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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5

참는다

금요일, 21:30

그 주 금요일에 회식이 있었다.

회식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지오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야간전담반 전원, 그러니까 대원 여섯과 민현석과 지오까지 여덟 명이 센터 근처 삼겹살집 방에 둘러앉았고, 민현석이 법인카드로 계산했고, 목 굵은 대원이 집게를 잡았다.

“막내가 굽는 거 아닙니까.”

“한지오 씨는 손님이에요, 아직.”

민현석이 그렇게 말하면서 지오의 잔에 사이다를 따랐다. 지오가 술을 못 한다고 하자 그는 두 번 권하지 않고 사이다를 시켰는데, 그 배려가 정확해서 오히려 이상했다.

대원들은 회사 사람들처럼 굴었다. 아니, 회사 사람들이었다. 주택청약 얘기를 했고, 중학생 딸의 수학 학원비 얘기를 했고, 구내식당 김치찌개가 짜다는 얘기를 했다. 목 굵은 대원, 이름이 오반장이라는 것을 지오는 그날 처음 알았는데, 오반장은 고기를 뒤집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냉장고에 이름 안 쓴 음식 갖다놓지 마요. 월요일에 다 버립니다. 지난주에 누가 곰탕을 냉동실에 넣어놨어.”

“저 아닌데요.”

“이름을 쓰라고, 이름을.”

지오는 상추에 고기를 싸면서, 웃었고, 웃으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새벽마다 명단을 들고 나간다.

그 두 가지가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스물세 해 동안 지오는 몰랐다. 알게 해준 것이 삼겹살집이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주 화요일, 23:10

두 번째 동행에서 지오는 그것을 봤다.

그날의 행선지는 지하보도가 아니라 고시원 골목이었다. 승합차가 좁은 길에 반쯤 걸쳐 서고, 오반장과 마른 대원이 내리고, 지오가 따라 내렸는데, 골목 안쪽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은 노인이 아니었다.

젊은 남자였다.

많아야 서른. 어쩌면 지오와 몇 살 차이 나지 않을. 무릎이 나온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계단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지오는 걸음을 늦췄다.

노인복지센터였다. 화단에 팬지가 있고 급식실에서 미역국 냄새가 나고 장기 두는 할아버지가 있는. 그런데 명단의 파란 행이 가리킨 사람은 서른도 안 된 남자였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해하지 않았다.

“저기, 반장님.”

차로 돌아가는 길에 지오가 물었다. 목소리를 낮췄는데 낮출 이유는 본인도 몰랐다.

“젊은 분인데요.”

“네.”

“저희 노인복지센터잖아요.”

오반장은 반 발짝도 느려지지 않았다.

“복지에 나이가 어딨어요. 사각지대에 있으면 다 케어 대상이지.”

그 대답은 매끄러웠다. 너무 매끄러워서, 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남자는 노인처럼 순순히 오지 않았다.

“안 간다고요, 몇 번을 말해요.”

마른 대원이 명단 속 문장 같은 말들을 했다. 따뜻한 곳, 식사, 무료 진료. 노인에게 통했던 단어들은 젊은 남자에게 하나도 통하지 않았고, 남자는 일어나서 계단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오반장이 남자의 팔을 잡았다.

거기까지는 부축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는데, 남자가 팔을 뿌리치자 오반장이 그 팔을 다시 잡아서 등 뒤로 꺾었다. 한 동작이었다. 망설임도 조준도 없이, 서류를 넘기듯이.

남자의 얼굴이 고시원 벽에 붙었다.

“아, 아파, 아파요.”

“소리 지르면 더 아파요.”

오반장의 목소리는 회식 때와 같았다. 이름을 쓰라고, 이름을.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화가 난 사람의 폭력이 아니었다. 화요일의 폭력이었다. 다음 주에도 있을.

지오의 몸이 반 발짝 나갔다.

종로3가에서라면 몸이 먼저 갔을 것이다. 취객을 말리고 몰카범을 쫓던 몸이니까, 사람이 벽에 붙는 것을 보면 그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이 년 동안 만들어진 반사였다. 그런데 그 반사가, 반 발짝에서 멈췄다.

마른 대원이 지오를 보고 있었다.

말리는 눈이 아니었다. 궁금해하는 눈도 아니었다. 그냥 보는 눈. 기록하는 눈. 지오가 어디까지 가는지 재는 눈이었고, 지오는 그 시선 아래에서 자기 발이 바닥에 붙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승합차에 실렸다.

수갑도 밧줄도 없었다. 다만 오반장이 옆에 앉았고, 남자는 꺾였던 팔을 주무르면서 조용해졌고, 차는 출발했다. 창밖으로 고시원 간판이 지나갔다. 방마다 사람이 사는 건물이었는데 불 켜진 창은 세 개뿐이었다.

지오는 가운데 줄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02:40

센터로 돌아오는 길은 길게 느껴졌다.

뒷칸에서 남자가 한 번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 오반장이 대답했다. 좋은 데요. 남자가 다시 물었다. 좋은 데가 어딘데요. 오반장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 뒤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지오는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말해야 했다. 아까 그 골목에서, 팔이 꺾이는 순간에,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그 문장은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지금도 올라와 있었다. 뱉으면 되는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뱉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이 먼저 계산했다.

말하면, 다음 명단에 누가 오르나.

그 계산은 비겁했고, 지오는 자기가 비겁하다는 것을 알았고, 아는 채로 입을 다물었다. 다무는 것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턱이 아팠다.

대신 다른 문장들이 왔다. 위에서 무언가를 덮듯이.

어쩌면 저 남자는 정말 위험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전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보호 조치라는 것이 원래 저 정도는 하는 건지도 모른다. 경찰도 저항하면 제압하지 않나. 복지센터에서 설마, 사람을 어떻게 하겠나.

복지센터에서 설마.

그 다섯 글자는 효과가 좋았다. 덮으면 조용해졌다. 다만 덮어도 밑에서 형체가 만져졌는데, 틀니가 그랬고, 락스 냄새가 그랬고, 낮에 찍힌 사진이 그랬다. 덮은 것들의 목록은 이제 지오도 외울 수 있을 만큼 길어져 있었다.

센터에 도착하자 민현석이 내려와 있었다.

“수고했어요.”

그는 뒷칸을 열기 전에 지오를 먼저 봤고, 지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었는지 잠깐 멈췄다가, 평소와 똑같이 말했다.

“올라가서 쉬어요.”

지오는 계단을 올라갔다.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었고, 그 배움이 어디로 가는 배움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06:30

집에 오니 지현이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 왔어?”

“어.”

“얼굴이 왜 그래.”

“야간이 원래 그래.”

지현은 교복 넥타이를 매다 말고 지오를 한 번 더 봤다. 열아홉 살은 그런 것을 잘 본다. 보고도 더 묻지 않는 것까지 열아홉 살은 할 줄 알았고, 대신 식탁 위의 접시를 턱으로 가리켰다.

“엄마가 계란말이 해놨어. 오빠 먹으라고.”

“먹을게.”

“진짜 먹어. 요즘 살 빠졌어.”

동생이 나가고, 지오는 식탁에 혼자 앉았다.

계란말이는 어머니가 하는 방식 그대로였다. 당근을 너무 잘게 다져서 색만 남는, 간이 심심해서 두 개는 먹어야 간이 맞는 계란말이. 지오는 그것을 젓가락으로 잘랐다.

새벽에 실려 간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에게도 이런 식탁이 있었을까. 고시원 계단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도, 살 빠졌다고 잔소리하는 동생이, 계란말이를 해놓고 출근하는 어머니가 있었을까. 있었는데 잃은 걸까, 처음부터 없었을까.

명단에는 사진과 글자들이 있었다.

가족 칸이 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지오는 계란말이를 두 개 먹고, 세 개째를 집었다가 내려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창밖이 밝아지고 골목에서 출근하는 발소리들이 지나갔다. 세상은 멀쩡했다. 멀쩡한 세상의 식탁에서 지오는 어젯밤 자기가 삼킨 문장을 다시 꺼내 봤다.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열두 글자였다. 스물세 해 동안 지오는 그것보다 긴 말도 잘만 했다. 이동상인 앞에서도 했고 취객 앞에서도 했고 역장 앞에서도 했다.

어제는 못 했다.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안 한 것이 아니라 참은 것이라고, 참은 것은 언젠가 말하기 위해서라고. 문장은 갈수록 좋아졌다.

삼키기에 좋아졌다는 뜻이다.

End of 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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