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장실에는 세 번 들어가 봤다.
첫 번째는 복무 시작하던 날이었고 두 번째는 작년에 표창장인지 뭔지를 받던 날이었고, 세 번째가 오늘이었다.
역장은 책상 앞에 서류 한 장을 놓고 있었다. 지오가 들어가자 그것을 지오 쪽으로 돌려놓았는데, 뭐라고 말을 꺼내기 전에 한숨부터 나왔다.
“앉아라.”
지오는 앉았다.
서류 맨 위에는 병무청 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 아래로 몇 줄이 이어졌는데, 지오의 눈은 문장을 순서대로 읽지 못하고 몇 개의 단어 위에서만 미끄러졌다.
복무기관 재지정. 한지오. 서울교통공사 종로3가역. 강남구립 ○○노인복지센터.
“…이게 뭐예요?”
“발령이야.”
“제가요?”
“어.”
“왜요?”
역장이 안경을 벗어 책상에 놓았다.
“그걸 나도 모르겠다.”
역장이 아는 것은 이 정도였다.
병무청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복무기관 재지정. 사유란에는 '복무기관 운영상 필요 및 배정 조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사유를 적는 칸에 사유를 적지 않는 방법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인수인계 삼 일.
“내가 오늘 오전에 병무청에 전화를 두 번 했어.”
“…네.”
“본청에서 내려온 거라 자기들도 모른대.”
“…네.”
“공사에도 물어봤어. 공사는 요청한 적 없대.”
역장이 안경을 다시 썼다.
“지오야.”
“네.”
“너 뭐 사고 친 거 있냐.”
지오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창밖을 봤다. 역장실 창문으로는 대합실이 내려다보였다. 개찰구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 사람들 중 몇 명은 어쩌면 그 영상을 봤을 것이다.
“…없어요.”
“그렇지.”
역장은 그 대답을 오래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의심하고 캐묻고 화를 내는 게 정상인데, 역장은 그냥 서류만 내려다봤다.
“이런 식으로 나가는 애는 처음 본다.”
역무실 문을 열자마자 최유진이 물었다.
“뭐래?”
“발령이래요.”
“어디로.”
“강남구 노인복지센터요.”
역무실이 조용해졌다.
CCTV 모니터 여섯 개가 승강장을 여섯 조각으로 나눠 비추고 있었고, 그 앞에서 박성호가 돌아앉았다.
“뭐?”
“다음 주부터래요.”
“누가.”
“병무청이요.”
박성호가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면서 캐비닛에 부딪혔다.
“사회복무요원 재배정이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
“…네?”
“내가 여기서 공익을 몇 명을 받았는데. 재배정은 본인이 신청하는 거야. 집이 멀다, 몸이 안 좋다, 그래서 본인이 서류 내고 심사받고 몇 달 걸려서 나는 거라고. 위에서 먼저 내려오는 게 아니야.”
“공문에는 운영상 필요라고…”
“운영상 필요?” 박성호가 서류도 안 봤는데 코웃음을 쳤다. “여기 인원이 남아? 우리 맨날 사람 없다고 공문 올리는 데야.”
최유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임님, 그럼 이거…”
“이게 말이 되냐.”
박성호는 그 말을 두 번 했다. 한 번은 최유진한테, 한 번은 아무한테도 아니게.
지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이상한 온도차였다. 지오는 사고를 쳐서 쫓겨나는 줄 알았다. 영상이 터졌고 역 앞에 구경꾼이 몰렸고 공사가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했으니, 조용히 치우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았고, 아귀가 맞는 결론은 받아들이기 쉽다.
그런데 어른들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쫓겨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쫓아내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주임님.”
“왜.”
“저 때문에 시끄러웠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아니에요?”
박성호가 그를 한참 봤다.
“야.”
“네.”
“공사가 널 치우고 싶으면 공사가 치워. 병무청이 왜 나서.”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공사는 요청한 적도 없다잖아.”
박성호가 다시 앉았다. 앉아서 모니터를 봤는데, 모니터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이건 더 위에서 온 거야.”
“더 위가 어딘데요.”
“몰라.”
박성호는 그 말을 하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십 년을 일한 사람이 모른다고 말할 때의 모른다는, 아는 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는 데까지 가봤는데 거기서 끊겼다는 뜻이다.
삼 일은 빨리 갔다.
인수인계라고 해봤자 유실물 대장 넘기고 순찰 동선 알려주는 게 전부였다.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자리가 비는 것이다.
마지막 야간, 지오는 평소처럼 지상 순찰을 돌았다.
낙원동 골목의 목련 앞에서 정 사장이 그를 보자마자 문을 열고 나왔다.
“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요.”
“발령. 유진이가 왔다 갔어.”
“아, 네. 다음 주부터요.”
“강남?”
“네.”
정 사장이 물수건을 든 채로 팔짱을 꼈다.
“강남에 뭐가 있는데.”
“노인복지센터요.”
“노인이 왜 강남에만 있어. 여기 널렸는데.”
지오는 그 말에 웃었다. 웃자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 사장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봉지를 안겼다. 이번에는 계란말이가 아니라 뭔가 묵직했다.
“멸치볶음이랑 장조림. 오래 가.”
“사장님, 저 어디 이민 가는 거 아니에요.”
“강남이 이민이지 그럼.”
옆 가게 문이 열리고 그쪽 사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쟤 간대?”
“간대.”
“아이고.”
두 사람은 골목 끝까지 따라 나와서 지오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서 있었다.
환승 통로에는 양말 할머니가 있었다.
늘 그 자리, 늘 그 종이박스였다. 지오가 다가가자 할머니는 안내문 나오기 전에 먼저 말했다.
“안 가. 열두시 반까지야.”
“네. 그러세요.”
“…뭐야. 오늘은 왜 안 싸워.”
“저 다음 주부터 안 나와요.”
할머니의 손이 양말 위에서 멈췄다.
“잘렸어?”
“아니요. 발령이요.”
“어디.”
“강남이요.”
할머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양말 한 켤레를 집어서 지오 쪽으로 내밀었다.
“신어.”
“…네?”
“발 시려 보여서 그래.”
“여름인데요.”
“강남은 추워.”
지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양말을 받았다. 회색에 발목이 긴, 이 통로에서 이만 사천 원어치 중의 이천 원.
돈을 꺼내려니까 할머니가 종이박스를 돌려버렸다.
탑골공원 담장은 밤에는 빈다.
그런데 그날은 끝에서 세 번째 자리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지오는 처음 봤다.
“…안 들어가세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학생이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
“순찰이요. 저 이 근처까지 돌아요.”
“밤에.”
“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앞을 봤다. 지오는 몇 초 서 있다가, 말했다.
“저 다음 주부터 딴 데로 가요.”
노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왔다.
“…어디.”
“강남이요. 노인복지센터래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로등이 담장 위로 노란 빛을 떨어뜨리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 노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릎 위의 두 손이 서로를 잡는 것이 보였다. 굵은 마디의 손가락들이 천천히, 서로를 감았다.

“…학생.”
“네.”
“거기.”
노인은 거기, 까지 말하고 오래 멈췄다. 지오는 기다렸다.
“몸 조심해.”
전에도 들은 말이었다. 조심해. 그런데 이번에는 앞에 붙은 말이 있었다.
거기.
“…네. 어르신도요.”
지오는 인사를 하고 걸었다.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았는데, 등 뒤에서 시선이 따라오는 것은 걷는 내내 느껴졌다.
마지막 근무가 끝났다.
교대 조가 오고 지오는 조끼를 벗어 캐비닛에 넣었다. 이 년을 입은 조끼였다. 명찰을 떼서 반납함에 넣는데 박성호가 뒤에서 말했다.
“그거 이리 줘.”
“네?”
“명찰. 어차피 폐기야.”
지오가 건네자 박성호는 그것을 자기 서랍에 넣었다. 왜냐고 묻기 전에 서랍이 닫혔다.
“가자.”
“어디를요.”
“국밥.”
“…지금요?”
“여섯 시에 여는 데 있다니까.”
역무실 문 앞에는 최유진이 서 있었다. 야간도 아니면서 새벽에 나온 것이다.
“저도 가요.”
국밥집에는 김이 서려 있었다.
같은 집이었다. 돌을 주운 날 새벽에 왔던, 간판에 상호 없이 그냥 국밥이라고만 붙은 집. 그때는 둘이었는데 오늘은 셋이었고, 그때는 무언가 시작되는 줄도 몰랐는데 오늘은 무언가 끝나는 줄을 셋 다 알고 있었다.

세 그릇이 나왔고, 박성호가 이번에는 처음부터 소주를 시켰다. 잔이 세 개 왔는데 지오 앞의 잔에는 박성호가 반의반만 따랐다.
“퇴근했잖아.”
“…네.”
“마지막이잖아.”
“…네.”
최유진이 잔을 들었다.
“뭐라고 해야 되지, 이럴 때.”
“건강하자, 뭐 그런 거.”
“아 뭔가 구리다.”
“그럼 니가 해.”
최유진이 잠깐 생각하더니 잔을 지오 쪽으로 기울였다.
“한지오. 가서도 이상한 일 생기면.”
“…생기면요?”
“나한테 먼저 보내. 딴 데 올리지 말고.”
지오는 웃었고, 박성호는 웃지 않았다.
셋이 잔을 부딪쳤다.
국밥은 뜨거웠고, 지오는 이번에는 목이 막히지 않고 끝까지 다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숟가락을 놓는데 박성호가 말했다.
“야.”
“네.”
“뭐 이상하면 바로 전화해.”
“뭐가 이상하면요.”
“몰라. 근데.”
박성호가 소주를 비웠다.
“공익이 사무실만 지키라는 데는, 내가 아는 한 없어.”
“…사무실만 지키라고 할지 어떻게 아세요.”
“모르지. 그냥 감이야.”
이십 년의 감이라는 것이 있다. 지오는 그것을 안다. 틀니를 의치라고 쓰게 하는 감, 열두시 반이면 알아서 가신다는 감, 이런 날 꼭 뭐 터진다는 감.
그 감이 지금, 국밥집 김 너머에서 지오를 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서류를 다시 폈다.
강남구립 ○○노인복지센터. 주소, 연락처, 담당자명. 월요일 아홉 시까지 행정동 1층 사무실로 출근할 것.
지오는 그 주소를 지도 앱에 넣어봤다.
강남 한복판이었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십 분, 주변에는 오피스 빌딩과 아파트. 로드뷰로 돌려보니 나지막한 삼층 건물이 나왔는데, 화단이 있고 유리문이 있고 유리문 안쪽에 어르신들 프로그램 안내판 같은 것이 서 있었다.
평범했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놓일 뻔했다.
지오는 화면을 끄고 서류를 접었다.
접다가, 마지막 줄에 눈이 갔다.
근무 형태: 주간 및 야간 교대. 세부 사항은 현지 배치 후 안내.
야간.
노인복지센터에, 야간 근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