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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2

지하 1층

월요일, 08:40

건물은 로드뷰에서 본 그대로였다.

나지막한 삼층, 베이지색 외벽, 입구 옆 화단에는 누가 물을 준 지 얼마 안 된 팬지가 심겨 있었다. 유리문에는 이번 달 프로그램 안내가 붙어 있었다. 노래교실, 스마트폰 기초, 건강 체조. 수요일 오후에는 영화 상영. 제목이 삼십 년 전 것이었다.

지오는 문 앞에서 잠깐 서 있었다.

이상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무엇이 문제인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지하철역이 아니라는 것. 이만 명이 지나가던 곳에서 팬지가 있는 곳으로 왔다는 것.

문을 밀고 들어가자 로비에서 데스크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오늘부터 복무하게 된 한지오라고 합니다.”

“아.” 직원이 모니터를 봤다. “네, 등록돼 있네요. 행정실은 이쪽이에요.”

행정실에서는 서류 몇 장에 서명을 했다. 복무 서약, 개인정보 동의, 안전 교육 이수 확인. 안전 교육은 받은 적이 없는데 이수 확인란이 먼저 왔다. 지오가 머뭇거리자 담당 직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교육은 추후에 진행돼요. 서류가 먼저 필요해서요.”

지하철에서도 서류는 늘 현실보다 먼저 갔다. 지오는 서명했다.

10:30

센터장이 인사를 하러 왔다. 정확히는 지오가 인사를 하러 불려 갔다.

센터장실은 이층에 있었고, 문에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강인규. 오십 대 중반쯤의 남자가 책상 뒤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는데, 회색 가디건에 반무테 안경, 어디서 백 번은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동사무소에도 있고 학교 행정실에도 있고 은행 창구 뒤에도 있는 얼굴.

“먼 데서 오느라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지하철에 있었다고?”

“네. 종로3가역이요.”

“바쁜 데 있다 왔네.” 센터장이 웃었다. “여기는 조용해요. 조용한 게 제일이지.”

악수는 부드러웠고 손바닥은 조금 축축했다.

“잘 부탁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할 것도 없어요. 시키는 것만 하면 돼.”

센터장은 그 말을 덕담처럼 했고, 지오도 덕담으로 들었다.

나중에, 그 말을 여러 번 다시 생각하게 된다.

12:20

점심은 급식실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먹었다.

프로그램실에서는 노래교실이 한창이었다. 반주기 소리가 복도까지 새어 나왔고, 육십 명쯤 되는 어르신들이 점심을 먹고 커피믹스를 뽑고 장기를 두고, 소파에서 졸았다. 탑골공원을 실내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지오는 생각했다. 다만 여기는 냉방이 됐고, 바닥이 반짝였고, 벽마다 오늘의 식단과 낙상 주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는데 장기판 앞의 할아버지가 지오를 불렀다.

“총각, 이거 어떻게 보여.”

장기판 위에서는 초나라가 지고 있었다. 맞은편 할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물어보지 마. 얘가 뭘 알아.”

“차 떼였잖아. 총각, 차 없이 이게 되겠어?”

지오는 판을 잠깐 봤다. 종로3가 대합실에서 이 년 동안 어깨너머로 본 장기가 있었다.

“…포가 살아 있는데요.”

판이 조용해졌다. 차를 뗀 할아버지가 지오를 올려다봤다.

“총각 어디서 왔어.”

“종로3가요.”

“어쩐지.”

그것이 이 건물에서 나눈 대화 중 처음으로 매뉴얼 같지 않은 대화였다.

직원들은 친절했다.

전부, 빠짐없이, 친절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웃었고 이름을 바로 외웠고 커피를 뽑아 줬다. 그런데 그 친절에는 이상한 데가 있었다. 누구도 지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사회복무요원은 늘 어딘가에 필요했다. 여기서는 오전 내내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복사라도 할까요, 하고 물으면 다들 같은 대답을 했다.

“지오 씨는 야간이라.”

야간이라. 그 말이 문장 끝이었다. 야간이라 낮에는 할 일이 없다, 가 아니라 그냥, 야간이라.

17:00

어르신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센터가 비기 시작했다.

지오는 그 시간을 건물을 익히는 데 썼다. 일층에는 로비와 프로그램실과 급식실, 이층에는 행정실과 센터장실과 상담실, 삼층에는 물리치료실과 창고.

그리고 엘리베이터.

삼층짜리 건물의 엘리베이터치고는 컸다. 침대가 들어가야 해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버튼을 보다가 눈이 멈췄다.

3, 2, 1. 그리고 그 아래, B1.

B1 버튼 옆에는 작은 열쇠 구멍이 있었다. 잠금이었다. 눌러봤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주차장이겠지, 하고 지오는 생각했다. 건물에 지하 주차장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잠가놓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상한 일이 아닌 것들이 하루 종일 쌓이고 있었다.

20:50

야간 출근은 아홉 시부터였다.

데스크는 이미 비어 있었고, 행정실 담당자가 퇴근하면서 지오에게 알려준 것은 한 문장이었다.

“야간은 지하 1층으로 출근하시면 돼요.”

“지하요? 엘리베이터가 안 눌리던데요.”

“건물 뒤로 돌아가면 차량 출입구 옆에 계단 있어요. 카드 대시면 열려요.”

발급받은 출입카드는 낮에 쓰던 것과 색이 달랐다. 낮 것은 흰색이었고, 이것은 검은색이었다.

건물 뒤편은 앞과 달랐다. 화단도 안내판도 없이 콘크리트 경사로가 지하로 내려갔고, 그 옆의 철문에 카드 리더기가 붙어 있었다. 지오가 카드를 대자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났다.

계단은 한 층 반쯤 내려갔다.

삼층 건물의 지하치고는, 깊었다.

21:10

지하 1층은 주차장이었다.

그런데 넓었다. 위에 얹힌 건물보다 넓다는 것이 계단을 다 내려서기 전부터 느껴졌다. 천장의 형광등이 줄지어 켜져 있었고 바닥은 에폭시로 코팅되어 반들거렸고, 기둥마다 구역 번호가 칠해져 있었다. 지하철 시설을 이 년 본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관리가 되는 공간이라는 것. 그것도 아주 잘.

그리고 차가 세 대 있었다.

버스 두 대와 승합차 한 대.

버스는 관광버스 크기였는데 도색이 이상했다. 노선버스도 아니고 관광버스도 아니고, 흰 바탕에 옆면을 따라 파란 띠 하나가 지나갈 뿐 로고도 번호도 없었다. 승합차도 같은 흰색이었다. 세 대 모두 유리가 짙었다.

세 대 모두, 앞머리를 출구 쪽으로 두고 나란히 서 있었다. 바로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주차장 안쪽에 컨테이너 사무실 같은 조립식 방이 있었고 창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옆으로 복도가 하나 더 이어졌는데, 복도 끝에는 문이 있었다. 회색의, 손잡이가 없는, 카드 리더기가 두 개 붙은 문.

지오는 그 문을 삼 초쯤 봤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한지오 씨?”

남자가 나왔다. 사십 대 초반쯤, 흐트러진 데가 한 군데도 없는 사람이었다. 옆으로 넘긴 머리는 한 올도 삐치지 않았고 흰 셔츠 위에 걸친 짙은 회색 점퍼는 지퍼가 정확히 절반까지 올라가 있었다. 무테 안경 너머의 눈이 웃고 있었다. 입도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둘이 따로 웃는 것 같았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들었습니다. 민현석입니다. 야간을 맡고 있어요.”

내민 손은 건조하고 차분했다. 악수는 두 번, 정확히 두 번 흔들리고 끝났다.

“먼 데서 오느라 고생했어요. 종로였다고요?”

“네.”

“바쁜 데 있다 왔네.”

낮에 센터장이 한 말과 같은 말이었다. 억양까지 비슷했다.

민현석이 사무실 쪽으로 손을 펴 보였다.

“들어가서 얘기하죠. 뭐 어려운 건 없어요.”

사무실 안은 깨끗했다. 책상 둘, 캐비닛, 벽에 걸린 차량 열쇠 보관함, 그리고 한쪽 벽의 상황판. 상황판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화이트보드가 저렇게 깨끗하려면 매일 지워야 한다는 것을, 지오는 역무실에서 배웠다.

“한지오 씨.”

“네.”

“업무는 간단해요.”

민현석이 의자를 권하고 자기도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책상 위에 포개고, 지오를 보고, 말했다.

“사무실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지오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벽 국밥집에서, 김 너머로, 박성호가 했던 말이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공익이 사무실만 지키라는 데는, 내가 아는 한 없어.

“…사무실만요?”

“네. 전화 오면 받아서 메모하시고, 차량 나가고 들어오는 시간 기록하시고.”

민현석이 웃었다. 눈과 입이, 또 따로.

“그거면 돼요.”

23:50

야간전담반은 아홉 시 반부터 하나둘 내려왔다.

전부 남자였고 여섯 명이었다. 회색 근무복 상하의에 검은 작업화, 등판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다들 지오에게 목례를 했는데 이름을 말한 사람은 없었다. 사무실 앞을 지나 안쪽 탈의실로 들어갔고, 나올 때는 장갑을 끼면서 나왔다.

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는, 자기들끼리는 낮게 말했고 지오 앞에서는 말을 멈췄다.

열 시 십 분에 민현석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기록지 여기 있어요. 차량 나가면 시간 적고, 들어오면 시간 적고.”

“어디 가는지는요?”

“그건 적는 칸이 없어요.”

정말로 없었다. 기록지에는 차량 번호와 출발 시각과 복귀 시각, 세 칸뿐이었다. 지하철 순찰 일지에는 칸이 열두 개였는데.

열 시 반, 버스 한 대와 승합차가 시동을 걸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디젤 엔진 두 개가 동시에 도는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벽이 소리를 가두고 굴렸다. 경사로의 셔터가 올라가고, 차량 두 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셔터가 도로 내려왔다.

지오는 기록지에 적었다. 22:31 출발.

목적지 칸은 없으니까, 목적지는 적지 않았다.

사무실에는 지오 혼자 남았다. 형광등이 웅, 하고 낮게 울었고 화이트보드는 여전히 깨끗했고, 복도 끝의 손잡이 없는 문은 불빛 한 점 새어 나오지 않았다.

지오는 휴대폰을 꺼냈다.

주임님

첫 근무 어때

박성호의 답은 바로 왔다. 이 시간에 깨어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만 지키래요

이번에는 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일 분, 이 분. 지오는 화면을 보고 있었고,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가 사라지고 떴다가 사라졌다. 이십 년 치 문장이 몇 번을 지워지는 동안 지오는 기다렸다.

이윽고 도착한 답은 짧았다.

몸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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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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