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서 얘기하죠.”
민현석이 같은 문장을 한 번 더 놓았다.
지오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에서 검은 것이 실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열 가닥, 스무 가닥. 새벽 창틈의 한기처럼 소리 없이, 그러나 이번에는 꿈이 아니었고, 지오는 깨어 있었고,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일요일 낮에 그렇게 불러도 오지 않던 것이 지금 왔다. 부르지 않았는데 왔다. 온 이유를 지오는 알았다. 몸이 결정한 것이다. 십육 년 전에 아버지가 나가고, 이 년 동안 종로 지하에서 참고, 삼 주 동안 강남 지하에서 참았던 몸이, 더는 결재를 올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비켜요.”
지오가 말했다. 자기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자기 목소리였다. 다만 이십삼 년 동안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서랍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한지오 씨.”
“비키라고요.”
지오는 걸었다.
민현석을 지나서, 손잡이 없는 문 쪽으로. 공격이 아니었다. 주먹을 쥐지도 않았다. 그냥 걸었다. 어머니가 문틀을 잡았던 자리, 손가락이 하나씩 펴지던 자리, 그 문을 향해서 한 걸음씩. 연기가 걸음마다 짙어졌다. 발목에서, 어깨에서, 등에서. 몸의 윤곽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을 지오는 느꼈고, 느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원 둘이 앞을 막았다.
오반장이 아니었다. 젊은 쪽 둘이었고, 훈련받은 동작으로 지오의 양팔을 잡으러 들어왔다. 고시원 골목에서 봤던 그 동작. 서류를 넘기듯이.

손이 지오를 통과했다.
잡으려던 팔이 연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허공을 쥐고 나왔다. 대원 하나가 자기 손을 봤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는 손을 두 번 쥐었다 폈다. 방금 만진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주차장이 처음으로 술렁였다.
삼 주 동안 완벽하게 균일했던 사람들이었다. 보지 말라면 보지 않고, 서두르지 말라면 서두르지 않던 사람들이 반걸음씩 물러났다. 우산이 통과하던 영상을 그들도 봤을 것이다. 봤어도, 손으로 만지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물러나세요.”
민현석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났다. 지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대원들에게 하는 말이었고, 대원들은 물러났고, 지오와 문 사이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지오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문까지 다섯 걸음이 남았을 때,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경보음이 아니었다. 사이렌도 아니었다. 그냥 환풍기 소리였다. 매일 밤 안쪽 방에서 듣던, 문이 닫힌 뒤의 주차장을 채우던, 낮고 고른 그 소리. 다만 오늘은 그 소리가 한 옥타브 내려갔고, 여러 개가 동시에 돌기 시작했다.
지오는 위를 봤다.
천장을 따라 환풍구가 줄지어 있었다. 삼 주 동안 매일 밤 그 아래를 지나다녔다. 지하 주차장에 환풍구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한 것들의 목록 맨 위에 있어서 한 번도 세어본 적 없는 물건이었는데, 지금 세어보니 너무 많았다.
주차장 크기에 필요한 수의, 세 배쯤.
첫 가닥이 끌려 올라간 것은 어깨의 연기였다.
바람도 없는데 연기가 결을 만들며 위로 흘렀다. 지오의 의지와 무관하게, 물이 배수구를 찾듯이. 담배 연기가 환풍구에 빨리는 것과 같은 광경이었고, 다른 점은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지오의 몸이라는 것.
“어…….”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픈 것이 아니었다. 아픈 것이었다면 차라리 설명이 됐을 것이다. 이것은 빠지는 감각이었다. 뜨거운 물에 오래 있다가 일어설 때처럼, 헌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때처럼, 힘이 어디론가 이체되고 있었다. 연기가 한 가닥 뽑혀 올라갈 때마다 무릎에서 그만큼이 사라졌다.
지오는 걸으려고 했다.
네 걸음이 남아 있었다. 오른발을 내밀었고, 내밀어졌고, 왼발을 내밀었고, 반쯤 내밀어졌다. 연기는 이제 온몸에서 뽑히고 있었다. 손끝에서, 등에서, 발목에서 검은 실들이 일제히 위를 향했고, 천장의 낮은 소리는 조금도 급해지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 기계의 소리였다.
세 걸음.
시야의 가장자리가 어두워졌다. 어두워지는 것이 눈인지 연기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지오는 문을 봤다. 손잡이 없는 문. 그 너머 어딘가에 어머니가 있고 지현이가 있고,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믿는 얼굴이 있고.
두 걸음.
무릎이 꺾였다. 콘크리트 바닥이 올라와서 손바닥에 닿았다. 차가웠다. 지오는 네 발로 엎드린 채 문을 올려다봤고, 문은 두 걸음 앞에 있었고, 두 걸음이 이렇게 먼 거리라는 것을 이십삼 년 만에 처음 알았다.

마지막 연기가 정수리에서 뽑혀나갔다.
몸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원래의 무게였다. 연기가 있던 삼 분 동안만 지오는 다른 무게로 살았던 것이고, 이제 원래의 무게가, 원래의 몸이, 원래의 아무것도 아닌 한지오가 콘크리트 위에 엎드려 있었다.
천장의 소리가 원래 옥타브로 돌아갔다.
매일 밤 듣던 소리. 그 소리가 무슨 소리였는지 지오는 이제 알았다. 삼 주 내내 이 기계들은 지오의 머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쪽 방에 앉아 바퀴 소리를 세던 밤에도, 락스 냄새를 맡던 새벽에도, 이 주차장은 처음부터 지오를 위해 지어진 방이었다.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들여진 것이었다.
바닥이 기울었다.
의식이 꺼지는 것은 소리부터였다. 환풍기 소리가 멀어지고, 자기 숨소리가 커지고, 그 숨소리도 멀어지고. 시야에는 콘크리트와 주차선의 흰 페인트만 남았는데, 그 흰 선 위로 구두 한 켤레가 걸어와 멈췄다.
깨끗하게 닦인, 급한 데가 없는 구두였다.
구두의 주인이 쭈그려 앉는 기척이 났다. 바지 무릎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 위로 안경이, 눈과 입이 따로 웃지 않는, 오늘은 웃지도 않는 얼굴이 내려왔다.
“한지오 씨.”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배차를 말하던 목소리. 냉장고 공지를 읽어주던 목소리.
“이래서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했어요.”
지오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입은 움직였는데 나온 것은 숨뿐이었다. 민현석이 그 입 모양을 잠깐 들여다봤다. 급하지 않게, 관찰하듯이. 그러고는 지오의 시야가 완전히 닫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일어나시면, 물 한 잔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