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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5

처음

06:20

국밥집은 낙원동 안쪽에 있었다.

간판에 상호가 없이 그냥 국밥, 이라고만 붙은 집. 새벽 다섯 시에 열어 오후 두 시에 닫고, 손님은 대부분 야간 일을 끝낸 사람들이다. 경비, 청소, 배달, 그리고 지하철.

박성호가 두 그릇을 시켰다.

“밥 말아 먹어. 여기는 그렇게 먹어야 돼.”

“네.”

“소주 한 병 시킬까.”

“지금 여섯 시인데요.”

“우리한테는 저녁이잖아.”

“…주임님은 그렇고 저는 아니에요.”

“왜.”

“저 집에 가서 자야 돼요.”

“자기 전에 한잔하면 잘 자.”

지오는 대답 대신 국밥을 먹었다.

뜨거웠다. 어제 저녁부터 편의점 김밥 하나로 버텼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나서, 먹다가 목이 막혀 물을 두 번 마셨다.

박성호는 그것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깍두기를 지오 쪽으로 밀었다.

“그 손님 말이야.”

“네.”

“울었지.”

“안 울었어요.”

“울었어.”

“안 우셨는데요.”

“야, 나 그거 이십 년 봤어.” 박성호가 숟가락으로 국물을 저었다. “그거 울음이야. 소리만 안 낸 거지.”

지오는 국밥을 내려다봤다.

“사진이 뭐였을까요.”

“묻지 마.”

“안 물어봤어요.”

“잘했어.”

박성호는 결국 소주를 시켰다. 한 병을 시켜서 혼자 두 잔 마시고 남겼고, 계산할 때 지오가 지갑을 꺼내려니까 손등을 맞았다.

21:10

며칠이 지났다.

돌은 조끼 주머니에 있었다.

지오는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엇을 하지도 않았다. 씻지도 않고 어디 올려놓지도 않고 누구한테 보여주지도 않고, 그냥 조끼 왼쪽 주머니에 넣어두고 조끼를 입을 때마다 같이 입었다.

이유는 없었다. 굳이 대자면 두 가지쯤 됐는데, 하나는 버릴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이제 와서 버리는 것도 이상해졌다. 다른 하나는, 가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손끝에 닿는 그 감촉이 나쁘지 않다는 것.

여전히 차가웠다.

한 번은 집에서 그것을 꺼내 책상 스탠드 밑에 놓고 십 분쯤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각도를 바꾸면 안쪽에서 빛이 한 번씩 지나갔다. 지현이 방문을 열었을 때 지오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덮었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돌.”

“…돌?”

“어.”

지현이 삼 초쯤 그를 보다가 문을 닫았다.

“오빠 좀 자.”

22:35

여자 화장실 앞에서 소리가 났다.

지오는 대합실 쪽에 있었는데, 소리라기보다 소리의 성질이 먼저 왔다. 사람 많은 역에서 이 년을 일하면 그것이 구분된다. 웃는 소리, 싸우는 소리, 그리고 무서워하는 소리.

세 번째였다.

뛰었다.

여자 화장실 입구에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벽을 짚고 서 있었다. 얼굴이 하얬다.

“손님, 무슨 일이세요?”

“저 안에… 위에서…”

“네?”

“칸 위에서 폰이…”

지오는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돌아섰을 때 남자 하나가 화장실 쪽에서 나와 통로로 걸어가고 있었다. 뛰지 않고 걷고 있었는데, 그게 더 이상했다. 이 시간에 여자 화장실 쪽에서 나와서 뒤도 안 돌아보고 저렇게 걷는 사람은 없다.

“손님.”

남자가 멈추지 않았다.

“손님, 잠깐만요.”

걸음이 빨라졌다.

“저기요!”

남자가 뛰었다.

무전기를 든 것은 뛰면서였다.

“주임님, 여자화장실 몰카 신고, 피의자 3호선 방면으로 도주 중입니다.”

뭐?

“보안관 어디 있어요?”

5호선 쪽 돌고 있을걸

“불러주세요.”

야, 너 따라가지 마

지오는 무전기를 조끼에 걸었다.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 맞았다. 사회복무요원은 추격하지 않는다. 신고하고 인상착의를 전달하고 기다린다. 그것이 규정이고, 규정을 지키면 저 사람은 열차를 탄다.

지하철보안관은 이 역에 있다. 상주 근무다. 그런데 이 역은 크다. 1호선과 3호선과 5호선이 겹쳐 있고 환승 통로만 이백 미터라서, 지금 그 사람들이 어디를 돌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전을 받고 위치를 파악하고 내려오는 데 삼 분.

삼 분이면 열차가 두 번 들어온다.

그리고 그 폰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못 지운다.

22:37

3호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길다.

남자가 두 칸씩 뛰어 내려가서 지오는 세 칸씩 갔는데도 거리가 줄지 않았다. 남자가 더 빨랐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고 몸이 가벼웠고, 무엇보다 배낭도 조끼도 걸치지 않은 몸이었다. 지오는 무거웠다. 조끼가 무겁고 무전기가 무겁고 허리가 무거웠다.

계단 끝에서 남자가 승강장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지오가 마지막 칸을 밟았을 때, 전광판이 보였다.

열차 진입 중.

멀리서 바람이 밀려왔다.

남자가 승강장을 따라 달렸다. 앞쪽 칸으로 가려는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타고, 문이 닫히면 끝. 지오와 남자 사이는 스무 걸음이었다.

스무 걸음은 못 좁힌다.

지오는 그것을 알았다. 계산이 아니라 그냥 알았다. 다리는 이미 한계였고 폐가 타는 것 같았고 허리에서는 뭔가 잘못된 신호가 올라오고 있었다.

못 잡는다.

그런데 그 생각 뒤에 다른 것이 하나 붙었다.

그럼 안 되지.

지오는 그 순간을 나중에 백 번쯤 다시 떠올렸다.

떠올릴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막혔다. 계단 마지막 칸을 밟은 것까지는 기억이 났고, 남자의 등이 스무 걸음 앞에 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다음이 없었다.

없다는 것이, 어두웠다거나 정신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거라면 기억이 끊긴 것이다. 이것은 끊긴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사이가 없었다.

지오는 남자의 팔을 잡고 있었다.

승강장 중간, 스무 걸음 앞이었던 자리였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고 바람이 옆얼굴을 때렸고 안내 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스크린도어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남자가 돌아봤다.

얼굴이 이상했다. 붙잡혀서 놀란 얼굴이 아니라, 무언가를 봤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뭐야.”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숨이 들어오지 않았다. 들이마시려는데 가슴이 벌어지지 않았고, 몸이 잠깐 다른 데 갔다가 방금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중에 무언가가 아직 덜 온 것 같았다.

입안에서 맛이 났다.

탄내였다. 종이 태운 냄새와 비슷한데 그보다 마른 냄새.

“놔.”

남자가 팔을 뺐다. 지오는 놓지 않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는 감각도 없는데 놓아지지가 않았다.

“놓으라고!”

남자가 몸을 비틀자 지오가 딸려갔고, 두 사람이 같이 바닥에 넘어졌다.

허리에서 뭔가 번쩍했다.

22:39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바닥에는 남자 둘이 엉켜 있었고 그중 하나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내리던 사람들이 멈춰 섰다.

그리고 몇 명이 휴대폰을 들었다.

이것이 요즘 사람들의 첫 번째 행동이다. 도와주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일단 찍는다. 지오는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영상이 증거가 된 적도 몇 번 있었으니까. 다만 그 순간에는, 렌즈 여덟 개쯤이 자기를 보고 있었다.

남자가 발버둥을 쳤다. 지오는 그 팔목을 잡은 채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숨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고 허리는 완전히 나갔다.

“아저씨! 이 사람 몰카범이에요!”

지오가 소리를 냈다. 자기 목소리 같지 않았다.

“화장실에서요! 여기 폰 있어요!”

남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반쯤 나와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봤고, 상황이 뒤집혔다.

남자 하나가 다가와 몰카범의 어깨를 눌렀고 옆에서 또 한 명이 붙었다. 여자 하나는 무릎을 꿇고 지오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쳤어요?”

지오는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것도 힘들었다.

22:42

지하철보안관 둘이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무전을 넣고 삼 분 만이었다. 5호선 쪽을 돌던 중이었다고 했다. 삼 분이면 빠른 것이고 지오도 그것을 알았다. 다만 그 삼 분 안에 열차가 한 번 들어왔고, 문이 열렸고, 닫혔다는 것도 알았다.

몰카범은 이미 승객 셋이 붙잡아 놓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잡혔다는 사실보다 다른 것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처럼 계속 지오 쪽을 봤다.

보안관이 인계받고 경찰이 왔고, 목격자 연락처가 오갔다.

끌려가면서 남자가 한 번 버텼다.

“저기요.”

경찰이 팔을 당겼다.

“저 사람.” 남자가 지오 쪽으로 턱을 들었다. “저 사람 이상해요.”

“가시죠.”

“아니, 진짜로. 저기 계단에 있었는데 갑자기…”

“가시자고요.”

“내 말 좀 들어봐요!”

경찰 둘이 남자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갔고, 목소리는 계단 중간쯤에서 끊겼다.

옆에 선 보안관 하나가 조서 판을 겨드랑이에 끼면서 말했다.

“저런 애들이 꼭 저래요.”

“…네?”

“잡히면 이상한 소리 해요. 술 먹었다, 귀신 봤다, 필름 끊겼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지오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23:05

여자 화장실 앞으로 돌아갔다.

신고한 사람은 아직 거기 있었다. 벽 옆에 서서 두 손으로 가방끈을 잡고 있었는데, 아까보다 얼굴색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

“잡았어요.”

“…네?”

“그 사람 잡았어요. 경찰이 데려갔고요.”

“아.”

여자가 고개를 두 번 끄덕이다가 세 번째에 멈췄다.

“근데 폰은요.”

“폰도 같이 갔어요. 증거니까 경찰이 가져갔고, 안에 있는 건 다 삭제 처리돼요.”

“…확실해요?”

지오는 잠깐 말을 골랐다.

여기서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그것은 지오가 보장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회복무요원이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가 아는 선에서는요.”

“…네.”

“조사받으실 때 그거 꼭 물어보세요. 삭제 확인서 받을 수 있냐고. 그거 요청하시면 돼요.”

여자가 그를 봤다.

“그런 게 있어요?”

“있어요.”

지오는 수첩을 찢어 적어줬다. 삭제 확인서. 그 밑에 종로3가역 유실물 담당 번호도 적었다.

“혹시 뭐 잘 안 되면 여기로 전화하세요.”

“…감사합니다.”

“택시 잡아드릴까요?”

“아니요. 친구 부를게요.”

여자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꺼내다가 손이 떨려 두 번 놓칠 뻔했는데, 두 번 다 지오는 못 본 척했다.

박성호가 뛰어 내려온 것은 그때쯤이었다.

“야.”

“네.”

“내가 따라가지 말랬지.”

“…네.”

“따라가지 말라고 했잖아.”

“네.”

박성호가 지오 앞에 쭈그려 앉았다. 화가 난 얼굴이었는데, 화가 난 얼굴 밑에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어디 다쳤어.”

“허리요.”

“…씨.”

그가 일어나서 무전기를 들었다.

“119 불러야겠는데.”

“괜찮아요.”

“안 괜찮아.”

오늘 처음 듣는 말이었다. 요즘은 하루에 한 번씩 듣는다.

23:30

응급실 대신 역무실 간이침대에 누웠다.

지오는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하나 나가 있었고, 저것도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다가, 아까 그 이십 초를 다시 떠올렸다.

스무 걸음이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고 다리는 한계였고 허리는 나가기 직전이었다. 그런 상태로 스무 걸음을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백 미터 달리기 선수여도 안 된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잡았다.

지오는 오른손을 들어 눈앞에 놓았다.

손이었다. 그냥 손. 손톱 밑에 검은 것이 조금 끼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닥에 넘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손을 내렸다.

너무 열심히 뛰었나 보다.

그 결론이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다. 이상한데, 다른 결론이 없었다. 사람은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설명할 방법이 없으면 제일 가까운 거짓말을 고른다. 지오는 그것을 골랐고, 눈을 감았다.

왼쪽 주머니에서 돌이 옆구리에 닿았다.

여전히,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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