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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

안쪽 방

첫 주

야간의 일과는 금방 외워졌다. 외울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홉 시에 지하로 내려간다. 아홉 시 반부터 대원들이 하나둘 내려와 탈의실로 들어가고, 열 시쯤 민현석이 사무실에 들러 그날의 지시를 한두 마디 남기고, 열 시 반 전후로 차량이 나간다. 어떤 날은 승합차 한 대만, 어떤 날은 버스까지 두 대가.

지오는 기록지에 시간을 적는다.

그러고 나면 지하 주차장에는 지오 혼자 남는다. 형광등이 웅웅거리고, 화이트보드는 깨끗하고, 복도 끝의 손잡이 없는 문은 조용하다. 전화는 오지 않는다. 첫 주 동안 사무실 전화가 울린 것은 두 번이었는데, 한 번은 잘못 걸린 전화였고 한 번은 받자마자 끊겼다.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에 차량이 돌아온다.

경사로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는 멀리서도 들린다. 지하에서 소리는 이상하게 굴러다녀서, 셔터가 열리면 그 진동이 바닥을 타고 사무실 의자 다리까지 온다.

그리고 차량이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민현석이 사무실 문을 연다.

“한지오 씨.”

“네.”

“안쪽 방에 들어가 계세요.”

안쪽 방은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원래 창고였던 모양으로 창문이 없고 간이침대 하나와 접이식 의자 두 개와 정수기가 있었다. 민현석은 그곳을 휴게실이라고 불렀고, 야간에 눈 붙일 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배려처럼 말했다.

문을 닫으면 소리가 반쯤 죽었는데, 반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차라리 다 죽었으면 나았을 것이다. 반쯤 죽은 소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머지 반을 스스로 채우게 만든다.

셔터가 열리는 진동이 먼저 오고, 디젤 엔진이 낮아지다 꺼지는 소리가 오고, 문이 여러 번 여닫히는 소리와 발소리들이 지나간 다음, 마지막에 바퀴 소리가 왔다.

그 바퀴 소리가 제일 이상했다.

카트 바퀴도 캐리어 바퀴도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2년을 일하면 별별 바퀴 소리를 다 듣게 되고 귀가 알아서 분류하는데, 이 소리는 더 무겁고 더 느렸으며 규칙적으로 삐걱거렸다. 굳이 대자면 병원 복도에서 나는 것과 제일 비슷했다.

이동식 침대, 라는 단어를 지오는 떠올렸다가 지웠다.

노인복지센터니까, 어르신들을 모셔 오니까, 거동이 불편한 분은 침대로 옮기니까. 전부 말이 되는 일이었고, 그 말이 되는 일들이 문 하나 너머에서 소리로만 지나갔다.

이십 분쯤 지나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두 번, 늘 정확히 두 번이었다.

“나오셔도 됩니다.”

나가 보면 주차장은 원래대로다. 차량 세 대가 앞머리를 출구 쪽으로 두고 서 있고 대원들은 탈의실로 사라졌고 바닥은 조용하다.

다만 냄새가 있었다. 버스 근처에서 아주 옅게 나는 락스 냄새였고, 첫날은 몰랐다가 사흘째에 알았고, 알고 나니까 매일 났다.

새벽 청소를 하는 모양이라고 지오는 생각했다. 차량 소독이겠거니, 어르신들을 태우는 차니까 소독은 당연하겠거니 하고.

그렇게 당연한 일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당연한 일들은 따로 보면 전부 당연한데 쌓아놓고 보면 이상해진다는 것을 지오는 종로3가에서 배웠다. 열려 있으면 안 되는 문, 동시에 세 개가 뜨는 감지기, 목적지 칸이 없는 기록지.

그런데 이상하다는 것은 증거가 아니고, 증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둘째 주, 22:40

민현석에게 물어본 적이 한 번 있었다. 차량이 나가고 난 직후였고, 그가 드물게 사무실에 남아 서류를 넘기고 있던 밤이었다.

“저기, 반장님.”

“네.”

“저도 뭐 도울 일 없을까요.”

민현석이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다.

“도울 일이요.”

“복귀하실 때요. 어르신들 내리시는 거 부축이라도… 저 지하철에서 그런 거 많이 했거든요.”

민현석이 잠깐 지오를 봤다. 안경 너머의 눈이 웃고 있었고 입도 웃고 있었는데, 그 둘은 여전히 따로 움직였다.

“한지오 씨.”

“네.”

“지금 아주 잘하고 계세요.”

“…제가요?”

“네.”

“저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

“그게 일이에요.”

민현석이 서류를 덮고 일어서면서 지나가는 길에 지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정확히 한 번이었다. 이 사람은 두 번 두드리는 법이 없었다.

“다들 자기 일만 하면 됩니다. 여기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문이 닫혔다.

지오는 빈 사무실에 앉아 그 말을 곱씹었다. 다들 자기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하철에서도 역무는 역무만 하고 기관사는 운전만 하고 보안관은 순찰만 하며, 그렇게 나뉘어 굴러가는 것이 조직이다.

다만 지하철에서는 누가 물어보면 대답은 해줬다.

둘째 주, 03:50

그날은 버스 두 대가 다 나간 날이었고 복귀도 늦었다.

세 시 오십 분에 셔터 진동이 왔고, 지오는 시키기 전에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서도 이제는 몸에 배어 있었다.

간이침대에 앉아서 소리를 들었다. 엔진 두 개가 차례로 꺼지고 문들이 열리고 발소리가 평소보다 많이 오갔으며 바퀴 소리도 두 번 지나갔다. 낮은 말소리가 오갔지만 단어는 하나도 잡히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한 번, 아주 짧게 다른 것이 섞였다.

사람 소리였다.

말이 아니라 소리였다. 앓는 소리인지 잠꼬대인지 우는 소리인지 구분되지 않는, 높고 가늘고 금방 끊긴 소리. 그리고 그 소리가 끊긴 방식이 이상했다. 잦아든 것이 아니라 끊겼다. 누가 볼륨을 내린 것처럼.

지오는 간이침대에 앉은 채로 문을 봤다.

문손잡이가 있었고 잠겨 있지 않았다. 나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들어가 계시라고 했지 나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니 규정 위반도 아니었다. 문을 열고 나가서 물이라도 뜨러 나온 척하면서 한 번만 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오는 손잡이를 보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아니, 무서워서였는데 무엇이 무서운지가 문제였다. 저 바깥에 있을 무언가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보고 나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보기 전에는 전부 당연한 일들인데, 보고 나면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십 분 뒤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나오셔도 됩니다.”

지오는 나갔다. 주차장은 원래대로였고, 락스 냄새는 평소보다 진했다.

06:10

퇴근하고 지상으로 올라오면 세상이 멀쩡했다.

화단의 팬지에 누가 물을 주고 있었고 급식실에서는 아침 준비하는 소리가 났으며, 일찍 온 어르신 두엇이 로비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지하 세 층 아래에서 방금 무슨 소리를 듣고 올라왔는지 이 로비의 누구도 몰랐다. 장기 할아버지가 지오를 보고 손을 들었다.

“총각, 이따 한 판 두자.”

“저 야간이라 지금 퇴근해요.”

“밤에 일하고 낮에 자고. 그거 사람 사는 게 아니야.”

“그러게요.”

“내일은 낮에 와. 내가 차 떼고 둬줄게.”

지오는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길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마주 걸어왔다. 다린 셔츠와 마른 머리와 커피. 종로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아침이 강남에도 있었고, 그 흐름에서 지오 혼자만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멀쩡한 세상과 지하 사이를 하루에 두 번 오가는 것, 그것이 지오의 새 일과였다.

셋째 주, 04:20

그날 지오는 안쪽 방에서 나와서 바닥에 떨어진 것을 봤다.

평소와 같은 새벽이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 두 번, 나오셔도 됩니다, 원래대로인 주차장, 옅은 락스 냄새. 지오는 기록지에 복귀 시각을 적으러 책상으로 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버스가 서 있던 자리, 3번 기둥 아래에 작고 흰 것이 떨어져 있었다.

지오는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허리가 당겼지만 아픈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틀니였다. 윗니 한 벌이 물기가 마르지 않은 채로 에폭시 바닥 위에 뒤집혀 있었다.

지오는 그 틀니를 한참 내려다봤다.

종로3가 역무실이 떠올랐다. 의치 한 점, 이라고 적었던 날. 틀니라고 쓰면 좀 그렇잖아, 하고 박성호가 말했던 날. 그때 지오는 대장에 옮겨 적으면서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틀니를 빼는 순간이 사람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그걸 빼놓고 잊을 만큼 정신없는 밤이란 대체 어떤 밤일까.

이제 알 것 같았다. 빼놓고 잊은 것이 아니라, 챙길 수 없는 밤이 있는 것이다.

지오는 손수건을 꺼내 틀니를 쌌다. 손이 아주 조금 떨렸는데, 새벽 추위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지하가 너무 따뜻했다.

책상으로 돌아와 기록지를 봤다. 차량 번호, 출발 시각, 복귀 시각. 세 칸이었고 주운 것을 적을 칸은 없었다.

유실물이 생기면 대장에 올린다. 주인을 못 찾아도 올린다. 규정이니까 올린다. 그 규칙이 지오가 2년 동안 살던 세계였는데, 여기에는 대장이 없었다.

End of Episode
안쪽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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