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이 소리 쪽으로 왔다.
손전등은 반대편 벽 아래에 떨어진 채로 빛을 옆으로 흘리고 있었고, 그 빛과 지오 사이에 여섯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오는 이제 손전등을 주우러 갈 수 없었다.
지오는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자기가 무엇을 버렸는지 계산했다. 빛을 버렸고,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버렸고, 돌아갈 길을 버렸다. 남은 것은 어둠과 방향 감각과 3주 동안 이 건물을 외운 기억이었는데, 그 기억이라는 것도 하역할 때 짐이 어느 문으로 들어가는지를 본 것이 전부였다.
그것으로 충분해야 했다. 충분하지 않으면 위층에서 100명이 죽는다는 것이 이 계산의 다른 쪽 항이었다.
지오는 돌아서서 뛰었다.
뛰면서 벽에 손을 댔다. 어두운 데서 뛰려면 한쪽 손을 벽에 붙여야 한다는 것은 하역할 때 오반장이 알려준 방법이었고, 그때는 짐칸 안에서 쓰는 요령이었지 목숨을 재는 데 쓰라고 알려준 것이 아니었다. 벽이 젖어 있어서 손바닥이 자꾸 미끄러졌지만 벽은 계속 거기 있었다.
뒤에서 여섯이 따라왔다.
젖은 것이 콘크리트를 스치는 소리는 발소리와 다르다. 발소리는 끊기지만 그 소리는 끊기지 않고, 끌리는 것이므로 계속 이어지며, 이어지는 소리로는 거리를 재기가 어렵다.
지오는 세는 것으로 거리를 재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셋을 셀 동안 소리가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보면 속도가 나오고, 지오는 그 셈을 세 번 반복했으며, 세 번 다 같은 값이 나왔다.
저것들이 지오보다 빨랐다.
많이 빠르지는 않았다. 지오가 전력으로 뛰면 반 발짝씩 벌어졌는데, 지오는 전력으로 계속 뛸 수 없고 저것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였다. 사람은 숨이 차면 느려지지만 저것들은 숨을 쉬는 방식이 이미 달랐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도망쳐서 이기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둬야 했다.
지오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꺾으면서 열쇠를 흔들었다. 세 개가 서로 부딪히면서 금속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좁은 복도에서 잘 울렸다. 뒤의 소리가 한 박자 늦게 같은 방향으로 꺾였다.
따라오고 있었다.
지오는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계속 갔다.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미끼라는 것을 알아차리겠지만 저것들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갈 뿐이고, 그 단순함이 지금 지오가 가진 유일한 도구였다.
접수대를 지났다.
두 시간 전에 지나온 곳이었다. 그때는 빈 의자가 복도 쪽으로 돌아앉아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였으며, 지오는 어둠 속에서 그 의자의 위치를 기억만으로 피해 갔다.
그 뒤가 두 번째 복도였고, 그 복도 끝에 문이 하나 있었다. 손잡이가 안쪽에 없는 문이고 그 안이 유류품 창고다.
상자 120개. 문 하나. 창문 없음.
이 건물에서 사람을 가둘 수 있게 만들어진 방은 두 곳인데, 하나는 방금 100명이 나온 수용동이고 다른 하나가 그 방이었다. 유류품을 넣어두는 방에 손잡이가 왜 안쪽에 없는지를 지오는 두 시간 전에 생각해봤다가 그만두었고, 지금은 그 이유가 쓸모가 있었다.
지오는 창고 앞에서 멈췄다.
멈추자 뒤의 소리도 잠깐 느려졌다. 소리가 멈추면 저것들은 방향을 잃는다. 지오는 그 성질을 두 시간 전 주차장에서 배웠고, 배운 것을 지금 쓰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안에서 형광등 하나가 살아 있었다. 두 시간 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소리로 떨고 있던 등이었고, 지오는 그때 이 방에 서서 어머니의 상자를 찾지 않기로 정했다.
이번에는 상자를 볼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 자기 자신을 지오는 나중에 오래 기억하게 된다.
지오는 문을 활짝 열어 벽에 붙이고, 방 안쪽 깊숙이 들어가 벽에 등을 댔다.
그리고 소리를 냈다.
“여기요.”
문틀 안으로 빛이 새어 나갔고, 그 빛 안으로 첫 번째가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컸다. 어깨와 등이 부풀어 원래 골격보다 두 배쯤 두꺼웠고, 그 위로 낡은 피부가 넓은 조각으로 늘어져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회색으로 덮여 있었으며, 벗겨진 자리 아래가 짙은 청록색으로 젖어 빛났다. 비린내가 방 안의 곰팡이 냄새를 밀어냈다.
발목에 흰 종이 밴드가 있었다.
지오는 그 밴드를 봤고, 보고 나서 눈을 돌렸다. 저 밴드에는 번호가 적혀 있고 그 번호는 지오가 아는 양식이며, 지금 번호를 읽기 시작하면 다섯 걸음을 세지 못한다.
두 번째가 들어왔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거의 동시였다. 상자 사이 통로가 좁아서 넷이 들어오자 방이 꽉 찼고, 지오는 벽을 따라 옆으로 이동했다.
문까지 다섯 걸음.
지오는 다섯 걸음을 세면서 갔다. 저것들이 지오 쪽으로 몸을 돌리는 데 걸리는 시간과 지오가 다섯 걸음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비슷했으므로, 이 다섯 걸음은 계산이 맞으면 되고 틀리면 끝나는 종류의 일이었다.
계산은 맞았다.
지오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지오의 손이 문에 닿기 전에 닫혔다. 아주 세게 닫혔고, 철문이 문틀에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으며, 지오는 그 소리에 자기가 놀랐다.
손을 봤다.
문에서 한 뼘쯤 떨어져 있었다.

지오는 그 자리에 서서 자기 손을 두 번 봤다.
바람이 없었다. 지하 1층에는 창문이 없고 환풍구는 반대편 벽에 있으며, 경첩은 두 시간 전에 지오가 직접 밀어봐서 뻑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이 스스로, 그것도 그렇게 세게 닫힐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닫혔다.
손등이 검었다.
가루였다. 마르지 않은 가루가 손등과 손목 안쪽에 얇게 앉아 있었고, 손가락으로 문질러보니 번졌다. 재 같기도 했고 젖은 흑연 같기도 했으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지오는 그 가루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았다.
3주 전 종로3가 골목에서, 그리고 두 시간 전 지상의 주차장에서 같은 것이 나왔다. 그때는 목이 졸리고 있었고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계측기를 들고 그 가루를 받아 갔다.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지오는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넣었다.
세 번째 열쇠가 돌아갔다. 안에서 무언가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부딪히고 또 부딪혔으며, 철문이 그때마다 문틀 안에서 조금씩 떨렸다.
버틸 것이었다.
오래는 아니었다.
지오는 돌아섰다.
그리고 둘이 서 있었다.
창고에 넷이 들어갔다. 지오는 세 번 세었고 세 번 다 넷이었다.
그러니까 둘은 안 들어간 것이었다.
지오는 그 사실을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는 것들이 소리가 나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저 둘이 소리 말고 다른 것도 함께 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방 안쪽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데 문이 열려 있고 그 사람이 벽에 붙어 있다는 것을, 저 둘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다.
지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중에 몇 명이 완전히 됐어?
둘은 덜 된 쪽이었다.
가까운 쪽은 아직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남아 있었고, 어깨의 피부는 벗겨지기 시작한 정도였으며, 입술은 부풀었는데 아직 색이 옅어서 사람의 입술과 아주 멀지는 않았다.
그리고 걸음이 느렸다.
느린 대신 서두르지 않았다. 완전히 된 것들은 소리가 나면 그쪽으로 몸을 던지듯이 가는데 저 둘은 그러지 않았고, 지오를 보면서 지오가 어느 쪽으로 갈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덜 된 쪽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지오는 그때 알았다.
지오는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벽을 짚었다. 이쪽 복도 끝은 접수대고 접수대를 지나면 짧은 복도고 그다음이 갈림길이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계단이고, 계단 위에 100명이 있었다.
그쪽으로 유인하면 안 됐다.
왼쪽은 후면 경사로였다. 경사로 끝에 셔터가 있고 셔터 밖이 지상이었다.
그쪽으로도 안 됐다.
먼 쪽 개체가 움직였다.
빛 안으로 들어왔다. 창고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형광등 빛이었고, 그 빛이 아래에서 위로 얼굴을 훑었다.
지오는 그 얼굴을 알았다.
작은 사람이었다.
원래 작았고 지금도 작았다. 부푼 어깨가 얹혔는데도 여전히 지오 가슴께밖에 오지 않았으며, 그 위에 얹힌 얼굴에 광대뼈와 주름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몸빼바지가 무릎 아래에서 찢어져 있었다.

지오는 그 바지를 두 시간 전에 봤다. 두 번째 복도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던 사람이 입고 있던 것이었고, 그 사람은 그때 지오를 향해 손을 뻗었으며, 지오는 그 손을 잡지 않고 지나갔다.
숨을 쉬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었구나.
지오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이 얼마나 틀린 문장인지를 곧바로 알았다.
살아 있는 것과 저렇게 되는 것이 같은 말인지 지오는 몰랐다. 3주 동안 이 회사가 쓰는 단어들을 옆에서 들었는데, 그 단어들 중에 이 상태를 가리키는 것은 없었다.
명단에 상태 칸이 세 개였다.
수용, 관찰, 반출.
이 사람은 그중 어디에도 없었다.
가까운 쪽이 먼저 움직였다.
지오는 옆으로 피했고, 피하면서 발밑의 무언가를 걷어찼는데 벽에 세워둔 소화기였다. 소화기가 바닥을 구르면서 벽에 부딪혔고 그 소리가 젖은 복도에서 두 번 되돌아왔다.
두 개체가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오는 그 틈에 세 걸음을 벌렸고, 벌리면서 저것들이 소리에 아직 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오는 등을 벽에 붙이고 숨을 골랐다.
죽여야 했다.
그 문장을 지오는 머릿속에서 정확히 그 형태로 만들었다. 죽여야 했다. 둘 다 죽이지 않으면 계단으로 갈 것이고, 계단 위에 100명이 있고, 그중에 지현이 있었다.
지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오는 다시 불렀다. 어떻게 부르는 것인지는 몰랐으므로 그냥 목 뒤에 힘을 주었고, 3주 전 종로3가 골목에서 가루가 나왔을 때의 느낌을 되짚어보려고 했다.
느낌은 기억이 났고, 기억이 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등을 봤다.
아까 앉았던 가루가 마른 채로 그대로 있었고 새로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오는 손바닥을 문질러보고 손목 안쪽을 눌러보고 뒷목을 짚어봤는데, 세 군데 다 그냥 사람 피부였다.
지오는 그 순간 처음으로 이 힘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 시간 전 주차장에서 나왔을 때 지오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목이 졸렸고 그 장면을 누가 찍고 있었고 화가 났을 뿐이었다. 조금 전 창고 문에서 나왔을 때도 부르지 않았다.
부르면 안 오는 것이었다.
그럼 언제 오는데.
지오는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작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오는 뒤로 물러서다가 벽에 등이 닿았다.
두 번째 복도 끝이었다. 왼쪽은 창고 문이고 안에서 계속 부딪히는 소리가 났으며, 오른쪽은 접수대 쪽이고 그쪽에 둘이 있었다.
가운데가 없었다.
지오는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돌이 있었다.
차가웠다. 3주 동안 하루에 스무 번씩 확인한 그 감촉이었고, 지금도 똑같이 차가웠으며, 손 안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지오는 돌을 꽉 쥐었다.
한 번만.
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위에서 소리가 났다.
두드리는 소리였다.
콘크리트를 딱딱한 것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천장을 타고 내려왔는데, 한 번 치고 잠깐 쉬고 다시 여러 번 치는 방식이었다.
지오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굳었다. 3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벽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던 것이 이 소리였다.
세라는 뜻이었다.
지오는 셌다.
여덟. 끊김. 셋. 끊김. 여덟.
ㅇ, ㄷ, ㅇ.
지오는 그 세 자를 붙여봤고, 붙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 돼요.
세 음절이었다.
지오는 천장을 봤다.
뭐가 안 되는데.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났다. 이번에는 길었다.
둘. 넷. 하나. 그리고 다시 여섯. 여덟.
ㄴ, ㄹ, ㄱ, ㅂ, ㅇ.
지오는 그 두드림을 세 번 다시 세고서야 붙였다.
나 로비. 아직.
지오는 그 말을 이해했고, 이해하고 나서 벽에 이마를 댔다.
100명이 1층에 있었다. 올라간 것까지는 됐는데 나가지 못하고 있었고,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문이 잠겨 있거나 문 앞에 누가 서 있다는 뜻이었다.
이 건물에서 이 시각에 문 앞에 서 있을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두 시간 전에 25분 만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지오는 그 사람들을 두 시간 전에 봤었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 방호복이었고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며, 열여섯이 한꺼번에 움직이는데도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저것들을 잡지 않고 몰기만 했으며, 몰아서 어디로 보냈는지를 지오는 자기 목으로 알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밖으로 안 내보낸다.
안에 있는 것을 안에 두는 것이 저들의 일이었다. 그 안에는 저것들도 들어가고 아직 사람인 것도 들어가고,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100명도 전부 들어갔다.
창고 문에서 소리가 바뀌었다.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라 긁는 소리였다. 긁는 소리는 한참 이어지다가 끊겼고, 끊긴 다음에 아주 큰 소리로 한 번 부딪혔다.
경첩이 나갔다.
지오는 경첩이 나간 것을 소리만으로 알았다. 3주 동안 이 건물에서 나는 소리를 전부 들으면서 지냈는데, 철이 철에서 빠지는 소리는 그중 어떤 소리와도 닮지 않았다.
문이 안쪽으로 기울었다.
넷이 나오고 있었다.
지오는 나오는 수를 세지 않았다. 셀 필요가 없었다. 이제 여섯이었고, 여섯과 지오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으며, 지오 뒤가 벽이었다.
지오는 그 자리에서 계산을 시작했다.
계단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이었다.
여섯이 그쪽으로 가면 3분 안에 1층에 닿는다. 로비에 100명이 서 있고 그중 절반은 혼자 걷지 못하며, 로비에는 숨을 데도 나갈 데도 없다.
경사로로 가는 길은 왼쪽이었다.
셔터는 두 시간 전에 뜯긴 채로 아무도 닫지 않았고, 흰 버스가 들어왔던 그 자리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여섯이 그쪽으로 가면 밖으로 나간다.
밖은 강남대로였다.
지오는 그 두 문장을 나란히 놓았다.
3주 동안 하던 일이 그런 계산이었다. 이름을 놓고 나이를 놓고 상태를 놓고, 어느 칸에 넣을지 정하는 일. 지오는 그 일을 잘했고, 잘했기 때문에 지금 이 계산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지금 하는 것도 같은 일이었다.
밖에는 몇 명이 있지.
새벽 세 시 이십 분의 강남대로였다.
지오는 그 시간의 그 길을 안다. 3주 동안 흰 승합차 조수석에 앉아서 그 길을 지나다녔고, 그때마다 사람을 봤다. 편의점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대리운전 기사,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 아직 안 들어간 사람.
100명보다 적을지 많을지 지오는 몰랐다.
모른다는 것이 이 계산의 답이었다.
여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오는 벽에서 등을 떼고 왼쪽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열쇠를 흔들었다.
세 개가 부딪히면서 금속 소리가 났고, 여섯이 그 소리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데 2초가 걸리지 않았다.
지오는 뛰지 않았다.
뛰면 소리가 앞서 나가고 소리가 앞서 나가면 저것들이 지오를 지나쳐 갈 수 있었으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끌고 가는 일이었다. 지오는 저것들이 놓치지 않을 만큼만 앞서서 걸었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사람과 쫓기는 사람의 걸음이 이렇게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지오는 그날 처음 알았다.
경사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지오는 한 번 돌아봤다.
작은 것이 뒤쪽에 있었다.
여섯 중에 제일 느렸고 느린데도 계속 따라오고 있었으며, 찢어진 몸빼바지 자락이 젖은 바닥에 끌려 긴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지오는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잠깐 애썼다. 3주 동안 자기 손으로 적은 명단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름 대신 떠오르는 것은 손수레에 실린 종이 더미의 높이와 그 더미를 묶은 노란 끈뿐이었다.
기억나지 않았다.
경사로는 위로 굽어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미끄럼 방지 홈이 파여 있었고, 그 홈에 점액이 고여 있어서 발이 자꾸 미끄러졌다. 지오는 벽을 짚고 올라갔다.
위쪽에서 빛이 왔다.
셔터가 뜯긴 자리로 들어오는 빛이었는데, 새벽 세 시의 빛이 아니었다. 그 빛은 흔들리고 있었고 색이 여러 개 섞여 있었으며, 파란색이 일정한 간격으로 벽을 훑고 지나갔다.
지오는 그 빛이 무엇인지 알았다.
밖에 사람이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고, 파란 것이 저렇게 도는 곳에는 언제나 구경하는 사람이 더 있었다.
지오는 멈췄다.
멈추자 뒤의 소리가 가까워졌는데, 지오는 가까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서 있는 동안 아무 계산도 하지 않았다.
계산은 이미 끝나 있었고, 끝난 계산을 다시 하는 것은 답을 바꾸려는 짓이었다.
미안합니다.
지오는 그 말을 소리 내지 않았다.
두 시간 전에 어떤 사람이 흰 버스에서 내려서 평소 목소리로 지오에게 그 말을 했고, 그러고 나서 지오를 셔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오는 그때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자기가 같은 말을 속으로 하고 있었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도 못했다.
지오는 다시 걸었다.
세 걸음쯤 갔을 때 뒤에서 무언가가 지오의 등을 스쳤다. 지오는 몸을 틀었고, 트는 도중에 어깨를 잡혔으며, 젖은 손이 조끼 천을 그대로 뚫듯이 눌러왔다.
지오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때 나왔다.
소리가 없었다.
빛도 없었다. 다만 공기가 짧게 밀렸을 뿐이고, 지오의 어깨를 잡고 있던 것이 그 짧은 밀림에 뒤로 넘어가 경사로를 두 번 구르고 아래에서 멈췄다.
지오는 자기 팔을 봤다.
팔뚝과 손등과 손목 안쪽에 검은 가루가 배어 있었고, 목 뒤가 뜨거웠으며, 그 뜨거움은 데인 것과 달라서 안쪽에서 바깥으로 밀려 나오는 종류였다.
그리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
지오는 자기 다리에 힘을 주려고 했다.
들어가지 않았다. 무릎이 접히고 어깨가 벽에 부딪히면서 지오는 그대로 미끄러져 앉았고, 눈은 떠져 있었고 소리도 전부 들렸는데 몸만 자기 것이 아니었다.
다섯 개가 경사로를 올라오고 있었다.
지오는 그 다섯을 세면서 앉아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세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우스웠는데, 웃을 수 있는 근육도 지금은 없었다.

하나.
둘.
셋.
넷과 다섯은 아직 아래에 있었고, 셋까지가 지오와 세 걸음 안쪽이었으며, 그중에 제일 앞선 것이 지오의 얼굴을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푼 연분홍 입술이 반쯤 벌어져 있었고, 그 안에 작고 날카로운 것들이 줄지어 있었다. 비린내가 얼굴에 닿을 만큼 가까웠다.
지오는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려고 했는데 눈꺼풀도 안 움직였다. 그래서 지오는 그 얼굴을 다 보게 되었고, 보면서 마지막으로 한 계산이 있었다.
몇 초지.
넷.
다섯.
여섯.
여섯에서 발가락이 움직였다.
지오는 벽을 짚고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위를 봤다. 경사로 끝의 뜯긴 셔터 밖이 밝았고 그 밝은 쪽에서 소리가 왔는데, 사이렌이었고 사람 목소리였고 그 위로 뭔가 낮게 도는 소리가 겹쳐 있었다.
지오는 그쪽으로 걸었다. 뒤에서 여섯이 따라왔다.
셔터 아래를 지날 때 지오는 몸을 숙였다.
두 시간 전에도 이 자리에서 몸을 숙였는데, 그때는 내려가는 길이었고 옆에 사람이 있었으며, 그 사람이 지오의 뒤통수를 손으로 눌러 낮춰주었다.
지금은 혼자였고, 뒤통수를 눌러줄 사람 대신 여섯이 따라오고 있었다.
밖이었다.
빛이 얼굴에 정면으로 왔고, 지오는 3주 만에 처음으로 눈을 찡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