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자 조회수는 삼백사십만이었다.
영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날 밤 승강장에 렌즈가 스물다섯 개 있었고 그중 열한 개가 어딘가에 올라갔는데, 각도가 전부 달라서 하나를 의심하면 다른 하나가 그 의심을 무너뜨렸다.
제일 많이 퍼진 것은 대각선 뒤에서 찍은 것이었다. 우산이 얼굴을 지나가는 순간이 정면으로 잡혔고, 그 0.4초짜리 구간만 열두 배로 늘린 버전이 따로 돌아다녔다.
늘린 영상에서는 아주 확실하게 보였다. 우산 끝이 광대뼈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나가고, 그 궤적을 따라 얼굴 왼쪽이 흩어지고, 흩어진다기보다는 그냥 없어지고, 우산이 다 지나가고 나면 다시 있다.
전부 합쳐 0.4초였다. 댓글은 만 개를 넘겼다.
이건 합성이 아님 각도 다른 영상 세 개에서 다 나옴
세 개 다 합성일 수도
열한 명이 담합함?
요즘 그런 팀 많음
열한 명이 담합해서 성추행범 잡는 연출을 왜 함
…
성추행범 잡은 건 팩트인데
경찰서 갔대 진짜
그럼 저건 진짜라는 거네
나는 저게 무섭다
왜 무서움? 나쁜 놈 잡았잖아
사람 몸이 통과되는데 안 무섭냐
통과된 게 아니라 통과당한 거임 저 사람이 맞은 거야
그러네
저 사람 다친 거 아님?
첫 번째는 어깨에 맞았음 영상에 나옴
아 그럼 두 번째만 그런 거네
왜 첫 번째는 맞고 두 번째는 통과함
그러게
서울교통공사 조끼 맞음
명찰 확대해봤는데 안 보임
종로3가에서 도주 시작했으니 종로3가 직원일 확률 높음
그 역 직원이 몇 명인데
백 명 안 됨
이거 뉴스에서 다뤄야 하는 거 아니야
다뤘음
링크
제목이 ㅋㅋㅋㅋ
기사 제목은 이랬다.
지하철 연기남, 정체는?
본문은 여섯 문단이었는데 그중 셋은 영상 설명이었고 하나는 성추행 사건 개요였으며, 사건 개요가 여섯 문단 중 하나라는 배분이 이 기사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인터뷰에 응한 물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알려진 물리 법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영상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합니다.”
마지막 문단은 이랬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가 공식 입장을 냈는데, 세 줄이었다.
해당 영상과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확인 중입니다. 직원 개인의 신상 유출이 우려되어 구체적인 사항은 밝히기 어렵습니다. 승객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오는 그것을 세 번 읽었고, 세 번째에 걸린 것은 직원 개인이라는 네 글자였다.
승객이라고 쓸 수도 있었고 해당 인물이라고 쓸 수도 있었는데 직원이라고 썼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공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 역의 누구인지, 그날 몇 시 근무였는지, 조끼 번호가 몇 번인지 확인하는 데는 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조끼에는 번호가 박혀 있고 그날 근무자 명단이 있고 개찰구부터 승강장까지 CCTV가 있으니, 알아내는 것이 어려운 쪽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알면서 밝히지 않은 것뿐이었다. 밝히지 않는 것과 지켜주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 지오는 그때 아직 몰랐다.
지현이 방문을 열었다. 노크 없이였고, 그 집에서 노크는 지현이 먼저 시작한 규칙이었다.
지오는 침대에 앉아 있었고 지현은 문 앞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든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는데, 거기에 무엇이 떠 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빠.”
“어.”
“이거 오빠지.”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빠 맞지.”
“…어.”
지현이 문틀을 잡았다.
“뭐야.”
“…나도 몰라.”
“뭐가 몰라!”
“진짜 몰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오빠 몸이잖아!”
지오는 무릎에 손을 놓았다.
“…그러게.”
지현이 방으로 두 걸음 들어오다가 멈추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침대까지는 세 걸음이 더 남아 있었다.
“오빠 죽는 거야?”
“…어?”
“그런 거 아니야? 몸이 없어지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알아.”
“…모르지.”
“모르잖아!”
지현이 울기 시작했다.
지오는 그것을 이 초쯤 보다가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앉아, 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가 생각보다 작아서 지오는 잠깐 손에 힘을 뺐다.
“안 죽어.”
“거짓말.”
“안 죽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다 해.”
“…잠은 안 자잖아.”
“…요즘은 자.”
“거짓말하지 마.”
“…어.”
지현이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엄마한테 말할 거야?”
“…아니.”
“왜.”
“뭐라고 말해.”
지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방바닥에 앉아 있었고, 창밖에서는 아랫집 재봉틀 소리가 났다. 창신동에서 그 소리는 시계 같은 것이어서, 소리가 나면 아직 낮이었다.
성추행범 쪽에서 입장이 나왔다. 변호사를 통해 나온 것이었고, 원문보다 캡처가 먼저 커뮤니티에 돌았다.
의뢰인은 승객과의 접촉에 대해 고의성을 부인하고 있으며, 사건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신체적 위협과 공격을 받아 극심한 공포를 겪었습니다. 이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ㅋㅋㅋㅋ
야 근데 저거 법적으로 맞는 말이긴 함
뭐가?
저 사람 입장에서는 사람이 아닌 게 열차에 들어와서 다가온 거잖아
성추행범 편들지 마
편드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 그렇다고
이거 진짜 애매하네
뭐가 애매해 성추행범인데
성추행범인 거랑 저 사람이 이상한 거랑은 별개 아님?
그럼 성추행범을 그냥 보내야 됨?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아 몰라 머리 아파
그 소동이 하루를 채워갈 무렵, 밑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이 이랬다.
저 그 피해자인데요.
안녕하세요. 어제 3호선에서 그 일 당한 사람입니다. 신원 밝히기 어려워서 인증은 못 합니다. 안 믿으셔도 됩니다.
세 번 당했습니다. 처음엔 실수인 줄 알았고 두 번째엔 착각인가 했고 세 번째에 확실해졌습니다. 그 세 번 동안 제가 뭘 했냐면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몸을 옆으로 옮겼습니다. 그 사람이 따라왔습니다.
세 번째에 소리를 냈습니다.
소리 내는 데 이십 분 걸렸습니다.
팔을 잡았는데 그 사람이 저한테 아가씨 여기 지하철이에요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사람 많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니가 예민하다는 뜻입니다.
직원분이 오셨습니다. 그 사람이 직원분 명찰 보더니 공익이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망갔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포기했습니다. 못 잡습니다. 그런 거 못 잡습니다. 저는 그걸 열아홉 살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잡혔습니다.
저는 그분이 뭔지 모릅니다. 무섭다고 하시는 분들 이해합니다. 저도 위에서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처음으로 못 잡는 걸 잡는 걸 봤습니다.
그거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댓글이 팔천 개 달렸고, 그중 맨 위에 올라온 것은 아무 말 없이 물음표 하나만 지운 자리였다.
출근길에 탑골공원 앞을 지났다.
담장 끝 세 번째 자리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며칠 만이었고, 자리는 늘 같았다. 저 사람이 저기 앉아 있는 것을 지오는 2년째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노인이 고개를 들어 지오를 봤는데, 늘 하던 것보다 오래 봤다. 2년 동안 이 사람이 지오의 얼굴을 이만큼 오래 본 적은 없었다.
“…출근하나.”
“네.”
“밤에 하는 거지.”
“네.”
노인이 무릎 위에 얹어둔 손을 한 번 폈다가 접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동작이었는데, 아무 뜻도 없는 동작 같지는 않았다.
“요즘 시끄럽더구먼.”
지오의 걸음이 멈췄다.
“…뭐가요.”
“몰라. 사람들이 뭐 지하철에서 어쨌다고.”
“…아.”
“나는 그런 거 안 봐. 눈이 나빠서.”
노인이 앞을 봤다.
“근데 여기 앉아 있으면 말이 다 들려.”
지오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네.”
“학생.”
“네.”
“조심해.”
“…뭘요.”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앞만 봤다.
지오는 인사를 하고 걸었고, 몇 걸음 가서 돌아봤을 때 노인은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다만 무릎 위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는데, 그날은 바람도 불지 않았다.
역에 사람이 있었다.
늘 사람이 있는 곳이지만 그날은 종류가 달랐다. 8번 출구 앞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으며, 개찰구 앞에서 지나가는 직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는 사람도 있었다. 지하철을 타러 온 사람은 개찰구 앞에서 사람 얼굴을 보지 않는다.

지오는 후드를 쓰고 들어갔다.
역무실은 조용했다.
“…왔냐.”
“네.”
박성호가 일어섰다.
“오늘 너 승강장 나가지 마.”
“…네?”
“안에 있어. 서류 정리해.”
“제가 왜…”
“저 밖에 지금 몇 명 있는지 알아?”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열 명쯤 돼. 조끼 입은 사람 보이면 다 찍어.”
최유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임님, 아까 그 사람들 또 왔는데요.”
“뭐래.”
“인터뷰 요청이래요.”
“어디.”
“유튜브요.”
박성호가 앉았다.
“…미치겠네.”
밤이 되니 좀 나아졌다. 열 시가 넘으면 다들 집으로 가고, 남는 것은 늘 남는 사람들뿐이다.
지오는 역무실에서 유실물 대장을 정리했다. 우산 열두 개와 이어폰 세 개와 지갑 하나가 그날의 수확이었고, 그 아래로 십 년 된 폴더폰 하나가 여전히 목록에 남아 있었다. 주인을 못 찾은 것들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박성호가 커피를 두 잔 타서 하나를 지오 앞에 놨다.
“야.”
“네.”
“이름 붙었더라.”
“…뭐가요.”
“너.”
박성호가 휴대폰을 밀어줬다.

게시글 제목이 이랬다.
지하철 연기남 정리해봄.jpg
지오는 그 세 글자를 봤다.
연기남.
“…뭐예요, 이게.”
“이름이야.”
“이름이요?”
“사람들이 붙인 거지.”
“저 이름 있는데요.”
박성호가 커피를 마셨다.
“그건 이제 상관없어.”
지오는 화면을 다시 봤다.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세 글자였다. 저 안에는 스물세 살도 창신동도 어머니의 허리 수술도 동생의 학원비도 들어 있지 않았고, 들어갈 자리도 없었다. 이름이란 원래 사람을 담으라고 있는 것인데 저것은 담지 않으려고 만든 이름이었다.
그냥, 연기남이었다.
“주임님.”
“응.”
“이거 없어져요?”
박성호가 컵을 내려놨다.
“…뭐가.”
“이 이름이요.”
박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그가 말했다.
“야, 커피 식는다.”
지오는 커피를 마셨다.
이미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