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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6

새는 것

14:20

정형외과 대기실에는 노인이 많았다.

지오는 번호표를 들고 앉아 있었다. 스물세 살이 이 시간에 정형외과에 앉아 있으면 둘 중 하나다. 운동을 하다 다쳤거나, 원래 안 좋거나. 지오는 두 번째였다.

“한지오 님.”

엑스레이를 다시 찍었고, 의사가 화면을 두 번 넘겼다.

“넘어지셨다고요.”

“네.”

“수술한 데 위쪽이 좀 눌렸어요. 심한 건 아닌데.”

“괜찮은 거예요?”

“괜찮진 않고요.” 의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리하면 다시 갑니다.”

“…네.”

“뭐 하시는데요.”

“지하철에서 일해요.”

“앉아 있는 일이에요?”

“아니요.”

의사가 그제야 지오를 봤다.

“물리치료 열 번 잡아드릴게요. 오세요.”

“몇 시에 하는데요.”

“아홉 시부터 여섯 시요.”

지오는 계산을 했다. 야간 근무자가 오전 아홉 시와 오후 여섯 시 사이에 병원에 오려면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네.”

“안 오실 거죠.”

“…네.”

의사가 처방전을 뽑았다.

“그럼 약이라도 드세요.”

15:40

집에 오니 지현이 있었다.

편의점 근무를 바꿨다고 했다. 아침 타임에서 저녁 타임으로. 미용 학원이 오전 반으로 옮겨져서 어쩔 수 없었다고.

“오빠 병원 갔다 왔어?”

“어.”

“뭐래.”

“괜찮대.”

“거짓말.”

“진짜야.”

“오빠 걸을 때 왼쪽으로 기울어.”

지오는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안 기울어.”

“기울어.”

지현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다 말고 멈췄다.

“오빠.”

“어.”

“무슨 냄새 안 나?”

“무슨 냄새.”

“탄 냄새.”

지오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틈을 뒀다.

“…가스 안 켰는데.”

“그건 아닌데. 뭐랄까.” 지현이 코를 두어 번 킁킁거렸다. “성냥 켰다 끈 냄새 같은 거.”

“모르겠는데.”

“이상하네.”

지현이 물병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지오는 부엌에 서서 자기 소매 냄새를 맡아봤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20:00

역무실에 최유진이 있었다.

스물다섯이고 작년에 들어왔고, 지오랑 두 살 차이라 말이 제일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작년 겨울 직원 넷이서 후쿠오카에 갔을 때도 같이 갔다.

“야, 너 그거 봤어?”

“뭐요.”

“우리 역 그거. 몰카범 잡은 거.”

“제가 잡았는데요.”

“아니 그거 말고. 게시판에.”

최유진이 내민 휴대폰 화면은 지하철 관련 커뮤니티였고, 글 제목이 이랬다.

종로3가 사회복무요원 근황.jpg

그 밑의 사진은 흔들려 있었고 어두웠고, 승강장 바닥에 남자 둘이 엉켜 있었다. 조끼 입은 쪽은 뒷모습이었다. 댓글이 예순 개쯤 달려 있었다.

“뭐라고 써 있는데요.”

“칭찬 많아. 대박이래.”

“…그래요?”

“근데 밑에 좀 웃긴 것도 있어.”

최유진이 화면을 내렸다.

공익이 왜 몸을 던짐

저러다 다치면 산재도 안 나옴

사진 각도 이상함 저 사람 어떻게 저기까지 감

지오는 마지막 댓글에서 눈이 멈췄다.

“…왜요?”

“어?”

“아뇨.”

지오는 휴대폰을 돌려줬다.

02:15

야간 근무에는 휴게 시간이 있다.

역무실 안쪽의 좁은 방에 간이침대가 두 개 놓여 있는데, 매트리스가 얇아서 누우면 스프링이 등에 배긴다. 그래도 눕는다. 두 시간이라도 눕지 않으면 새벽 다섯 시부터가 지옥이니까.

지오가 먼저 들어갔다. 박성호가 세 시 반에 교대해 주기로 했다.

조끼를 벗다가, 주머니에서 돌을 꺼냈다.

왜 꺼냈는지는 모르겠다. 조끼는 의자에 걸어둘 것이고 돌은 조끼 주머니에 있으면 되는데, 그날은 손에 쥐고 누웠다.

차가웠다.

허리 아래에 베개를 하나 받쳤다. 병원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좀 낫다.

눈을 감았다.

손안에서 돌이 조금 무거워진 것 같았는데, 그것은 아마 손에서 힘이 빠져서일 것이다.

꿈을 꿨다.

검은 것이 있었다.

연기 같기도 하고 물 같기도 한 것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안쪽으로 모이는 중이었고, 지오는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무섭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했다. 검은 것이 몸을 감싸고 올라오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오래 입지 않은 옷을 다시 꺼내 입는 것처럼.

목까지 왔다.

지오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것이 들어왔다.

02:41

최유진이 문을 연 것은 물을 뜨러 가다가였다.

정확히는 문을 열려던 게 아니라, 문틈으로 뭔가 나오고 있어서 열었다.

“…어?”

방 안이 검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그런데 어두운 것과 검은 것은 다르다. 어두우면 형체가 흐려지고, 검으면 형체가 없다.

바닥에서 삼십 센티쯤 위로 검은 것이 깔려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벽 쪽으로 흘러가다가 되돌아오고, 그러면서 그 한가운데에서 계속 새로 나오고 있었다.

간이침대였다.

“…야.”

최유진이 불을 켰다.

지오가 누워 있었다. 왼쪽으로 돌아누워 무릎을 조금 접고 오른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였다.

그 손등에서 검은 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야!”

최유진이 소리를 질렀다.

화재경보가 울린 것은 그 십 초 뒤였다.

역사 화재경보는 한 번 울리면 크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동시에 울리고 관제로 자동 통보되고 소방으로도 들어간다.

역무실이 뒤집혔다.

“어디야!”

“휴게실이요!”

“소화기!”

“불 안 붙었어요!”

“뭐?”

박성호가 뛰어 들어왔을 때 최유진은 문을 잡고 서 있었다.

“주임님, 저기…”

박성호가 안을 봤다. 그리고 삼 초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오야.”

지오는 깨지 않았다.

박성호가 들어갔다. 발이 검은 것 속으로 들어갔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고, 발목까지 잠겼는데 발이 그대로 보였다.

침대 옆에 서서 그가 어깨를 흔들었다.

“지오야. 야, 한지오.”

세 번째에 지오가 눈을 떴다.

그리고 없어졌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 흩어진 것도 아니고 빨려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을 떴을 때 이미 없었다.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경보는 계속 울렸다.

지오가 몸을 일으켰다.

“…뭐예요?”

박성호와 최유진이 그를 봤다.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02:55

경보를 끄는 데 사 분이 걸렸다.

수신기는 지하 1층 방재실에 있는데, 경보를 끄려면 발신 위치를 확인하고 복구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런데 발신 위치가 뜨질 않았다. 감지기 하나가 아니라 세 개가 동시에 물려 있었다.

“이거 왜 세 개야.”

“모르겠는데요.”

“세 개면 진짜 불난 거잖아.”

“불 안 났잖아요.”

“불이 안 났는데 세 개가 왜 떠.”

박성호가 수신기를 손바닥으로 두 번 쳤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했고, 경보가 꺼졌다.

“…이걸로 되네.”

“주임님, 그거 하시면 안 되는데요.”

“그럼 어떡해.”

그사이 관제에서 전화가 세 번 왔다. 상황 확인, 소방 출동 통보, 역장 연락 여부 확인.

역사는 이미 폐쇄된 뒤라 승객이 하나도 없었다. 대피시킬 사람도 안내할 사람도 없는데 절차는 승객이 있을 때와 똑같이 돌아갔고, 지오는 그것이 좀 이상했다. 아무도 없는 역에서 세 사람이 경보를 끄고 서류를 쓰고 전화를 받고 있었다.

03:20

소방차 두 대가 왔다.

여덟 명쯤이 장비를 전부 갖추고 내려왔다. 지하 3층까지 호스를 끌고 내려갈 준비까지 하고 있다가, 상황을 보고 멈췄다.

“불이 어디예요?”

“…없는데요.”

“없다고요?”

“네.”

소방관이 헬멧을 벗었다.

역장이 새벽에 불려 나왔다. 슬리퍼 차림에 셔츠 단추가 하나 어긋나 있었다. 화재 감지기 여덟 개를 점검했고 휴게실 벽과 천장과 침대 밑을 다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을음도 없고 발화 흔적도 없고 온도도 정상이었다. 열화상 카메라로 찍었는데 방 안에서 제일 뜨거운 것은 사람 몸이었다.

소방관이 결론을 냈다.

“감지기 오작동인 것 같은데요.”

“이 방만요?”

“습기 차면 그래요. 여기 지하잖아요.”

역장이 서류에 서명을 하면서 지오를 한 번 봤다.

“자다가 깼다고?”

“네.”

“뭐 이상한 거 봤어?”

지오는 최유진을 봤고, 최유진은 지오를 봤다.

“…아니요.”

“응.”

역장이 갔다.

04:00

역무실에 셋만 남았다.

박성호가 종이컵에 커피를 세 개 탔는데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봤지.”

최유진이 먼저 말했다.

“봤어요.”

“뭘 봤는데.”

“검은 거요.”

“연기 같은 거.”

“연기는… 아닌 것 같았어요.”

“왜.”

“연기는 냄새가 나잖아요.”

박성호가 커피를 내려다봤다.

“냄새 안 났어.”

“네.”

“눈도 안 매웠고.”

“네.”

지오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아 있었다.

“저기요.”

둘이 그를 봤다.

“저 그거 진짜 몰라요.”

“…알아.”

“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알아.”

박성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 있었다.

“야, 유진아.”

“네.”

“이거 어디 말하지 마.”

“…네.”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

“네.”

“그리고 얘 잘려.”

지오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요?”

“그럼 뭐, 내가 잘려?” 박성호가 컵을 내려놨다. “역에서 이상한 일 생기면 제일 밑에 있는 애가 책임져. 그게 이십 년 봐온 거야.”

역무실이 조용해졌다.

최유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근데요.”

“응.”

“저 무섭지는 않았어요.”

박성호가 그를 봤다.

“뭐?”

“그게,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까요.” 최유진이 컵을 내려다봤다. “무서웠어야 되는데. 방 안이 새까맣고 사람이 자고 있고 거기서 뭐가 나오는데.”

“…그런데.”

“안 무서웠어요.”

“그럼 뭐였는데.”

“모르겠어요.”

최유진이 지오를 봤다.

“근데 소리 지른 건 무서워서가 아니었어요. 그냥 놀라서요. 그 둘이 다르잖아요.”

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성호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서류철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폈다. 볼 것도 없으면서.

“오늘 일지 뭐라고 쓰지.”

“감지기 오작동이요.”

“세 개가?”

“세 개가요.”

박성호가 볼펜을 들었다가 놨다.

“…나 이거 이십 년 만에 처음이야.”

멀리서 첫차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셔터가 하나 올라가고, 그다음에 또 하나. 역이 다시 열리는 소리였다.

06:35

퇴근길에 지오는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여름 아침 여섯 시 반, 사람들은 씻고 나와 커피를 들고 내려오고 지오는 그 반대로 올라갔다. 중간쯤에서 멈춘 것은 허리 때문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돌이 거기 있었다.

지오는 그것을 꺼냈다. 아침 햇빛 아래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형광등 아래서 보던 것과 색이 달랐다. 검은데, 안쪽에 붉은 것이 있었다.

한참 봤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계단 아래로 던지면 됐다. 골목 어디로든 던지면 됐다. 하수구도 있고 공터도 있었다. 던지고 내려가면 아무 일도 없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던져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까 다들 봤는데도, 소방차가 두 대나 왔는데도, 이것이 그것 때문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증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오는 그것을 주머니에 도로 넣고 계단을 마저 올라갔다.

주머니 안에서 돌이, 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End of Episode
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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