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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4

첫 동행

21:40

그 말은 아무렇지 않게 왔다.

“한지오 씨, 오늘은 같이 나가죠.”

민현석이 사무실 문을 열고 그렇게 말했을 때, 지오는 기록지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볼펜이 잠깐 멈췄다.

“…저도요?”

“네. 지난번에 돕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다. 지오가 먼저 한 말이었다. 어르신들 부축이라도 하겠다고, 지하철에서 그런 거 많이 했다고. 그 말이 이 주를 돌아서 지금 열쇠처럼 돌아온 것이다.

“현장 한번 보시는 것도 좋아요.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

민현석이 웃었다. 눈과 입이, 따로.

“준비되시면 승합차로 오세요.”

승합차 안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앞줄에 대원 둘, 가운데 줄에 지오. 뒷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커튼 틈으로 보이는 것은 접이식 들것과 담요 몇 장, 구급상자, 그리고 바닥에 박힌 고정 레일이었다. 구급차에 있는 것과 같은 레일. 들것을 고정하는 물건이니까 있는 게 당연했다.

당연한 것들의 목록에 한 줄이 더 늘었다.

대원 둘은 말이 없었다. 운전하는 쪽은 사십 대쯤으로 목이 굵었고, 조수석 쪽은 그보다 젊고 마른 편이었는데, 지오가 타자 목례를 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조수석 대원의 무릎에는 태블릿이 놓여 있었고, 화면 불빛이 이따금 그의 턱을 아래에서 비췄다.

차가 경사로를 올라 지상으로 나왔다.

밤의 강남은 환했다. 지하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나온 눈에는 지나치게 환해서, 지오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 그 빛들을 봤다. 스물세 살이 되도록 밤의 강남을 이렇게 통과해 본 적이 없었다. 놀러 올 일도 없었고 올 돈도 없었다.

이십 분쯤 달려서 차가 큰길을 벗어났다.

22:50

지하보도 입구에 차가 섰다.

역세권에서 두 블록 벗어난, 오래된 지하보도였다. 계단 입구에 셔터가 반쯤 내려져 있고 그 아래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내리시죠.”

조수석 대원이 처음으로 문장을 말했다.

지하보도 안, 계단참을 지난 모퉁이에 노인이 있었다.

종이박스를 두 겹으로 깔고 그 위에 모로 누워 있었다. 머리맡에는 소주병이 아니라 박카스 병이 두 개 서 있었고, 발치에 끈으로 묶은 짐 보따리가 하나. 일흔은 넘어 보였다. 숨 쉴 때마다 가슴에서 가랑가랑한 소리가 났다.

지오는 이 광경을 알았다. 종로3가의 계단 밑에서 수십 번 본 광경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 지오가 할 수 있는 일은 깨워서 내보내는 것뿐이었다는 점이다. 새벽에 셔터를 내려야 하니까, 나가달라고, 죄송하다고.

대원들은 내보내러 온 것이 아니었다.

목 굵은 대원이 쭈그려 앉더니, 놀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어르신. 주무시는데 죄송해요.”

노인이 부스스 눈을 떴다.

“…뭐야.”

“밤에 여기 추우세요. 저희가 따뜻한 데 모셔다드리려고요.”

“안 가.”

“밥도 있고 침대도 있어요. 씻으실 수도 있고.”

“안 간다니까.”

노인이 돌아누웠다. 대원은 화내지 않았다.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옆에 쭈그려 앉은 채로, 시간을 들였다.

“어르신, 가슴에서 소리 나는 거 오래되셨죠.”

돌아누운 등이 잠깐 멈췄다.

“저희 가면 의사도 봐드려요. 돈 안 받아요.”

그 말에 노인이 다시 돌아누웠다. 대원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물었다.

“…공짜로?”

“공짜로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고, 노인은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제일 잘 알았을 것이다.

노인을 부축한 것은 지오였다.

시켜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갔다. 계단이 있었고 노인의 다리가 풀려 있었고, 그러면 지오의 몸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인다. 이 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노인은 가벼웠다. 무섭도록 가벼워서, 부축한다기보다 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았다. 낡은 점퍼 속의 팔은 뼈에 가죽을 씌운 것 같았고, 그런데도 노인은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지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 총각.”

“괜찮아요.”

“다리에 힘이 없어서.”

“천천히 가요. 천천히.”

승합차 뒷칸에서 대원들이 담요를 깔고 노인을 눕혔다. 물병을 쥐여주고, 체온을 재고, 담요를 목까지 올려줬다. 능숙했다. 하루 이틀 한 솜씨가 아니었고, 거칠지도 않았다.

지오는 그 광경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놓이는 것을 느꼈다.

이게 다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게 다일지도 모른다. 취약계층 야간 보호. 겨울이 오기 전에 거리의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 안쪽 방도, 락스 냄새도, 바퀴 소리도, 전부 이 일의 뒷면일 뿐인지도 모른다. 틀니는 그냥 누가 흘린 틀니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안도할 이유가 생기면 반드시 안도한다.

지오는 안도하고 싶었고, 절반쯤 성공했다.

23:30

절반이 무너진 것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였다.

노인은 뒷칸에서 잠들어 있었다. 가랑가랑한 숨소리가 커튼 너머에서 규칙적으로 넘어왔고, 차는 조용했고, 조수석 대원이 태블릿을 켰다.

지오는 가운데 줄에 앉아 있었다. 보려던 것이 아니었다. 어두운 차 안에서 밝은 화면은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화면에는 명단이 있었다.

표 형식이었다. 행마다 사진이 있고, 사진 옆에 글자들이 있었다. 대원이 그중 한 행을 눌렀고, 행이 파란색으로 바뀌었고, 지오는 그 행의 사진을 봤다.

방금 태운 노인이었다.

낮에 찍힌 사진이었다. 지하보도가 아니라 어딘가 길거리에서, 본인은 찍히는 줄도 모르는 각도로.

대원이 화면을 껐다.

차 안은 다시 어두워졌고, 지오는 창밖을 봤고, 밤의 강남이 아까와 똑같이 환했다.

찾은 것이 아니었다.

찾아간 것이었다.

오늘 우연히 발견한 노인이 아니라, 이미 사진이 찍혀 있고 명단에 올라 있고 순서가 정해져 있던 사람. 대원이 가슴에서 소리 나는 거 오래되셨죠, 라고 물었을 때 그것은 관찰이 아니라 확인이었던 것이다.

지오는 무릎 위의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십 분 전에 이 손으로 노인을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00:40

센터에 도착하자 민현석이 내려와 있었다.

“수고했어요.”

“…네.”

“어땠어요, 현장.”

지오는 대답을 골랐다.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르신이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모셔 온 거예요.” 민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살펴 드릴 겁니다.”

그는 지오의 어깨를 정확히 한 번 두드리고 덧붙였다.

“오늘은 올라가서 쉬어요. 첫 동행이라 피곤할 거예요.”

“하역은 안 도와드려도…”

“그건 저희가 합니다.”

문장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부드럽게, 그러나 완전히.

지오는 계단을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한 번 돌아봤을 때, 대원들이 승합차 뒷문을 열고 있었고, 민현석이 그 옆에 서 있었고, 셔터 내려간 지하 주차장의 형광등 아래에서 그 모든 것이 아주 평범해 보였다.

노인은 잘 보살펴질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

06:20

퇴근길 버스에서 지오는 잠들지 못했다.

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는데, 감은 눈 안쪽으로 자꾸 화면이 떠올랐다. 표 형식. 행마다 사진. 파란색으로 바뀌던 행.

그리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 더 떠올랐다.

명단은 길었다.

대원이 화면을 끄기 전, 일 초나 이 초쯤, 지오는 그 표의 스크롤바를 봤다. 화면 오른쪽에 붙은 가늘고 긴 회색 막대. 그 막대는 아주 작았다.

스크롤바가 작다는 것은, 목록이 길다는 뜻이다.

지오는 그것을 지하철에서 배웠다. 민원 접수 시스템에서, 유실물 데이터베이스에서, 하루 이만 명이 지나가는 역의 온갖 목록들에서.

방금 태운 노인은 그 긴 목록의 한 줄이었다.

파란색으로 바뀐, 한 줄.

버스가 한강을 건넜다. 아침 해가 물 위에 부서졌고, 사람들은 어제와 같이 출근했고, 지오는 흐르는 창밖을 보며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저 목록의 나머지는 몇 줄이나 될까.

그리고 그 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End of Episode
첫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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