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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2

스물셋

06:12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오면 세상이 이미 한참 앞서 있다.

사람들은 씻고 나와서 다린 셔츠에 마른 머리로 커피를 들고 걸어가는데, 지오는 그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조끼는 벗어서 가방에 넣었지만 벗는다고 티가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야간을 뛴 사람의 얼굴은 회색이다. 피부 아래에서 색이 한 겹 빠져나간 것처럼.

여름 아침 여섯 시의 종로는 밝기만 하고 아직 뜨겁지는 않았다. 이 도시가 하루 중 유일하게 살 만한 두 시간이 지금인데, 지오는 그 두 시간을 늘 걷는 데 썼다.

창신동 언덕은 마을버스로 오를 수도 있었다.

지오는 걸어 올라갔다.

버스비 천오백 원. 한 달이면 사만 오천 원이고 왕복이면 구만 원. 계단은 백 몇 개쯤 되는데 세어 본 적은 있지만 매번 숫자가 달라져서 그만뒀다. 중간쯤 오르면 왼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슬레이트 지붕에 파란 방수 페인트를 칠한 집들이 계단식으로 겹치고, 옥상마다 물탱크와 빨래가 있고, 그 너머로 종로의 빌딩들이 아침 빛을 받으며 서 있다.

지오는 그 자리에서 한 번 쉬었다. 경치 때문은 아니고 허리 때문이었다.

06:40

현관문을 여니 신발이 하나 없었다.

어머니는 새벽 다섯 시에 나간다. 낙원동 순댓국집 주방인데, 일용직이라 매일 나가는 것은 아니고 매일 나가는 것처럼 나간다. 부르면 가고 안 부르면 다른 데를 찾는 식으로 지난달에는 스물세 번을 나갔다. 지오는 그것도 세고 있었다.

집은 방 두 개에 거실 겸 부엌 하나. 거실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크기라 세 식구 다 그냥 부엌이라고 불렀다. 창문이 하나 있기는 한데 옆 건물 벽이 이 미터 앞을 막고 서 있어서 빛이 잘 들지 않았고, 그게 지오한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낮에 자야 하니까.

싱크대 위에 쪽지가 있었다.

밥 먹고 자

밑에 밑줄이 두 번 그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강조하고 싶은 말에 밑줄을 긋는 사람이다. 한 번은 그냥 말이고 두 번은 진심이고, 세 번이면 정말 화가 난 것이다. 세 번은 삼 년 전에 한 번 봤다.

냄비에는 미역국이 있었다. 어제 것이거나, 어쩌면 그제 것.

지오는 가스레인지를 켰다.

방문이 열렸다.

한지현이 머리를 하나로 묶으면서 나왔다. 열아홉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은 가지 않았고, 편의점 아침 타임을 뛰면서 미용 학원에 다닌다. 손톱에는 파란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데 오른손 검지만 벗겨져 있었다. 학원에서 연습하다 그렇게 됐다고 지난주에 말했다.

남매가 얼굴을 보는 시간은 하루 이십 분쯤 된다. 지오가 들어오고 지현이 나가는 그 사이.

“왔어?”

“어.”

“국 끓이지 마. 그거 상했어.”

지오가 가스레인지를 껐다.

“엄마가 먹으라던데.”

“엄마는 못 먹는 게 없어.”

지현이 냉장고를 열더니 문을 잡은 채 삼 초쯤 서 있다가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닫았다. 그러고는 지오를 봤다.

“오빠.”

“어.”

“얼굴이 왜 그래.”

“어떤데.”

“…죽은 사람 같아.”

“고맙다.”

“칭찬 아니야.”

“알아.”

지현이 신발을 신었다. 뒤꿈치를 꺾어 신고 발을 두 번 굴렀는데, 그 운동화는 뒤축이 한쪽만 닳아 있었다. 걸을 때 발을 안쪽으로 끄는 버릇 때문이다.

“오빠.”

“어.”

“학원비 다음 주야.”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고, 지현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 집의 오래된 방식이었다. 말은 하되 답은 요구하지 않는 것. 답을 요구하면 서로 곤란해지니까.

“됐어. 내가 알바 하나 더 잡을게.”

“하지 마.”

“왜.”

“너 지금도 잠 네 시간 자잖아.”

“오빠는 세 시간 자잖아.”

“나는 나라에서 시켜서 자는 거야.”

지현이 그를 잠깐 봤다. 뭔가 말하려다 말고 문을 열었다.

“미역국 진짜 먹지 마. 냄새 났어.”

문이 닫히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세 층 아래까지 이어졌다. 지현은 늘 뛰어 내려간다.

지오는 냄비 뚜껑을 열고 코를 대봤다.

먹을 만했다.

07:20

밥을 먹고 나서 우편함을 확인했다.

전기 요금, 통신사 안내문, 그리고 흰 봉투 하나. 발신인 칸에는 법무법인 이름이 찍혀 있었다.

지오는 그것을 뜯지 않은 채 한참 들고 있었다. 뜯지 않아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았다. 지난달에도 왔고 그 전달에도 왔는데 이름이 조금씩 달랐다. 채권이 팔려나갈 때마다 회사 이름이 바뀐다는 것을 그는 열아홉에 배웠고, 팔릴 때마다 금액은 줄지 않고 사람만 바뀐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봉투 겉면의 이름은 아버지 이름이었고, 주소는 이 집이었다.

지오는 봉투를 신발장 위 상자에 넣었다. 라면 박스를 반으로 잘라 만든 상자 안에는 같은 봉투가 열몇 개 쌓여 있었다. 어머니가 만든 상자였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버리지도 열지도 않았는데, 뜯지 않으면 받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

그 상자에 대해서 세 식구는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지오는 이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써봤다. 나쁜 사람이었다. 아니, 나쁜 사람이 됐다. 아니, 나쁜 일을 했다. 아니, 나쁜 일이 그 사람한테 일어났다.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는 십오 년을 한 회사에 다닌 사람이었다. 자재 관리였고, 아침 일곱 시에 나가 저녁 여덟 시에 들어왔고, 지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주말마다 자전거를 태워줬다. 안장 뒤를 잡아주며 같이 뛰다가 어느 순간 손을 놓고, 지오가 돌아보면 저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사람.

그리고 어느 시점에 다른 사람이 됐다.

그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엔 주식이었다. 회사 동료가 알려줬다고 했고 한 번 크게 벌었다고 했고, 그때 집에 케이크가 왔다. 그다음엔 다른 것이었고, 그다음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돈이 사라지고 차가 사라지고, 전세가 월세가 되고 월세가 여기가 됐다.

지오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고 어머니가 부엌에 서 있었는데,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소리를 지르는 게 정상 같았는데.

아버지가 남긴 말은 미안하다도, 잘 있으라도 아니었다.

“금방 정리하고 올게.”

그게 삼 년 전이다.

지오가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미워하려면 나쁜 놈이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냥 진 사람이었다. 계속 지다가 도망간 사람. 그런 사람은 미워하기가 애매하고, 애매한 것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08:00

커튼을 쳤다.

암막 커튼은 지현이 첫 월급으로 사준 것이다. 얼마 줬냐고 물었더니 얼마 안 줬다고 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꽤 비쌌다.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야간 근무자의 잠은 얕다. 낮의 세상은 시끄럽다. 오토바이가 언덕을 오르며 엔진을 쥐어짜고 아래층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올라오고 골목 어딘가에서는 늘 공사를 한다. 창신동은 봉제 공장이 많아서 재봉틀 소리도 나는데, 여러 대가 동시에 돌면 그게 빗소리처럼 들렸다. 지오는 그 소리만은 괜찮았다.

누웠다.

허리가 먼저 아팠다.

수술한 지 삼 년. 고3 때 물류센터 상하차를 두 달 하고 그렇게 됐다. 시급이 좋았고 밤에 하는 일이라 학교와 겹치지 않았고, 두 달만 하면 등록금 절반이 나온다고 했다. 디스크가 밀려 나왔고 수술을 했고 신체검사에서 4급이 나왔다.

그래서 여기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 그 알바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현역으로 갔을 거고 지금쯤 전역했을 거고, 그러면 그동안 지현이 학원비는 누가 냈을까. 어머니가 냈을 것이다. 스물세 번 나가던 것을 서른 번 나가서.

그런 생각은 끝이 없어서 아무 데도 못 간다.

지오는 돌아누웠다. 허리가 또 아팠는데, 통증이라기보다는 존재감에 가까웠다. 거기 뭔가 있다고 계속 알려주는 감각.

재봉틀 소리가 났다.

17:30

깼을 때 방이 어두웠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빛이 벽에 얇은 선을 하나 그어놓고 있었다. 그 선의 각도로 대충 몇 시인지 알 수 있게 된 지도 일 년쯤 됐다.

휴대폰에는 부재중이 없었고, 어머니한테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국 먹었니

맛있었어요

거짓말

진짜예요

지현이가 다 일렀어

지오는 웃으면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침대 모서리를 짚었다.

18:40

출근길에는 탑골공원 앞을 지난다.

여름 저녁의 탑골공원 앞은 하루 중 가장 붐빈다. 담장을 따라 노인들이 앉아 있고 서 있고 장기를 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정문 옆에서는 늘 누군가 확성기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내용은 매번 다르고 목소리 톤은 매번 같다. 그 앞 인도는 사람 둘이 겨우 지나가는 폭이다.

냄새도 있다. 담배와 파스와 커피믹스, 그리고 오래 입은 옷 냄새.

지오는 이 길을 이 년 넘게 지나다녔다. 지나다니다 보면 얼굴이 외워지고, 얼굴이 외워지면 인사를 하게 되고, 인사를 하게 되면 이름은 몰라도 아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이 동네의 방식이었다.

담장 끝 세 번째 자리에는 늘 앉아 있는 노인이 있었다.

늘 같은 자리였다. 비 오는 날에도 그 자리 처마 밑에 있었다. 여름에도 두꺼운 점퍼를 입었고, 등이 굽어서 앉으면 목이 앞으로 나왔다. 지오는 그 사람 이름을 몰랐고 그 사람도 지오 이름을 몰랐다. 이 년 동안 나눈 대화를 다 합치면 삼십 문장쯤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늘 하듯 고개만 한 번 끄덕이려니 했는데, 오늘은 좀 오래 쳐다봤다.

“…출근하나.”

“네.”

“밤에 하는 거지.”

“네.”

“몸 상해.”

“괜찮아요.”

“안 괜찮아.”

지오는 웃었다. 오늘 두 번째였는데, 오늘 만난 두 사람이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게 웃겼다.

노인이 앞을 봤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은 손등이 두껍고 마디가 굵었다. 평생 무언가를 쥐고 산 손.

그러고는 아무한테도 안 하는 말처럼 말했다.

“나는 어제 짐을 하나 덜었어.”

“…뭐요?”

“별거 아냐.”

노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지오는 잠깐 서 있다가 인사를 하고 걸었다. 몇 걸음 가서 돌아봤을 때, 노인은 아까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다만 등이 조금 펴져 있었다.

원래 저렇게 앉았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19:00

역무실에서 조끼를 입었다.

박성호가 컵라면에 물을 붓고, 뚜껑 위에 젓가락을 올리고, 그 위에 스테이플러를 얹었다.

“왔냐.”

“네.”

“국밥 사준다니까 왜 안 왔어.”

“주무시는 거 아까워서요.”

“…야.”

“네.”

“너 자꾸 그러면 진짜 안 사준다.”

“네.”

“진짜야.”

“네.”

박성호가 스테이플러를 치웠다.

“오늘 좀 조용하대. 편하게 하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End of Episode
스물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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