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업무는 사흘째 되는 날 왔다.
민현석이 노트북 한 대를 들고 와서 지오의 책상에 놓았다. 새것은 아니었고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전에 누가 쓰던 물건이라는 뜻이었고,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지오는 묻지 않았다.
“이제 기록지 말고 이걸로 하세요.”
화면에 표가 떠 있었다. 열네 개의 열,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행. 지오는 그 표를 알아봤다. 차 안에서 조수석 대원의 무릎 위에 있던 것, 사진 옆의 파란 행, 스크롤바가 아주 작던 것.
명단이었다.
“출동 나가면 그날 대상자 확인하시고, 복귀하면 상태 갱신하시면 돼요. 어렵지 않아요.”
민현석이 마우스를 잡고 열 몇 개를 클릭해 보였다. 성명, 생년, 최종 확인 위치, 담당 차량, 이송 일시, 상태. 상태 칸을 누르면 목록이 아래로 떨어졌는데 항목이 여섯 개쯤 됐고, 그중 지오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두 개까지였다. 대기, 수용.
“세 번째는요.”
“그건 한지오 씨가 건드릴 일 없어요.”
민현석은 그 문장을 아주 짧게 놓고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지오는 그 짧음을 기억해 두기로 했는데, 이 사람은 길게 말할 때보다 짧게 말할 때 더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었다.
“질문 있으세요?”
있었다. 100개쯤 있었다.
“없어요.”
“그럼 오늘부터 하시죠.”
민현석이 나가고 지오는 노트북 앞에 혼자 남았다. 커서가 깜빡이는 동안 마우스를 잡은 손이 떨렸고, 손을 무릎에 내려놓고 한참 있다가 다시 올렸는데도 여전히 떨렸다.

지오는 그날 밤 첫 행을 눌렀다.
이제 지오는 안쪽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첫날 밤에 그것을 알았다. 차량이 복귀하는 소리가 나자 몸이 먼저 일어나 안쪽 방 쪽으로 반걸음을 갔는데, 지나가던 오반장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제 안 들어가셔도 돼요.”
그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고, 이해하고 나니 등이 서늘했다. 숨길 것이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지오는 사무실 문가에 서서 하역을 봤다. 버스 뒷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대원들이 양팔을 잡고 손잡이 없는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전부 봤다. 3주 동안 문 하나 너머에서 소리로만 듣던 것이 눈앞에서 지나갔고, 바퀴 소리의 정체도 그때 확인했다. 이동식 침대였다. 지오가 짐작했던 그것이 맞았고, 맞아서 아무 위로도 되지 않았다.
그날 실려 온 사람은 11명이었다. 지오는 그 숫자를 셌다. 세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셌고, 세고 나서 노트북에 열한 개의 행을 입력했다. 상태 칸을 대기에서 수용으로 바꾸는 데 드는 것은 클릭 두 번이었다.
사람 하나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데 세상이 요구하는 노동이 클릭 두 번이었다.
사진은 약속대로 왔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민현석이 사무실에 들러 봉투 하나를 놓고 갔다. 봉투 안에는 사진이 한 장씩 들어 있었고, 어두운 홀과 이층 침대와 나란히 앉거나 누운 두 사람이 찍혀 있었다. 화질은 좋지 않았고 우상단에 시간이 박혀 있었다.
첫날 사진에서 두 사람은 앉아 있었다. 둘째 날에는 어머니가 누워 있고 지현이가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셋째 날에는 둘 다 앉아서 무언가를 먹는 중이었는데 앞에 놓인 것이 식판이었다. 밥이 나온다는 뜻이었고, 국 나오는 데가 좋은 데라던 어머니의 말이 그 사진 위에서 아주 이상한 소리를 냈다.
지오는 사진을 서랍에 넣었다. 첫날의 종이컵 옆에.
넷째 날 사진에서 지현이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손가락이 펴져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지오는 그 손을 오래 봤다. 무엇을 세고 있는 걸까. 침대 수일까, 사람 수일까, 아니면 날짜일까. 날짜라면 나흘째였다.
지오도 세고 있었다. 사무실 서랍 안쪽 나무에 볼펜으로 아주 작게 그었다. 하나씩 그을 때마다 지현이도 어딘가에 하나씩 긋고 있을 것 같았고, 그 생각이 그 주에 지오를 버티게 한 유일한 것이었다.
출동에도 계속 나갔는데, 이제 지오는 명단을 든 쪽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태블릿을 들고 파란 행을 누르고 도착하면 사진과 대조하는 일이었다. 3주 전에 옆자리에서 훔쳐보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 지오가 앉아 있었다.
그날의 대상은 오십 대쯤 되는 여자였다.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세워두고 상가 계단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는 중이었고, 명단 사진과 같은 얼굴이었다. 지오는 태블릿을 보고 여자를 보고 다시 태블릿을 봤다.
“맞아요?”
오반장이 물었다.
지오는 대답하지 않은 채로, 대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잠깐 계산해 봤다. 아니라고 하면, 사람을 잘못 봤다고 하면, 오늘 하루 저 여자는 손수레를 끌고 집에 갈 것이다. 그리고 내일 다른 차량이 다시 올 것이고, 오늘 새벽 다섯 시에 오던 봉투가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맞아요.”
말한 것은 지오의 입이었다.
여자는 순순히 왔다. 따뜻한 데 모셔다드린다는 말을 듣고 나서 손수레를 두고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오반장이 저희가 치워드린다고 대답하자 그 말에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손수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자가 지오에게 말을 걸었다.
“총각 착하게 생겼네.”
지오는 창밖을 봤다.
“우리 아들도 그맘때인데.”
지오는 대답을 고르다가 고르지 못하고 그냥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여자는 더 말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이 어떤 종류의 침묵인지 지오는 알았다. 지오도 그 침묵을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퇴근 버스에서 휴대폰을 보니 유진의 카톡이 열두 개 쌓여 있었다.
`야 거북이 주인 찾았다`
`할머니가 손자꺼라고 울면서 오심`
`근데 거북이 이름이 뭔지 아냐`
`복순이래 ㅋㅋㅋㅋㅋㅋㅋ`
`야 한지오`
`너 살아있냐`
`읽씹 삼주째다`
`나 화 안 났음 근데 걱정은 됨`
`밥은 먹고 다녀?`
`강남 좋냐`
`답장 안 해도 되는데 그냥`
`살아만 있어라`
지오는 그 열두 개를 두 번 읽었다.
살아만 있어라, 하는 다섯 글자가 이상하게 아팠다. 유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쓴 것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이었으며, 그래서 요즘 지오에게 오는 말들 중에 유일하게 계산이 들어 있지 않은 문장이었다.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야`
지웠다.
`유진아`
지웠다.
`나 좀 도와줘`
그 다섯 글자를 지오는 오래 봤고, 보내면 어떻게 되는지 계산이 저절로 돌아갔다. 유진은 올 것이고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유진의 이름이 어딘가의 명단에 한 줄로 오르고, 어느 새벽에 버스가 유진의 자취방 앞에 설 것이다. 지오는 이제 그 과정을 순서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오는 그 다섯 글자도 지웠다.
`잘 지내`
보냈다. 3주 만의 답장이 네 글자였다. 유진에게서 일 초 만에 답이 왔다.
`살아있네 ㅅㅂ`
`ㅇㅇ 잘 지내라`
그것이 다였다. 더 캐묻지 않는 것이 유진의 방식이었고, 지오는 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첫 주가 끝난 날, 지오는 서랍을 열었다.
종이컵이 있었고 사진 여섯 장이 있었고 서랍 안쪽에 볼펜 자국이 여섯 개 그어져 있었다. 지오는 일곱 번째를 그으려고 볼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지오는 볼펜을 놓고 자기 손을 들어 봤다. 월요일에는 마우스를 잡는 것도 힘들었고 화요일에는 열한 개의 행을 입력하는 동안 오타를 두 번 냈으며 수요일에는 상태 칸을 바꾸기 전에 매번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런데 목요일에는 숨을 쉬지 않고 바꿨고, 금요일에는 여자를 명단과 대조하면서 맞아요, 라고 말했고, 토요일에는 열네 명을 입력하는 데 십이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빨라졌다는 것은 익숙해졌다는 뜻이고, 익숙해졌다는 것은.
지오는 손을 내려다봤다. 떨리지 않는 손이었다. 스물세 해 동안 이 손으로 노인을 부축하고 취객을 말리고 유실물을 대장에 적었는데, 이제 이 손은 클릭 두 번으로 사람을 지하로 보내고 그러고 나서도 떨리지 않는다.
일주일이 걸렸다. 사람이 무뎌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 일주일이라는 것을 지오는 자기 손으로 알아냈다.
지오는 서랍에 일곱 번째 줄을 그었다.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 줄은 앞의 여섯 개보다 반듯했다.
반듯한 것이 제일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