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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3

유실물

20:40

퇴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승강장의 공기가 한 번 바뀐다.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는 사람이 벽처럼 서 있다가, 여덟 시 반쯤 되면 갑자기 헐거워진다. 열차가 들어와도 사람이 다 타고 자리도 남는다. 남은 사람들은 대개 혼자고, 혼자인 사람들은 전부 휴대폰을 보고 있다.

여자는 아니었다.

여자는 승강장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오가 처음 봤을 때 그 사람은 스크린도어 유리에 손바닥을 대고 이마까지 대고 있었는데, 열차가 들어오는 중이었고 안내 방송이 나오는 중이었고, 사람들은 그 여자를 피해 돌아가고 있었다.

지오는 걸음을 빨리했다.

승강장 끝에서 유리에 이마를 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라, 여기서 반년을 일하면 그냥 그렇게 된다.

“손님.”

여자가 돌아봤다.

서른 안팎으로 보였다. 회색 재킷에 목에 건 사원증은 줄이 꼬여 회사 이름이 뒤집혀 있었고, 구두 뒤축에는 흙이 묻어 있었고, 왼손에 든 텀블러는 뚜껑이 열려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폰이요.”

“네?”

“폰을 떨어뜨렸어요.”

“어디로요?”

“내리는데… 여기로요.”

여자가 가리킨 곳은 승강장이 아니라 스크린도어 유리 너머, 그 바깥쪽이었다.

지오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열차가 서면 문이 두 겹으로 열린다. 열차 문과 스크린도어. 그 사이에 손바닥 하나쯤 되는 틈이 생기는데, 발이 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휴대폰은 충분히 들어간다. 매일 수만 명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한 번도 내려다보지 않는 틈. 거기로 떨어지면 물건은 스크린도어 바깥, 선로 쪽으로 가고, 승강장에서는 손이 닿지 않는다.

“내리시면서요?”

“네. 가방에서 꺼내다가.”

“…아.”

“제가 봤어요. 떨어지는 거.”

여자가 자기 손바닥을 폈다가 접었다. 그 동작을 한 번 더 했다.

“손이 안 닿더라고요. 문이 닫혀서.”

“닿았으면 큰일 나셨어요.”

“…네.”

여자가 웃었다.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20:55

역무실에서 박성호가 서류를 꺼냈다.

선로 유실물 신고서. 칸이 열두 개쯤 있는 A4 한 장인데, 그중에는 이런 칸도 있다. 분실 위치를 정확히 기재해 주십시오. 지오는 이 칸을 볼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선로에 떨어진 물건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걸 주웠을 것이다.

“성함이랑 연락처 쓰시고요.”

여자가 볼펜을 받아 들었다.

“이거 오늘 찾을 수 있어요?”

“지금은 못 찾습니다.”

“…네?”

“막차 나가고 역사 폐쇄한 다음에나 가능해요.”

“그게 몇 신데요.”

박성호가 시계를 봤다.

“막차가 한 시쯤 나가요. 폐쇄하고, 단전 뜨면 그때 들어갑니다. 한 시 사십 정도 되겠네요.”

여자의 손이 멈췄다.

“다섯 시간이요?”

“네.”

“…혹시 지금은 정말 안 되나요.”

“열차가 다닙니다.”

“제가 조심하면…”

“손님.” 박성호가 볼펜으로 책상을 톡톡 쳤다. “그 선로 위에 지금 전기가 흐르고 있어요. 천오백 볼트.”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지오는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척했다. 이 대화는 한 달에 두어 번 있는데 늘 같은 순서로 진행되고 늘 같은 데서 멈춘다. 사람들은 대개 여기서 포기한다. 연락처를 남기고 내일 오겠다고 하고, 그 절반은 오지 않는다.

“그럼 저 기다릴게요.”

이 부분만 빼고.

박성호가 여자를 봤다.

“다섯 시간을요?”

“네.”

“손님, 저희가 찾으면 연락드려요. 보관하고 있다가…”

“기다릴게요.”

여자가 신고서에 이름을 적었다. 볼펜을 어찌나 꾹 눌러 썼는지 종이가 파였다.

박성호가 지오를 한 번 봤고, 지오도 박성호를 봤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1:30

절차라고 부를 것도 없다.

지오가 복무 첫 달에 이 일을 처음 봤을 때 이상했던 것은 그 점이었다. 서류에는 신고서, 처리 대장, 인계서까지 뭐가 잔뜩 붙는데 실제로 하는 일은 단순하다. 관제에 보고하고, 막차가 나가고 회송 열차가 차량기지로 들어가면 역사를 폐쇄하고, 그다음은 기다린다. 단전은 관제에서 알아서 한다. 이쪽에서 신청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되면 관제에서 연락이 온다. 단전됐다고.

그러면 들어간다고 신고하고, 내려간다.

그게 다다.

처음 따라 내려가던 날, 지오는 뭘 입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박성호가 그를 위아래로 한 번 훑었다.

“그냥 그거 입고 가.”

“…이거요?”

“응.”

“안전모 같은 건요.”

“위에 뭐 떨어질 게 있냐.”

그래서 조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손전등 하나를 들고 내려갔다. 규정집 열두 페이지 뒤에 남는 것은 결국 손전등 하나였다.

무서운 것은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전기가 끊겼다는 사실을 남의 말로만 믿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거 진짜 끊긴 거 맞아요?”

“관제가 끊겼다잖아.”

“근데 만약에…”

“만약에는 없어.” 박성호가 그때 그렇게 말했다. “만약에가 있으면 아무도 못 내려가.”

작년에 어느 역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그날 들었다.

“그 사람도 폰 주우러 내려갔어.”

“직원이요?”

“아니. 손님.”

박성호가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역사 안이라 못 피운다는 걸 매번 잊는 사람이었다.

“열차 안 다니는 줄 알았대.”

지오는 그다음부터 묻지 않았다.

21:50

박성호가 관제에 전화를 걸었다.

“네, 종로3가입니다. 3호선 상행 승강장 유실물 하나 있어서요. …네. 승하차 중에 차량이랑 승강장 연단 사이로 낙하했습니다. …네. 폐쇄 후 진입 요청드립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났다.

“아뇨, 승객은 안 내려갑니다. 저랑 요원 하나요. …네. 한 시 사십쯤. 네.”

전화를 끊고 그가 말했다.

“됐다.”

“승인 났어요?”

“응. 근데 오늘 회송이 늦대.”

“얼마나요.”

“십 분쯤.”

박성호가 서류에 시간을 적으면서 중얼거렸다.

“십 분이 뭐 대수냐. 저 손님은 다섯 시간 기다리는데.”

22:10

여자는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그 위에 두 손을 얹고 앞을 보고 있었다. 휴대폰이 없으니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요즘 사람이 다섯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드문 풍경이었다.

지오는 종이컵에 물을 받아 가져갔다.

“정수기 물이에요.”

“감사합니다.”

“저기, 손님.”

“네.”

“정말 안 가셔도 돼요?”

“네.”

“…내일 찾으러 오셔도 되는데요.”

여자가 컵을 들여다봤다. 마시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지오는 더 묻지 않았다.

돌아서서 걸으면서 잠깐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도 저렇게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은행에서. 아무한테도 화를 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끝까지 앉아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대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된다.

23:20

막차 시간대가 되면 역이 한 번 크게 부푼다.

종로3가는 술 먹은 사람이 많은 역이다. 종각에서 넘어오고 익선동에서 넘어오고 낙원상가 쪽에서 넘어와서, 열한 시부터 열두 시 반까지가 하루 중 가장 시끄럽고 가장 정신없다.

오늘도 그랬다.

남자 하나가 개찰구에 카드를 세 번 댔는데 세 번 다 삑, 소리와 함께 거부당했다. 남자가 카드를 노려봤다.

“이거 왜 안 돼.”

“손님, 잔액이…”

“내가 아까 충전했는데?”

“어디서 충전하셨어요?”

“…어디서 했지?”

지오는 그를 충전기 앞으로 데려갔다. 남자가 카드를 넣고 지폐를 넣었는데 지폐가 도로 나왔다. 다시 넣자 또 나왔다.

“이거 고장 났네.”

“천 원짜리가 좀 접혀서요.”

“내가 천 원을 접었어?”

“…아마도요?”

남자가 지폐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폈다.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모서리를 맞추고, 세 번쯤 폈다. 다시 한 번 폈다.

그러고는 넣었다.

들어갔다.

남자가 지오를 봤다. 뭔가 감동한 얼굴이었다.

“학생, 고마워.”

“네.”

“학생 몇 살이야.”

지오는 잠깐 눈을 감았다.

“…스물셋이요.”

“우리 조카가…”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00:40

계단 아래에서 자는 사람을 깨웠고, 5호선 쪽 엘리베이터가 안 내려온다기에 가봤더니 짐수레가 문에 끼어 있었다.

남자 화장실 세 번째 칸이 잠겨 있었다.

지오는 문을 두드렸다.

“손님, 곧 폐쇄합니다.”

대답이 없어서 한 번 더 두드렸고, 세 번째에는 좀 세게 두드렸다.

이 시간에 대답이 없는 칸은 셋 중 하나다. 자고 있거나, 못 일어나거나, 안 일어나는 것이다. 세 번째가 제일 무섭다. 지오는 아직 세 번째를 본 적이 없었고, 박성호는 봤다고 했다.

마스터키로 열자 먼저 냄새가 나왔다.

젊은 남자가 변기에 앉은 채 앞으로 엎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자기 무릎에 이마를 대고 있었는데 각도가 더 내려가서 머리가 거의 바닥에 닿아 있었고, 바지는 발목에 걸려 있었다. 다 못 올린 게 아니라 애초에 올릴 생각이 없었던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아래는, 그러니까, 화장실이었다.

지오는 삼 초쯤 문을 잡고 서 있었다.

“…손님.”

반응이 없어서 어깨를 짚고 흔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남자가 고개를 들었는데 스물다섯쯤 되어 보였고 셔츠 차림에 사원증 줄을 목에 걸고 있었고 이마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남자가 지오를 봤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저 아직 안 쌌는데요.”

“싸셨어요.”

“…아닌데.”

“싸셨어요.”

남자가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지오를 봤다.

“아.”

지오는 물티슈를 꺼내 건넸다. 조끼 주머니에 늘 두 봉을 넣고 다니는데, 처음 여기 왔을 때 박성호가 챙기라고 했고 왜냐고 묻자 곧 알게 된다고 했다.

남자가 물티슈를 받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진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지오는 문을 닫아주고 밖에서 기다렸다.

세면대 거울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조끼, 명찰, 회색 얼굴. 안에서 물티슈 뽑는 소리가 나다가 멈췄고, 좀 있다 다시 났다. 멈춰 있는 동안 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칸에서 나온 남자는 손을 오래 씻었다. 씻는 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다.

“8번 출구로 나가시면 택시 있어요.”

“…네.”

“가방 안 놓고 가셨어요?”

남자가 그제야 칸을 돌아봤다. 가방이 걸려 있었다.

가방을 들고 나가면서 남자가 고개를 숙였고, 지오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봤다.

내일 출근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셔터가 하나씩 내려갔다. 편의점, 빵집, 액세서리 가게. 셔터 내리는 소리는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데, 이 역에서 이 년을 일하면 소리만 듣고도 어느 가게인지 알게 된다.

한 바퀴 돌고 대합실로 돌아왔을 때, 여자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자세도 그대로였고, 종이컵도 그대로였다. 물이 줄지 않았다.

지오는 두 자리 건너에 앉았다. 앉을 생각은 없었는데 다리가 먼저 앉았다.

“곧이에요.”

“네.”

“막차 나가고, 단전 뜨면 바로 내려가요.”

“네.”

“…금방 찾을 거예요.”

여자가 처음으로 그를 봤다.

“거기 뭐가 있어요? 밑에.”

“자갈이랑 침목이요. 그리고 사람들이 백 년 동안 떨어뜨린 것들.”

“백 년이요?”

“주임님이 그러셨어요. 동전이랑 안경이랑 반지 같은 거.”

“…반지.”

“네.”

여자가 조금 웃었다. 이번에는 눈도 조금 웃었다.

“제 폰은 케이스가 검은색이에요. 뒤에 스티커 붙어 있고요.”

“무슨 스티커요?”

“곰.”

“곰이요?”

“네. 곰.”

“어떤 곰이요?”

“그냥… 곰이에요. 흰 곰.”

지오는 수첩에 적었다. 검은 케이스, 흰 곰 스티커. 적다가 물었다. 물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근데 왜 안 가셨어요.”

여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지오는 아차 싶어 수첩을 덮었다.

“죄송합니다. 안 여쭤봐도…”

“사진이요.”

“…네?”

“거기 사진이 있어서요.”

여자는 그 말만 하고 다시 앞을 봤다. 지오도 앞을 봤다.

백업이라는 단어가 목까지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갔다. 그 말을 안 해봤을 리가 없다. 다섯 시간을 앉아 있는 사람이 그걸 안 해봤을 리가 없다.

대합실 형광등은 절반이 꺼져 있었고, 셔터 내린 편의점 앞에는 폐기 박스가 나와 있었고, 어디선가 물이 떨어졌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십 분쯤 앉아 있었다.

01:15

무전이 왔다.

지오야, 올라와

“네.”

관제 나왔다. 준비하자

지오가 일어서자 여자도 같이 일어섰다.

“손님은 여기 계셔야 돼요.”

“…네.”

“찾으면 바로 올라올게요.”

“네.”

여자가 두 손으로 가방끈을 잡았다. 다섯 시간 만에 처음으로, 표정이 움직였다.

01:40

전화가 왔다. 박성호가 받아서 두 마디쯤 하고 끊었다.

“단전 떴대.”

“네.”

“내려간다고 신고했고.”

“네.”

“내가 먼저 내려가. 너는 뒤에. 절대 앞으로 안 나와.”

“네.”

“손전등 두 개 챙겨. 하나는 예비.”

지오가 캐비닛에서 꺼낸 손전등은 하나는 새것이고 하나는 몸통이 우그러져 있었다. 집게도 꺼냈다. 길이 일 미터쯤에 끝이 고무로 싸인 물건인데, 손잡이를 쥐면 끝이 벌어지는 구조가 스프링이 늘어나서 잘 닫히지 않았다.

“이거 새로 신청해야 될 것 같은데요.”

“신청했어. 작년에.”

“…아직 안 왔어요?”

“응.”

박성호가 조끼 지퍼를 올렸다. 그게 준비의 전부였다.

“야.”

“네.”

“어제 니가 형광등 올렸냐. 3호선 끝에.”

“아, 네. 계속 깜빡거려서요.”

“그거 갈았어. 오늘 낮에.”

“…빠르네요.”

“이 년 만에 처음이야.”

박성호가 손전등을 켜 보고, 껐다.

“저 손님 얼마나 기다린 거야.”

“다섯 시간이요.”

“…빨리 찾자.”

두 사람이 역무실을 나섰다. 절반만 켜진 복도에 발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울렸고, 그 발소리는 지하 3층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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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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