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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1

손가락

둘째 주 화요일, 05:00

가설이 깨진 것은 열이틀째 사진에서였다.

지오는 그때까지 손가락을 날짜로 읽고 있었다. 넷째 날에 넷, 다섯째 날에 다섯. 그렇게 맞아떨어졌으니까 의심할 이유가 없었고, 의심하지 않는 편이 마음도 편했다. 동생이 날짜를 세고 있다는 것은 동생이 아직 시간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열이틀째 사진에서 지현이는 손가락을 여덟 개 펴고 있었다.

양손이었다. 무릎 위에 두 손을 나란히 놓고, 오른손 다섯과 왼손 셋. 여덟.

지오는 그 사진을 들고 형광등 아래로 갔다. 화질이 나빠서 손가락이 뭉개져 있었지만 여덟은 여덟이었다. 열이틀째에 여덟. 날짜가 아니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맞았던 것은 뭐였나.

지오는 서랍을 열고 사진을 전부 꺼냈다. 열두 장. 책상 위에 날짜순으로 늘어놓는데 손이 급해져서 두 장을 떨어뜨렸다. 주워서 자리를 맞추고,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손가락을 셌다.

하나. 둘. 셋. 넷.

여기까지는 날짜와 같았다.

다섯째 날, 여덟.

여섯째 날, 아홉.

일곱째 날, 다섯.

지오는 거기서 손을 멈췄다. 여덟, 아홉, 다섯. 그다음을 보기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보기 전에 심장이 먼저 알아버려서였다.

여덟째 날, 여덟.

아홉째 날, 아홉.

열째 날, 다섯.

열한째 날, 여덟. 열이틀째, 아홉.

반복이었다.

여덟 아홉 다섯. 여덟 아홉 다섯. 여덟 아홉 다섯.

날짜였다면 반복될 리가 없다. 인원이었어도, 침대 수였어도, 세상의 어떤 수치도 사흘 주기로 정확히 같은 값을 세 번 반복하지는 않는다. 반복은 자연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지오는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섰다. 사무실 안을 두 바퀴 돌았다. 앉아서 사진을 다시 봤다. 처음 나흘이 날짜와 맞았던 이유가 그제야 이해됐다.

그건 신호가 아니었다.

지현이는 나흘 동안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각에 누가 들어와서 자기들 쪽만 찍고 나간다는 것을. 백 개가 넘는 침대 중에 자기 자리만 찍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 사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보여줄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넷을 편 것은 나흘이 지났다는 뜻이 아니라, 나흘 만에 알아챘다는 뜻이었다.

다섯째 날부터 지현이는 말을 걸고 있었다.

여덟, 아홉, 다섯.

숫자가 셋이었다. 셋이면 글자 셋이다. 지오는 그것을 계산이 아니라 몸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이 남매는 예전에 숫자로 말을 해본 적이 있으니까.

십육 년 전이었다.

아버지가 아직 집에 있던 시절, 집에는 방이 둘이었고 벽이 얇았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온 밤이면 지오는 일곱 살, 지현이는 세 살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함이 넘어왔고, 남매는 작은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때 지오가 지현이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었다.

소리를 내면 안 되니까, 벽을 두드리자고. 한 번은 ㄱ, 두 번은 ㄴ, 세 번은 ㄷ. 유치원에서 배운 순서 그대로. 모음까지 하면 너무 기니까 자음만 하자고. 우리끼리는 그걸로도 알아들으니까.

ㅁㅅㅇ 하면 뭐야, 라고 일곱 살이 물으면.

무서워, 라고 세 살이 대답했다.

그 놀이는 아버지가 나가고 나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십육 년 동안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었다. 사람이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개 잊힌 것이 아니라 밑에 깔려 있는 것이고, 깔려 있던 것이 지금 올라왔다.

지오는 볼펜을 들고 종이 위에 자음을 순서대로 적었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여덟 번째를 짚었다. ㅇ.

아홉 번째. ㅈ.

다섯 번째. ㅁ.

ㅇ ㅈ ㅁ.

지오는 그 세 글자를 한참 봤다.

자음 셋을 붙여 읽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남매가 열여섯 해 전에 쓰던 방식이 그랬으니까. 자음만 던지면 상대가 알아서 살을 붙인다. 그것이 그 놀이의 규칙이었고, 규칙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둘뿐이었다.

오지 마.

지오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형광등이 웅웅거렸다. 사무실 밖에서 차량이 나가는 소리가 났고, 오늘도 명단은 열여섯 줄이었고, 지오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세 글자를 다시 읽었다.

오지 마.

살려 달라가 아니었다. 꺼내 달라도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도, 몇 층이라고도, 몇 명이 있다고도 하지 않았다.

열아홉 살이 사흘씩 세 번을 걸어서 오빠에게 보낸 말이 오지 마였다.

이유를 지오는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생각했다. 위험해서일까. 그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현이는 위험하니까 오지 말라고 할 애가 아니었다. 그 애는 열아홉 해 동안 오빠가 위험한 데로 가는 걸 말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다녀오라고 등을 밀던 쪽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다.

아래에서 뭔가를 본 것이다. 오빠가 내려오면 안 되는 이유를, 오빠가 내려오기를 저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지현이는 세는 아이니까. 출구를 세고 카메라를 세고 방탄조끼를 세는 아이니까, 세다 보면 셈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오고, 그 순간에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지오가 지하에서 세는 동안, 지현이도 아래에서 세고 있었다.

같은 것을 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둘째 주 수요일, 05:00

다음 날 사진에서 숫자가 바뀌었다.

지오는 봉투를 받자마자 형광등 아래로 갔다. 민현석이 아직 문가에 있었는데 인사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꺼내 손을 찾았다.

여덟이 아니었다.

둘이었다.

지오는 숨을 한 번 쉬고, 종이에 적어둔 자음 표를 봤다. 두 번째. ㄴ.

새 문장이 시작된 것이다.

세 글자를 채우려면 사흘이 걸린다. 사흘 뒤에야 지오는 동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고, 기다린다는 것은 내일을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지오는 서랍을 열었다.

종이컵이 있었고, 사진 열세 장이 있었고, 서랍 안쪽에 볼펜 자국이 열세 개 그어져 있었다. 지오는 열네 번째를 긋는 대신, 그 옆의 빈 나무에 다른 것을 적었다.

한 글자였다. 아래에서 올라온 첫 글자를 지오는 서랍 안쪽에 새겼고, 그러고 나서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는 떨리지 않던 손이었다. 사람을 명단에 올리고 상태를 바꾸는 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손이 지금 떨렸고, 지오는 그 떨림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아주 오랜만에 자기 얼굴을 만졌다.

무뎌지지 않은 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동생이 거기를 찾아낸 것이다. 벽을 두드려서.

06:40

퇴근 버스에서 지오는 잠들지 않았다.

창밖으로 아침이 지나갔다. 출근하는 사람들, 문 여는 김밥집, 신호를 기다리는 오토바이. 지오는 그 멀쩡한 세상을 보면서 사흘 뒤를 생각했다.

ㄴ 다음에 무엇이 올까.

ㄴㅂㅇ이면 나 봤어일 것이다. ㄴㄱㅇ이면 누가 왔어. ㄴㅁㅇ이면 나 몸 안 좋아. 지오는 그 셋 중 마지막이 아니기를 빌었고, 빌면서, 빈다는 행위를 오랜만에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지현이는 오빠가 이걸 풀 거라고 믿고 있다. 십육 년 전 놀이를 오빠가 기억할 거라고, 사진을 매일 받고 있을 거라고, 손가락을 셀 거라고. 그 믿음 하나로 사흘에 세 글자씩 던지고 있다.

믿는 사람이 아래에 있으면, 위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지오는 창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스물세 해 동안 지오를 움직인 것은 늘 남의 부당함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지오를 움직이는 것은 부당함이 아니었다.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버스가 한강을 건넜다. 물 위에 아침 해가 부서지고 있었고, 지오는 그 빛을 보면서, 오지 마, 라던 세 글자에 처음으로 대답했다.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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