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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2

표본

강남, 지상 27층, 09:00

회의는 정시에 시작했다.

강인규는 삼 분 일찍 도착해서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긴 테이블의 끝에서 세 번째였는데, 십일 년 동안 한 칸도 올라가지 못한 자리였다. 창밖으로 아침의 강남이 보였다. 유리가 두꺼워서 소리는 하나도 넘어오지 않았고, 아래에서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이는 것만 보였다.

“시작하죠.”

의장석의 여자가 태블릿을 켰다. 이름은 서지원. 아르케 컨소시엄 생물자산본부의 본부장이고, 강인규보다 아홉 살 어리고, 강인규가 11년 동안 세 번 모신 사람이었다.

“E02 강남 건. 12주 차입니다.”

화면에 표가 떴다.

수용 인원 2,140. 회수 대상 잔여 310. 이번 분기 반출 예정 120. 폐기 47.

폐기라는 단어 앞에서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이 회의실에서 그 단어는 사람이 아니라 항목이었고, 항목은 숫자로만 읽는 것이 예의였다. 강인규는 그 예의를 11년 동안 배웠다. 처음 3개월은 회의가 끝나면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지금은 씻지 않는다.

“표본 쪽 먼저 갑시다.”

서지원이 화면을 넘겼다.

표본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11주 전이었다.

그전까지 이 건은 그냥 사건이었다. 지하철 승객이 촬영한 영상과 몸에서 검은 것이 새어 나오는 젊은 남자와 우산이 얼굴을 통과하는 장면. 아르케의 모니터링 부서가 그 영상을 잡아낸 것은 업로드 41분 만이었는데, 그 시점에 이미 조회수는 삼만이었다.

보통이라면 그런 영상은 합성으로 정리된다. 아르케는 그 일에 능했다. 언론에 두 줄과 커뮤니티에 댓글 서른 개면 사흘 안에 세상은 다음 화제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나면 그 일은 없었던 일이 된다.

그런데 이번 것은 정리하지 않았다. 정리하는 대신 신원을 특정했고, 제복과 환승 동선과 근무표를 맞추는 데 18시간이 걸렸다. 그 18시간이 끝났을 때 아르케의 회의실에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침묵이 있었다.

능력이 확인된 개체였다.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가설은 아르케 안에서 오래 돌던 이야기였고 자료도 있었다. 백 년 전의 기록과 전쟁 중의 목격담과 출처가 불분명한 사진들. 다만 그 자료들은 전부 과거의 것이었고, 과거의 것은 증명할 수 없어서 결국 이야기로만 남는다.

이번 것은 현재였고, 스물세 살이었고, 사회복무요원이었고, 주소지가 있었다.

“확보 우선.”

그때 서지원이 그렇게 말했다. 회수도 제거도 아닌 확보. 그 단어를 고르는 데 그 여자는 이 초도 쓰지 않았다.

확보 계획

방법은 세 가지가 검토됐다.

첫째는 직접 회수였다. 새벽에 차량 한 대와 인원 넷이면 충분했다. 다만 그렇게 하면 그 순간부터 대상은 자기가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붙잡힌 사람은 능력을 쓰지 않는다. 쓸 수 있는 상황이면 이미 도망갔을 것이고 쓸 수 없는 상황이면 관찰할 것이 없다.

둘째는 매수였고 검토는 이십 분 만에 끝났다. 대상의 재정 상태를 보면 액수는 크지 않아도 됐는데, 2년치 근무 기록을 보고 나서 그 안이 접혔다. 이동상인에게 규정집을 읊고 취객을 부축하고 유실물 대장을 손으로 적는 사람은 돈으로 사면 반드시 나중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 이 회사가 여러 번의 실패로 배운 것이었다.

셋째가 배치였다. 그 안을 낸 것은 강인규였고, 회의에서 그가 낸 안이 채택된 것은 십일 년 만에 처음이었다.

“환경을 만들어서 그 안에 두면 됩니다.”

그는 그때 그렇게 말했다.

“본인은 발령이 났다고 생각하게 하고, 시설 안에 두고, 관찰합니다. 스스로 쓰게 만들어야 자료가 나옵니다. 붙잡아 두고 찌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건 이미 백 번 해봤잖습니까.”

서지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을 강인규는 기억한다. 11년 동안 자기를 그렇게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발령이 나겠어요? 서울교통공사 소속인데.”

“공사에 압박 넣을 채널은 본부장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그날 회의록에 처음으로 표본이라는 단어가 올라갔다.

12주 차 보고

“생체 자료부터.”

서지원의 말에 연구 쪽 담당자가 일어섰다. 강인규는 그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는데, 이 회사에서 연구 쪽 사람들은 2년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외울 이유도 없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없습니다.”

“없다는 게 무슨 뜻이죠.”

“채취한 자료 전부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첫 주 건강검진 혈액, 이후 채취한 타액 6건, 모발 4건, 그리고 사용한 종이컵에서 확보한 상피세포까지 전량 분석했습니다.”

화면에 그래프가 떴다. 강인규는 그래프를 볼 줄 몰랐고, 볼 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평범합니다.”

“평범하다.”

“유전적으로 완전히 평범한 이십 대 한국인 남성입니다. 대사 이상 없음, 면역 이상 없음, 미확인 서열 없음. 굳이 특이점을 찾자면 요추 수술 이력 정도인데 그건 능력하고 무관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유리창 밖에서는 강남이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그 영상은 뭡니까.”

“영상은 사실입니다. 시설 내부에서도 재현됐고요.”

담당자가 화면을 넘겼다. 지하 주차장의 CCTV였다. 화질이 좋았다. 젊은 남자가 걸어가고, 몸에서 검은 것이 흘러나오고, 대원의 팔이 그 몸을 통과한다.

“11주 차에 발현했습니다. 배기 시스템으로 3분 10초 만에 무력화. 회수량은 부족했지만 물질 자체는 확보했습니다.”

“그건 뭡니까.”

“모릅니다.”

담당자는 그 두 글자를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이 회의실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개 다음 분기에 자리가 없어지는데, 그는 그 사실을 아는 얼굴이었고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탄소도 아니고 그을음도 아닙니다. 질량이 측정되긴 하는데 값이 안 맞습니다. 같은 시료를 두 번 재면 두 값이 나와요. 저희 장비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서지원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정리하죠. 몸은 평범하다. 그런데 능력은 실재한다.”

“네.”

“그럼 후천적이라는 겁니까.”

“그렇게 봐야 합니다.”

“언제부터.”

담당자가 다음 화면을 띄웠다. 시간축이었다.

“발현 기록을 역산했습니다. 최초 목격은 8주 전 지하철 내 영상이지만, 그건 이미 통제가 안 되던 시점이고요. 그보다 앞서 근무지에서 있었던 소동이 두 건 더 있습니다. 휴게실 건, 그리고 검거 과정에서의 이동속도 건.”

“제일 앞이 언제죠.”

“제일 앞은.”

담당자가 화면의 한 점을 짚었다.

“종로3가역, 3호선 승강장. 영업 종료 후 선로 진입 기록입니다.”

강인규는 그때 처음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선로.”

“승객 휴대폰 낙하 신고로 직원 두 명이 선로에 내려갔습니다. 정규 절차였고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사흘 안에 첫 이상 징후가 나옵니다.”

“우연일 수도 있죠.”

서지원이 말했다.

“우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상을 봤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승강장 CCTV가 떴다. 화질이 나빴고 흑백에 가까웠으며 시각은 자정을 조금 넘겨 있었다.

“이건 낙하 사고 22분 전입니다.”

노인 하나가 승강장에 서 있었다. 여름인데 두꺼운 점퍼를 입었고 등이 굽었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래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는 동안에도 노인은 타지 않았다.

그러다 열린 문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더니 손을 폈다.

무언가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틈으로 떨어졌다. 노인은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았다. 손을 펴는 순간에 이미 돌아서 있었다.

담당자가 화면을 멈췄다.

“22분 뒤에 그 자리에서 휴대폰이 떨어집니다. 같은 지점입니다. 오차 2미터 이내.”

회의실은 완전히 조용했다.

“그러니까.”

서지원이 천천히 말했다.

“저 노인이 버린 것을, 우리 표본이 주웠다.”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물건이 뭔지 모른다.”

“모릅니다. 다만 저 노인은 알 겁니다. 버릴 때 저 사람의 자세를 보시면.”

담당자가 화면을 다시 재생했다. 노인이 손을 펴는 장면이 반복됐다.

“모르는 물건을 버리는 자세가 아닙니다. 아는 걸 버리는 자세입니다.”

신원

“저 노인 확보됐습니까.”

“오늘 새벽에 나왔습니다.”

담당자가 화면을 넘겼다. 주민등록 자료, 그리고 CCTV에서 뽑은 얼굴.

“나종배. 일흔여덟. 무연고. 기초생활수급 이력은 있는데 삼 년 전에 끊겼고, 주거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동선이 아주 일정합니다.”

“어디.”

“탑골공원입니다. 열두 달 치 영상을 돌렸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담장 끝에서 세 번째 자리.”

강인규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하루도요?”

“하루도요. 비 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서지원이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 그 여자가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하는 동작이었고,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그 버릇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얹지 않았다.

“가족은.”

“없습니다.”

“실종 신고할 사람은.”

“없습니다.”

“찾을 사람은.”

“확인된 바로는, 없습니다.”

서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세 번의 질문과 세 번의 대답이 한 사람의 남은 인생을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십오 초였고, 그 십오 초 동안 아무도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결정

“세 가지 하겠습니다.”

서지원이 태블릿에 뭔가를 입력하면서 말했다.

“첫째, 탑골공원 일대 정리. 회수 대상 잔여분에 포함시켜서 처리하세요. 노인 하나만 데려오면 눈에 띕니다. 통째로 가져오면 복지 사업이 됩니다.”

“규모가 커지는데요.”

“어차피 이번 분기 목표에 미달입니다. 채우면서 하세요.”

“둘째는요.”

“표본이 그 현장에 나가게 하세요.”

강인규가 고개를 들었다.

“표본을요.”

“네.”

“위험합니다. 지금 겨우 안정 단계에…….”

“강 센터장님.”

서지원이 처음으로 강인규를 봤다.

“우리가 12주 동안 알아낸 게 뭡니까. 몸은 평범하다, 물질은 모른다. 그게 답니다. 12주에 이천만 원짜리 장비를 세 대 넣고 나온 결론이 그거예요.”

“…네.”

“그럼 이제 저 둘을 같은 자리에 놓아봅시다. 버린 사람하고 주운 사람을. 뭐가 됐든 그 자리에서는 뭔가 나옵니다.”

강인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셋째, 통제 유지. 가족 쪽 조건은 그대로 가고, 필요하면 하나 더 거세요. 그 친구 근무지 동료 명단 확보돼 있죠.”

“돼 있습니다.”

“쓰지는 마세요. 보여주기만 하세요. 보여주는 게 쓰는 것보다 쌉니다.”

회의는 41분 만에 끝났다.

11:20

사람들이 나가고 강인규는 회의실에 남았다.

유리창 아래로 강남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출근이 끝나고 점심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이었다. 저 아래 어디쯤에 그의 센터가 있고 센터의 지하가 있고 지하의 아래가 있는데, 그 층들을 전부 아는 사람은 이 도시에 몇 되지 않았고 그중 하나가 그였다.

책상 위에 회의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인규는 그중 한 장을 집었다. 표본의 생체 자료 요약본이었고, 맨 아래 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전적 특이점 없음. 대상은 일반 개체로 분류됨.`

일반 개체.

그는 그 네 글자를 오래 봤다.

그러니까 그 스물세 살은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선택받지도 않았고 물려받지도 않았고, 그저 어떤 물건이 그 애 앞에 떨어졌고 그 애가 주웠을 뿐이다.

강인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1년이었다. 11년 동안 그는 남의 몸에 무언가를 넣고 결과를 기록했다. 2,000명이 넘는 사람의 자료가 그의 이름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중 성공은 없었으며 근처까지 간 것조차 없었다. 인간의 몸은 그가 아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 이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스물세 살은 그냥 주웠다.

강인규는 자료를 반듯하게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회의 자료를 반출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었고, 그 규정을 만든 것은 그가 다니는 회사였고, 그 회사는 사람을 폐기라고 부르는 회사였다.

그는 회의실을 나가면서 불을 껐다.

같은 날 저녁, 강남구 노인복지센터 지하 1층 사무실.

민현석이 화이트보드에 다음 주 배차를 적었다. 반듯하고 급한 데가 없는 글씨였다. 마지막 줄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목요일 · 종로 일대 · 버스 2 승합 1 · 전원`

그리고 그 옆에, 아주 작게 한 글자를 덧붙였다.

`동`

동행. 그 한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이 건물에 셋뿐이었고, 그중 하나는 아직 퇴근 버스 안에서 자고 있었다.

End of Episode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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