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났을 때 지오는 안쪽 방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눕혀져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신발이 벗겨져 침대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담요가 가슴까지 덮여 있었다. 누군가 정성 들여 한 일이었고, 그 정성이 지난 세 시간의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않아서, 지오는 잠깐 아무것도 아닌 천장을 봤다.
몸을 일으키자 세상이 반 바퀴 돌았다.
헌혈을 세 번 연달아 한 것 같은 몸이었다. 뼈는 다 있는데 뼈 사이를 채우던 것이 없었다. 지오는 침대 모서리를 잡고 앉아서, 자기 손끝을 봤다. 아무것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불러볼 필요도 없이 알 수 있었다. 몸속 어딘가가 빈 서랍처럼 덜컹거렸다.
문에는 손잡이가 있었고,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사무실로 나가자 민현석이 지오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오의 책상, 지오의 기록지 옆에서, 서류를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일어나셨네요.”
그는 일어나서 정수기로 갔다. 종이컵을 뽑고, 물을 받고, 지오 쪽 책상 위에 놓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컵 바닥부터 조심스럽게.
“드세요. 그거 빠져나가면 갈증이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문장에는 정보가 두 개 들어 있었다. 갈증이 심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겪은 사람이 지오 말고 또 있다는 것.
지오는 컵을 보기만 했다.
한지현은 회색 복도에서 번호를 받았다.
수속은 주민센터와 비슷했다. 그것이 제일 이상했다. 끌려 내려온 버스에서, 피 맛이 나는 입안으로 각오했던 것은 감옥이거나 창고거나 지하실이었는데, 문을 지나자 나온 것은 접수대였다. 컴퓨터가 있고, 프린터가 있고, 제복을 입은 여자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제복이 낯익었다. 남색 셔츠에 어깨의 견장, 가슴의 명찰과 휘장. 위에서 본 사람들은 전부 회색 작업복이었는데, 이 아래에는 정식 제복이 있었다. 작업복은 아무나 입을 수 있지만 제복은 아무나 입지 못한다. 제복은 국가가 준다.
“한지현 씨. 생년월일이요.”
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화내지 않고 옆의 서류를 읽고 자기가 입력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물어본 것이다. 절차니까. 절차라는 것이 이런 데에도 있다는 사실이, 지현이 그때까지 세운 모든 가설을 지웠다.
손목에 밴드를 채워줬다. 놀이공원에서 채워주는 것과 같은 종이 재질에, 바코드와 번호가 찍혀 있었다.
D-2174.
이름은 어디에도 인쇄되지 않았다.
“환복하세요.”
접수대 옆 칸막이 안에 옷이 개켜져 있었다. 위아래 한 벌씩. 여자 것은 흐린 청록색이었고, 복도 저쪽에서 남자들이 받아 가는 것은 카키색이었다. 면이 두꺼웠고, 세탁을 많이 해서 색이 빠져 있었고, 가슴께에 번호를 넣는 자리가 있었다.
교도소 옷이었다.
지현은 그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뉴스에서 봤고 드라마에서 봤다. 다만 지현이 아는 그 옷들에는 죄명이 붙어 있었다. 무슨 죄로 몇 년. 그것이 옷의 의미였다.
“저희 무슨 죄로요.”
지현이 물었다. 처음으로 낸 목소리였다.
여자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미결이세요.”
미결.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이 입는 옷. 그러니까 언젠가 재판이 있고, 죄명이 정해지고, 형기가 나오고, 그 형기가 끝나면 나가는 사람의 옷이었다.
여기에 재판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지현은 이 옷이 무엇인지 알았다. 영원히 미결인 사람들의 옷. 죄가 없어서 형기도 없고, 형기가 없어서 끝나는 날도 없는.
교복을 벗어서 접었다.
접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접었다. 넥타이를 풀고, 블라우스를 개고, 치마의 주름을 손으로 폈다. 회수함에 넣으라고 했고, 넣으면 다시는 못 볼 것을 알았고, 그래서 넣기 전에 한 번 더 접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어머니도 갈아입고 나와 있었다.
앞치마가 없어진 어머니는 낯설었다. 이십 년 동안 어머니의 앞치마를 봤다. 식당 것, 집 것, 명절 것. 그 앞치마가 없어지고 색 빠진 청록색 상의가 남으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어머니가 아니라 그냥 오십 대 여자 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름을 지우는 데 서류가 필요 없었다.
옷 한 벌이면 됐다.
“이쪽으로.”
복도는 길었고, 천장의 형광등은 세 개에 하나꼴로 꺼져 있었다. 절전. 지현은 그 단어를 떠올리고 소름이 돋았다. 사람을 가두는 곳에서 전기세를 아끼고 있었다. 괴물의 소굴이 아니었다. 관공서였다. 관공서가 괴물의 소굴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열아홉 살은 그 복도에서 배웠다.
어머니는 반걸음 앞에서 걸었다.
끌려 내려온 뒤로 어머니는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는데, 지현은 그 이유를 알았다. 어머니는 지금 화를 참는 것도 무서움을 참는 것도 아니었다. 계산 중이었다. 식당 주방에서 주문이 밀릴 때 짓는 얼굴. 무엇부터 처리해야 딸이 다치지 않는지, 그 순서를 짜는 얼굴이었다.
“저기요.”
앞뒤로 둘이 붙어 있었다. 앞에서 걷는 쪽은 접수대의 여자와 같은 남색 제복이었고, 뒤에서 따라오는 쪽은 같은 제복 위에 검은 방탄조끼를 덧입고 있었다. 노인과 여자 둘을 옮기는 데 두 사람이 붙었고, 그중 하나는 조끼를 입었다.
어머니가 앞의 제복에게 말을 걸었다.
“애는 학생이에요. 모레 모의고사예요.”
제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뒤에서 오는 발소리도 속도를 바꾸지 않았다.
“애는 잘못한 게 없잖아요. 나는 여기 있을 테니까 애만.”
“어머니.”
지현이 어머니의 소매를 잡았다. 그 말을 계속하게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여기 있을 테니까, 라는 문장을 어머니가 완성하게 두면 안 됐다. 그 문장은 완성되는 순간 절차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여기는 절차가 사는 곳이니까.

복도 끝에서 문이 열렸고, 넓은 공간이 나왔다.
지현은 나중에 그 공간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게 된다.
체육관만 한 홀에 이층 침대가 줄지어 있었다. 백 개는 넘어 보였고, 절반쯤 차 있었다. 노인들이 많았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은 사람, 벽을 보고 누운 사람, 이층 난간에 수건을 널어놓은 사람. 한쪽 벽에는 세면대가 줄지어 있고, 다른 쪽에는 식판 반납구가 있었다.
수용소라고 하기에는 침대가 있었다.
병원이라고 하기에는 의사가 없었다.
대피소라고 하기에는, 문이 밖에서 잠겼다.
지현의 눈은 그 와중에도 세고 있었다. 침대 수를, 사람 수를, 카메라 위치를, 출구 수를. 세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세는 것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고, 지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오빠와 같은 피였다.
출구는 두 개. 카메라는 여덟 대. 그리고 출구마다 서 있는 사람이 둘씩.
그쪽 사람들은 접수대의 여자와 같은 남색 제복이었는데, 위에 검은 조끼를 덧입고 있었다. 두꺼웠다. 등판에 영문 약자가 흰 글씨로 박혀 있었고, 허리에는 짧은 봉과 손전등이 걸려 있었다. 팔짱을 끼고 서서 홀을 보고 있었다.
노인들만 있는 방이었다.
담요를 뒤집어쓴 노인, 벽을 보고 누운 노인, 이가 없어서 입이 오므라든 노인. 그 방에 방탄조끼가 필요할 이유가 지현은 떠오르지 않았다. 필요해서 입은 것이 아니라면, 필요할 일이 언젠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지현은 그 조끼를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세는 것을 멈추게 될 것 같았다.
사람을 세다가 지현은 멈췄다.
구석 침대에 앉아 있는 노인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니, 이쪽이 아니라 지현의 손목을. 노인은 자기 손목을 들어 보였다. 같은 종이 밴드가 채워져 있었는데, 노인의 것은 낡아서 모서리가 부풀어 있었다.
오래 됐다는 뜻이었다.
저 밴드는 종이인데. 종이가 낡을 만큼의 시간 동안, 저 노인은 여기서 저러고 앉아 있었다는 뜻이었다. 지현은 갑자기 오빠가 몇 주 전에 하던 말이 떠올랐다. 밤에만 있어서 사람을 잘 못 봐. 식탁에서, 계란말이 옆에서, 아무 일 없는 얼굴로 하던 말.
오빠는 뭘 알고 있었을까.
그 생각은 원망이 되기 전에 다른 것이 되었다. 주차장에서 본 오빠의 얼굴. 하얗게 굳어 있던, 이쪽을 보고 있던 얼굴. 오빠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다. 오빠도 지금 어딘가에서 이것을 처음부터 세고 있을 것이다. 출구를, 카메라를, 방법을.
지현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응.”
“오빠가 위에 있어.”
어머니의 계산하던 얼굴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다만 이번 계산에는 항이 하나 늘어 있었고, 그것이 어머니의 어깨를 아주 조금 펴지게 했다.
“그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밥 주면 먹고, 자라면 자자. 몸 성하게.”
그것이 어머니의 결론이었다. 싸우지 않는 것. 버티는 것. 몸 성하게 있는 것이 갇힌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계산으로 알아냈고 지현은 그 등을 보며 배웠다.
소등 방송이 나왔다. 안내 멘트는 백화점 폐점 방송처럼 정중했다.
“가족분들은 안전합니다.”
민현석이 말했다. 지오는 여전히 컵을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안전하다는 말을 제가 믿을까요.”
“믿으실 필요는 없어요. 확인하시면 되니까.”
민현석이 서류철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책상에 놓았다. 어두운 홀, 이층 침대, 그 앞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어머니와 지현이었다. 담요를 두르고 있었고, 지현이가 어머니에게 무언가 말하는 순간이 찍혀 있었다. 다친 데는, 사진으로 보이는 한은, 없었다.
시간이 우상단에 찍혀 있었다. 삼십 분 전.

“매일 이 시간에 한 장씩 드릴 수 있어요.”
민현석은 그것을 복지 혜택을 안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건이 뭐예요.”
“일을 계속하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하던 대로.”
“…그게 다예요?”
“하나 더 있어요.”
민현석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오늘 같은 일이 다시 없어야 해요. 그건 한지오 씨한테도 안 좋아요. 보셨잖아요, 천장.”
지오는 컵을 봤다. 물은 반듯하게 담겨 있었다. 목은 탔다. 갈증이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라던 말은 사실이었고, 그래서 더 마시기 싫었다. 이 목마름까지 저들의 계산 안에 있었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지현이는 어머니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입이 움직이는 순간이 찍혀 있었다. 울고 있는 입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전하는 입이었다. 그 애는 저 아래에서도 뭔가를 세고, 뭔가를 계산하고, 뭔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몸 성하게 버티는 두 사람이 저기 있고, 그 두 사람이 버티는 동안 위에 있는 사람이 할 일은 하나였다.
지오는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한 번에 다 마시고, 빈 컵을 내려놓고, 민현석을 봤다.
“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대신 사진, 매일 주세요.”
“물론이에요.”
민현석이 일어나서 서류철을 챙겼다. 나가다가 문가에서 한 번 돌아섰는데, 그 얼굴에는 드물게도, 눈과 입이 같이 움직이는 표정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한지오 씨.”
“네.”
“물 마셔줘서 고마워요.”
문이 닫혔다.
지오는 빈 컵을 오래 봤다. 구겨버리려다가, 구기지 않고, 책상 서랍에 넣었다. 첫날의 컵. 잊지 않기 위해 남겨두는 물건이 사람에게는 필요하고, 지오의 서랍에는 이제 그것이 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최유진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오는 카톡은 야간 근무자들끼리만 아는 시간대의 것이고, 유진은 오늘 야간이었을 것이다.
`야 유실물에 오늘 뭐 들어왔는지 아냐`
`거북이`
`살아있는 거북이 ㅋㅋㅋㅋ 대장에 뭐라고 써야 되냐 이거`
발령 난 뒤로 유진의 카톡은 끊긴 적이 없었다. 답을 한 적은 세 번쯤 있었다. 세 번 다 한 글자였다. 유진은 그것을 따지지도 않았고 서운해하지도 않았고, 그냥 계속 보냈다. 유실물 얘기, 박성호 얘기, 지오 자리에 새로 온 애가 규정집을 못 외운다는 얘기.
지오는 화면을 봤다.
거북이. 대장에 뭐라고 써야 되냐. 그런 것을 고민할 수 있는 세계가 지상에 아직 있었고, 그 세계에서 누군가 새벽 다섯 시에 지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뭐라도 쓰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쓰게 될지 자신이 없어서였다. 지오는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읽음 표시만 하나 늘었다.
내일 사진이 올 것이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버틸 것이다.
그동안 지오는, 세기로 했다. 지현이가 아래에서 세고 있을 것들을 위에서. 차량을, 명단을, 교대 시간을, 저들이 지오에게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을.
버티는 것도 전략이고, 세는 것도 전략이다.
한 집에서 배운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