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번인 일요일 오후에 지오는 자기 방 문을 잠갔다.
문을 잠근 것은 처음이었다. 이 집의 방문 잠금장치는 잠근다고 해서 대단히 잠기는 물건이 아니었고, 어머니도 지현이도 노크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잠갔다. 하려는 일이 문 잠글 만한 일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다.
커튼을 치고, 방 가운데 섰다.
한지오, 스물세 살, 일요일 낮에 자기 방 한가운데 서서 주먹을 쥐고 있는 사람. 누가 보면 뭐 하는 거냐고 물을 광경이었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연기를 내보려는 중이었다.
그날 밤들의 목록은 짧지만 선명했다.
몰카범을 쫓다가 순간적으로 거리를 접은 것. 잠든 사이 휴게실에서 새어 나왔다는 검은 연기. 퇴근 지하철에서 주먹부터 피어올라 승객들을 도망치게 한 것. 1호선 열차에 연기째로 올라탄 것. 우산이 몸을 통과한 것.
전부 지오가 한 일이었고, 전부 지오가 하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가 문제였다. 하려고 해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졸 때, 쫓을 때, 놀랄 때. 몸이 먼저 움직이고 지오는 나중에 알았다. 그러니까 이것이 능력이라면, 주인이 지오가 아닌 능력이었다.
주인이 되어야 했다.
이유는 말로 정리하지 않았지만 뱃속에는 정리되어 있었다. 안쪽 방의 바퀴 소리, 틀니, 명단, 팔이 꺾이던 소리. 그것들 앞에서 지오는 매번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회복무요원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이 년 동안 익숙했는데, 요즘의 아무것도 아님은 종류가 달랐다. 종로3가에서는 권한이 없었고, 여기서는.
여기서는, 용기가 없었다.
권한은 남이 주는 것이지만 용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오는 알았고, 알아서 더 아팠고, 그래서 지금 방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용기가 안 되면 다른 것이라도. 연기라도. 그날 승객들을 도망치게 만든 그것이라도 손에 쥐고 있으면, 다음에 팔이 꺾이는 것을 볼 때는.
지오는 눈을 감고 주먹에 힘을 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 분을 서 있었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났다. 오 분을 서 있었다. 어깨가 결렸다. 눈을 떠서 주먹을 확인했다. 스물세 해 동안 봐온 손이 스물세 해 동안 봐온 모습으로 있었다.
방법을 바꿨다.
그날 지하철에서는 졸고 있었으니까, 침대에 누워서 잠드는 척을 해봤다. 잠드는 척을 하다가 진짜로 이십 분을 잤고, 깨어나서 이불 냄새를 맡아봤는데 탄내는 없었다. 몰카범 때는 달리고 있었으니까, 방 안에서 제자리 뛰기를 해봤다. 아래층에서 쿵쿵거린다고 방바닥을 치는 소리가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지오는 바닥에 대고 사과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화가 났을 때였나. 화를 내봤다. 민현석의 따로 노는 눈과 입을 떠올리고, 오반장의 서류 넘기는 듯한 손목을 떠올리고, 파랗게 바뀌던 행을 떠올렸다. 심장이 빨라지고 귀가 뜨거워졌다. 주먹을 봤다.
손이었다. 그냥 손.
“…뭐 어쩌라는 거야.”
지오는 아무도 없는 방에 대고 말했다. 나올 때는 마음대로 나와놓고, 부를 때는 오지 않고. 개도 이것보다는 말을 듣는다. 관리사무소도 이것보다는 민원 처리가 빠르다.
창밖에서 아이들이 공 차는 소리가 났다. 평범한 일요일이 잘 굴러가는 소리였고, 지오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방 한가운데서 혼자 씨름한 두 시간이 갑자기 창피해졌다.
능력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들이 전부 착각이고, 영상은 정말 합성이고, 다들 잘못 본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편한 생각이 요즘 자꾸 는다는 것을 지오는 알았지만, 이번 것은 덮는 용도가 아니라 그냥 사실일 수도 있었다.
사실이기를 바라는 자기를 발견하고, 지오는 그 바람이 무슨 뜻인지 잠깐 생각했다.
능력이 없으면, 안 나서도 된다.
저녁 식탁에는 세 식구가 다 모였다.
어머니가 쉬는 날이었다. 김치찌개가 올라왔고, 계란말이가 올라왔고, 지현이가 급식 반찬 흉을 봤고, 어머니가 식당 사장 흉을 봤다. 손님이 국물이 짜다고 했다가 싱겁다고 했다가 결국 반을 남기고 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는 연기까지 섞어가며 했고, 지현이가 웃다가 사레들렸다.
“오빠는 요즘 일 어때.”
지현이가 물을 마시고 물었다.
“어떻긴. 사무실 지키지.”
“강남 사람들은 좀 달라?”
“밤에만 있어서 사람을 잘 못 봐.”
거짓말은 아니었다. 거짓말이 아닌 문장만 고르는 기술이 늘고 있었다. 밤에만 있어서 사람을 잘 못 본다. 맞는 말이다. 보는 것은 명단이고, 듣는 것은 바퀴 소리고, 맡는 것은 락스 냄새다. 사람은, 잘 못 본다.
“거기 밥은 잘 나와?”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의 질문은 이 년 동안 한결같았다. 역에서 일할 때도 밥은 잘 나오느냐였고, 발령이 났을 때도 밥은 주느냐였다. 세상 모든 직장을 어머니는 밥으로 감별했다.
“급식실 밥 맛있어요. 미역국 잘 나와.”
“잘됐네. 국 나오는 데가 좋은 데야.”
좋은 데.
오반장의 목소리가 겹쳐서 왔다. 좋은 데요.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던 남자와, 대답하던 오반장과, 그 사이의 지오. 숟가락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멈춘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없다고 지오는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찌개를 뜨면서 지나가듯 말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
“안 힘들어요.”
“응. 근데 힘들면 힘들다고 해.”
어머니는 그 말을 반찬 권하듯 놓고 더 잇지 않았다. 지오는 밥을 먹었다. 목이 메는 것은 밥이 많아서라고 하기로 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야간에 어디를 가는지 말할 수 없고, 무엇을 실어 오는지 말할 수 없고, 내 몸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것은 더 말할 수 없고. 말하면 걱정할 것이고, 걱정해도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걱정은 사람을 갉아먹기만 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나가던 해에 지오는 배웠다.
그러니까 식탁에서 지오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찌개 더 있어요?”
“있지. 많이 먹어.”
잘 먹는 것. 아무 일 없는 얼굴로 두 그릇을 먹는 것. 그것이 이 식탁에 지오가 낼 수 있는 전부였고, 지오는 그것을 냈다.
자정 전에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보고 있으면 그날 밤이 왔다. 순서도 없이, 청구서처럼. 안쪽 방 문 너머로 지나가던 바퀴 소리. 볼륨을 내린 것처럼 끊기던 사람 소리. 에폭시 바닥 위의 흰 틀니. 파란 행. 벽에 붙던 얼굴. 그리고 그 모든 것 앞에 서 있던, 반 발짝의 자기.
지오는 돌아누웠다.
돌아누워도 천장은 따라왔다. 지오는 어둠 속에서 손을 들어 눈앞에 펼쳤다. 가로등 불빛이 커튼 틈으로 들어와 손바닥에 줄 하나를 그었다.

“나와 봐.”
속삭였다. 진심이었다. 낮의 실험과는 다른 진심이었는데, 낮에는 쥐고 싶어서 불렀고 지금은.
지금은, 무서워서 불렀다.
빈손인 채로 다음 화요일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다음 명단이, 다음 골목이, 다음 반 발짝이 무서웠다. 그때도 발이 붙으면, 그때도 삼키면, 그다음의 자기는 지금의 자기와 같은 사람일 자신이 없었다.
손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가로등 줄 하나만 손금 위에 얹혀 있었다. 지오는 손을 오래 보다가 내렸고, 눈을 감았고, 잠은 새벽에야 왔다.
그 새벽 꿈에 연기가 나왔다.
꿈속에서 연기는 아주 쉽게 나왔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온몸에서 흘러넘쳤고, 지오는 그것을 어쩌지 못해서 두 팔로 자기를 안고 서 있었고, 연기 너머에서 누가 지오를 불렀다.
목소리가 아는 목소리였다.
누구인지 알 것 같은 채로, 끝내 알기 전에, 아침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