 곧 손 전체를 감쌌다.

“불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틀린 말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도 그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칸 안이 한쪽으로 쏠렸다.

사람들이 다음 칸 쪽으로 밀리고 문 앞에 섰던 사람들은 문에 붙었다. 비명이 두어 개 났고 가방이 하나 떨어졌는데 아무도 줍지 않았다.

“뭐야 저거!”

“불 아니야, 연기만 나!”

“연기가 나면 불이지!”

“저 사람 자는데?”

“흔들어봐!”

“미쳤어? 니가 흔들어!”

지오는 깨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채, 오른손을 무릎에 올린 채, 그대로 자고 있었다. 검은 것이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비상통화장치 뚜껑이 열렸다.

“기관사님! 여기 삼 호차인데요, 불이, 아니 연기가…”

어디에서 연기가 납니까

“사람한테서요!”

…네?

“사람한테서 나요!”

승객 여러분, 열차는 곧 다음 역에 정차합니다

칸 안은 이상한 상태가 됐다.

무서운데 도망갈 데가 없었다. 열차 안이니까. 다음 칸으로 넘어간 사람 몇은 넘어가서는 문 유리에 붙어 이쪽을 봤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거 테러 아니야?”

“테러를 왜 자면서 해요.”

“약 아니야? 요즘 그거 뭐냐, 그거.”

“약 하면 몸에서 연기 나요?”

“모르지 그건.”

“저기요, 저 사람 아까부터 자고 있었어요. 두 정거장 전부터.”

“근데 저게 뭐야 진짜.”

“찍어놔요, 일단.”

“찍고 있어요.”

누군가 소화기를 찾았다. 객실 끝 좌석 밑에서 그것을 꺼내 든 사람은, 든 채로 물었다.

“쏠까요?”

“불이 안 났는데요?”

“연기가 나면 불이 난 거 아니에요?”

“불 없이 연기가 나잖아요, 지금.”

“…그럼 뭐예요, 저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고, 소화기를 든 사람은 소화기를 든 채로 서 있었다.

한 사람이 다가갔다.

오십 대쯤 되는 여자였다. 시장 가방을 들고 있었고, 아까부터 지오 두 자리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아주머니, 위험해요!”

“뭐가 위험해.”

“저거 뜨거울 수도 있잖아요!”

여자가 손을 뻗었다.

검은 것 속으로 손이 들어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 뜨거운데.”

“네?”

“안 뜨겁다고.”

여자가 지오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총각. 총각아.”

지오는 깨지 않았다.

“총각! 일어나!”

두 번째에 지오가 눈을 떴다.

06:54

검은 것이 없어졌다.

전과 똑같았다. 흩어진 게 아니라 그냥 없었다.

지오는 눈을 뜬 채 삼 초쯤 가만히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몰랐고, 왜 사람들이 다 자기를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알았다.

칸 안이 조용했다. 이십 명쯤 되는 사람이 전부 한쪽 벽에 붙어 그를 보고 있었고, 그중 예닐곱이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렌즈가 그를 향해 있었다.

지오는 자기 오른손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괜찮아?”

옆에서 소리가 났다.

시장 가방을 든 여자가 아직 거기 서 있었다. 손을 지오 어깨에 올려놓은 채였다.

“어디 아파?”

“…네?”

“어디 아프냐고.”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이게 뭐야. 며칠 안 잤어?”

“…네.”

“그러니까 그렇지.”

여자가 지오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밥은 먹었어?”

지오는 그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열차가 서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갔다. 나가면서도 몇 명은 계속 찍고 있었다.

역무원 둘이 승강장에서 뛰어왔다.

“어느 칸이요!”

“여기요!”

역무원이 올라타 칸 안을 훑었고,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지오를 가리켰다.

“손님, 괜찮으세요?”

“…네.”

“여기서 불이 났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불은 안 났는데요.”

역무원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을음도 없고 냄새도 없고, 바닥에 떨어진 가방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손님, 담배 피우셨어요?”

“아니요.”

“전자담배는요.”

“안 피워요.”

역무원이 승객 하나를 봤다.

“연기 나셨다고요?”

“났어요! 이만큼!”

승객이 두 팔로 크기를 만들어 보였다.

“어디서요?”

“저 사람 손에서요.”

역무원이 지오를 봤고, 지오도 역무원을 봤고, 둘 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07:05

승강장 벤치에 앉아서 조사 아닌 조사를 받았다.

역무원은 예의 바르게 물었고 지오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지오가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는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주민등록증과 사회복무요원증. 요원증에는 근무기관이 적혀 있다. 서울교통공사 종로3가역.

지오는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숨긴 것은 아니었다. 물어본 게 신분증이었고 신분증을 준 것뿐이었다. 다만 요원증을 꺼냈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같은 조직 사람이 되고 소속 역에 연락이 가고 서류가 하나 더 생긴다. 지금 지오한테 제일 필요 없는 것이 그것이었다.

역무원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었다.

“한지오 씨.”

“네.”

“오늘 어디 가시는 길이셨어요?”

“병원이요.”

“어디 아프세요?”

“허리요.”

“…아.”

역무원이 볼펜을 멈췄다가 다시 적었다.

“혹시 지병 있으세요? 발작 같은 거.”

“없어요.”

“약 드시는 거는요.”

“진통제요.”

“그거 말고요.”

“없어요.”

역무원이 무전으로 보고했다. 승객 신고 있었으나 화재 흔적 없음, 해당 승객 의식 있음, 병력 없음, 특이사항 없음.

“연락처만 하나 주시고요.”

지오가 번호를 불렀다.

“혹시 나중에 확인할 게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아마 없을 거예요.”

“네.”

“오늘은 그냥 들어가서 쉬세요.”

“…네.”

역무원이 갔다.

가다가 한 번 돌아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봤다.

지오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승강장 반대편에서는 사람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지오를 보지 않았다. 이 역에서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 사람들은 몰랐다.

지오는 오른손을 폈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먹을 쥐어봤다. 펴봤다. 다시 쥐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07:30

병원은 가지 않았다.

집으로 가서 계단 백 몇 개를 올랐고 오르면서 두 번 쉬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오는 부엌 의자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였다.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놨다. 형광등 아래에서 보고 아침 햇빛 아래에서 보고 손으로 굴려도 봤다.

그냥 돌이었다.

“…뭐야, 너.”

돌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오는 그것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 도로 꺼냈다. 서랍을 열었다가 닫고, 쓰레기통을 봤다가 안 보고, 결국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 커튼을 치고 누웠다.

무서웠다.

사흘 만에 처음으로, 자는 것이 무서웠다.

14:10

휴대폰 진동에 깼다.

최유진이었다.

“여보세요.”

야, 너 어디야

“집이요.”

자고 있었어?

“…네.”

일어나서 이것 좀 봐

“뭔데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그냥 봐

메시지가 하나 왔다.

링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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