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층 회의실은 여름에도 서늘했다.
강인규는 그 서늘함이 공조 때문이 아니라 유리 때문이라고 오래 생각해왔다. 사면이 유리인 방에 있으면 바깥의 계절이 보이는데 만져지지는 않아서, 몸이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 11년 동안 그는 이 방에서 여름을 본 적은 있어도 쬔 적은 없었다.
“오래 안 걸립니다.”
서지원이 그렇게 말하면서 태블릿을 켰고, 강인규는 그 문장 하나로 오늘 회의의 길이와 성격을 동시에 알았다. 이 여자가 오래 안 걸린다고 말할 때는 결정이 이미 끝났다는 뜻이다.
“강남 E02, 종료합니다.”
강인규는 자기 손이 무릎 위에서 한 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3개월 안에 정리하시고요. 수용 인원은 본부에서 배분할 겁니다. 시설은 원상복구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행정동만 살려두면 됩니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유가 필요하세요?”
서지원이 고개를 들었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얼굴이었고, 그 얼굴이 강인규에게는 화보다 나빴다.
“12주 차 이후로 새 자료가 없습니다.”
서지원이 화면을 넘기면서 말했다.
“표본은 안정 단계고 발현은 그 뒤로 한 번뿐이었어요. 그 한 번도 배기로 3분 만에 잡혔고요. 우리가 확보한 물질은 여전히 측정이 안 되고, 연구 쪽은 2년째 같은 보고서를 다른 표지로 냅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십일 년 쓰셨습니다.”
강인규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대답할 문장이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 여자가 그 숫자를 꺼낼 줄 몰랐다. 강인규는 자기가 이 자리에 있은 기간을 늘 11년이라고 셌는데 서지원은 십일 년이라고 했고, 같은 길이를 두고 한쪽은 살아낸 세월이라 부르고 다른 쪽은 소요된 기간이라 불렀다. 안에서 셀 때 11년은 견딘 시간이었는데, 밖에서 세니까 못 해낸 시간이 됐다.
“표본은요.”
“본부 직할로 이관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데려갈 겁니다.”
“관찰 환경이 바뀌면 자료가 끊깁니다.”
“강 센터장님.”
서지원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그 자료를 십이 주 동안 읽은 사람이 저예요.”
회의는 십 분 만에 끝났다.
강인규의 보직은 다음 분기 조직개편 때 다시 정하겠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 회사에서 이십 년을 보낸 사람은 안다. 다시 정하겠다는 것은 지금은 자리가 없다는 뜻이고, 다음 분기까지 기다리면 그때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 된다.
사람들이 나가는 동안 강인규는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가던 서지원이 문가에서 한 번 멈췄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그 말을 하는 것을 강인규는 세 번 들었다. 세 번 다 누군가 그만두는 자리에서였다.
문이 닫혔다.
지하 2층의 자기 방으로 내려와서 강인규는 불을 켜지 않았다.
복도의 빛이 문틈으로 한 줄 들어왔고 그 한 줄로도 방 안의 것들은 다 보였다. 그가 이 방을 쓰는 동안 한 번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낡은 회전의자, 세 칸짜리 서류함, 벽에 붙은 시설 도면, 그리고 도면 옆에 압정으로 박아둔 종이 한 장.
강인규는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회의 자료를 반출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었고, 그가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은 것은 12주 전이었다. 12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폈다가 접었기 때문에 접힌 자리가 이제 종이가 아니라 실밥처럼 되어 있었다.
맨 아래 줄은 여전히 같았다.
`유전적 특이점 없음. 대상은 일반 개체로 분류됨.`
강인규는 그 줄을 다시 읽었다.
11년 동안 그가 한 일은 사람의 몸에 무언가를 넣고 무엇이 되는지 기다리는 일이었다. 2,000명이 넘는 자료가 그의 이름으로 정리되어 있고 그중 성공은 없으며 근처까지 간 것조차 없다. 그는 오래 그 실패를 재료의 문제라고 여겼다. 몸이 아직 안 나왔다고, 어딘가에 다른 몸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계속 찾으면 된다고.
그런데 지난봄에 스물세 살짜리가 하나 나왔고, 그 애의 몸은 그가 여태 찔러온 2,000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몸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강인규는 그 결론에 도달한 날부터 잠을 자지 못했다. 몸이 문제가 아니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 질문을 12주 동안 생각했고, 생각한 끝에 남은 것은 답이 아니라 다른 질문 하나였다.
그러면 왜 나는 아닌가.
그 질문은 처음에는 학문의 얼굴을 하고 왔다.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검토 항목이라는 이름으로. 강인규는 그 생각을 노트에 적고 조건을 나누고 반례를 찾아봤으며, 그러는 동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있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설명이 안 되기 시작한 것은 여름부터였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실험실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서 있은 지 얼마나 됐는지도, 애초에 왜 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손이 떨렸는데 그때는 저혈당이려니 했다.
지금은 안다.
11년 동안 그가 참은 것은 윤리가 아니라 순서였다. 이 일에는 관찰하는 사람과 관찰당하는 사람이 있고 그 둘은 절대 섞이면 안 된다는 것이 첫해에 배운 첫 문장이었으며, 그는 그 한 문장으로 2,000명을 넘겼다. 순서를 지키는 사람은 자기 차례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순서를 지킬 이유가 없다. 3개월 뒤면 이 시설은 사라지고 그의 이름이 붙은 자료도 다른 사람의 번호로 다시 매겨질 텐데, 지킬 것이 없어지면 규칙은 그냥 습관이 된다.
강인규는 종이를 접어 책상에 놓았다.
같은 시각, 지하 1층 사무실.
민현석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평소처럼 정확히 두 걸음 안쪽에 섰다.
“한지오 씨.”
“네.”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근무지가 바뀝니다.”
지오는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화면에는 그날 저녁의 명단이 열려 있었고 아직 여섯 줄이 대기였다.
“…어디로요.”
“본부요. 서류는 내일 나옵니다.”
“본부가 어딘데요.”
“저도 주소까지는 못 들었습니다.”
민현석은 늘 그렇듯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답했다. 못 들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다르고, 이 사람이 둘을 구분해 쓴다는 것을 지오는 이제 알았다.
지오는 물어야 할 것을 물었다.
“사진은요.”
민현석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 잠깐이 이 사람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라는 것도 지오는 알고 있었다.
“그건 이 시설 소관입니다.”
“…그러니까요.”
“이 시설에서 나가시면, 이 시설이 드리던 것도 같이 끝납니다.”
민현석이 나가고 문이 닫힌 뒤에도 지오는 한동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여섯 줄이 대기인 채로 있었고, 그 여섯 줄을 수용으로 바꾸는 것이 오늘 밤 지오의 일이었으며, 그 일을 하는 대가로 지오가 받아온 것이 매일 새벽 다섯 시의 봉투였다.
월요일부터는 그 봉투가 오지 않는다.
봉투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사진이 오지 않는다는 뜻이고, 사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손가락을 셀 수 없다는 뜻이고, 손가락을 셀 수 없다는 것은 벽 너머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애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기다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지오는 손을 들어 뒷목에 올렸다.
뜨겁지 않았다. 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았고, 아무렇지 않은 것이 오늘은 다르게 만져졌다. 다시 온다고 벽에 두드려 놓고 지오는 사흘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시간이 사흘도 남지 않았다.
지오는 여섯 줄을 그대로 두고 사무실을 나왔다.
지하 3층 실험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강인규는 그 시간표를 알고 내려갔다. 야간에 이 층에 사람이 없는 시간대는 열한 시 반부터 한 시까지고, 그 시간표를 만든 것은 그였다.
카드를 대자 문이 열렸다.
안은 밝았다. 이 방의 조명만은 절전 대상이 아니어서 언제나 같은 밝기로 켜져 있는데, 그래서 이 시설에서 가장 밝은 곳은 사람이 가장 적게 드나드는 곳이다.
강인규는 냉장고를 열고 앰플을 꺼냈다.
일련번호가 찍힌 유리관 안에서 액체가 조금 흔들렸다. 색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냥 물처럼 보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물이라고 할 것이다. 11년 전에 이 물질을 처음 봤을 때 강인규도 실망했었다. 세상을 바꿀 것이 이렇게 생겼을 리가 없다고.
지금 보니 그 생각이 오만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들은 대개 그렇게 생겼다.
강인규는 작업대 위에 것들을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앰플 여섯 개, 주사기, 알코올 솜, 지혈대. 그리고 노트 한 권과 볼펜. 마지막에 휴대전화를 세워두고 녹음을 켰다.
관찰자가 없으면 자료가 아니다. 그가 첫해에 배운 두 번째 문장이 그것이었고, 지금 이 방에는 관찰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관찰자를 겸하기로 했으며, 대상이 관찰자를 겸하면 자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기록 시작합니다.”
자기 목소리가 그 방에서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강인규. 만 54세. 남성. 기저질환 없음. 최근 3개월 투약 없음.”
그는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본 시행은 본부 승인 없이 이루어집니다. 책임은 전적으로 시행자에게 있습니다.”
투여량을 말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표준 용량은 정해져 있었다. 11년 동안 2,000명이 넘는 사람에게 들어간 그 양이었고, 그 양으로 변이가 일어난 사례는 12명이었으며, 나머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쪽이 훨씬 흔했다.
강인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죽는 것보다 그쪽이 두려웠고, 두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자 다음 문장은 아주 쉽게 나왔다.
“투여량, 표준의 6배.”
노트에 적으면서 그는 손이 떨리지 않는 것을 봤다. 남의 팔에 주사를 놓을 때는 늘 조금 떨렸는데, 자기 팔에 놓으려니까 떨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는 노트에 적지 않았다. 자료가 아니라고 판단해서가 아니라, 적으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종이에 남기 때문이었다.
지혈대를 위팔에 감았다.
혈관이 올라오는 데 몇 초가 걸렸고 그동안 강인규는 팔뚝을 봤다. 쉰네 해를 쓴 팔이었다. 열여덟에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스물넷에 대학원에 들어가고 서른셋에 이 회사에 들어온 팔, 그리고 마흔셋부터 남의 팔을 잡아온 팔.
가족은 없었다. 있었던 적은 있는데 남지 않았을 뿐이다. 그 세월 동안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간 날이 손에 꼽혔고, 야근을 이유라고 부르기에는 스스로도 낯이 뜨거워서 강인규는 그 얘기를 아무에게도 꺼낸 적이 없다.
찾을 사람은 없었다.
그 세 마디를 12주 전 회의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듣던 순간에, 강인규는 자기가 그 문장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알코올 솜이 팔뚝에서 차가웠다.

강인규는 주사기를 들었다.
들어가는 데 십칠 초가 걸렸다.
6배는 양이 많아 한 번에 다 밀리지 않는다. 절반쯤에서 팔 안쪽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는데, 뜨거운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자료가 나빠진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남아 있던 문장은 그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를 어딘가에서 보고 있는 쪽도 있기는 했다. 다만 그쪽은 이미 아주 멀리 가 있어서, 목소리가 여기까지 닿지 않았다.
주사기가 비었다.
강인규는 빈 주사기를 작업대에 내려놓고 지혈대를 풀었다. 피가 다시 도는 감각이 손끝까지 내려갔는데, 그 감각이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그는 잠깐 실망할 뻔했다.
“투여 완료. 이십삼 시 오십이 분.”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현재 특이 증상 없음. 팔 안쪽에 열감…….”
거기서 말이 끊긴 것은 열감이라는 단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려서였다. 열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뜨거운 것은 팔 안쪽이 아니라 그 아래였고, 아래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았다.
살갗과 살갗 아래 사이에, 원래 없던 틈이 생기고 있었다.
강인규는 자기 왼팔을 봤다.
팔뚝의 피부가 조금 들려 있었다. 화상을 입으면 그렇게 되는데 붉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손끝으로 밀어보자 밀렸다. 밀린 자리에서 아래층이 드러났는데 그 아래층은 사람의 피부색이 아니었다.
그는 그 변화를 노트에 적으려고 볼펜을 잡았다.
잡히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가 문제였다. 벌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벌어지기는 하는데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걸렸고, 걸리는 자리에 원래 없던 것이 있었다.
강인규는 손을 들어 조명에 비춰봤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얇은 막이 생겨 있었다. 빛이 그 막을 통과했고, 통과하면서 붉게 물들었다. 사람 손에 그런 막이 생기면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여태 12번 봤으니까.
강인규는 웃었다.
웃었다는 것을 그는 나중에 녹음으로 알게 될 뻔했으나, 나중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오지 않았다.
액체가 흐르기 시작했다.
들린 피부의 가장자리에서 먼저 나오더니 곧 목덜미와 등에서도 나왔다. 마르지 않는 종류였다. 작업대에 팔을 짚으면 자국이 남고 그 자국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데, 바닥으로 떨어진 것들은 조명을 받아 길게 번졌다.
냄새가 방을 채우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비린내였다. 어시장의 새벽 같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진하고 훨씬 가까운, 살아 있는 것에서 직접 나오는 냄새. 강인규는 그 냄새를 여러 번 맡아봤지만 늘 유리 너머에서였다. 이쪽에서 맡는 것은 처음이었고, 이쪽에서 맡으면 냄새가 아니라 맛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의자를 붙잡았을 때였다.
한 움큼이 어깨에 떨어졌고 그는 머리카락을 털어내려다 말았다. 털어낼 손이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강인규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앉은 것인지 쓰러진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구분하려는 노력도 어느 시점에 그만두었다. 몸의 어느 부분이 자기 것이고 어느 부분이 아닌지가 계속 바뀌었다. 무릎이라고 생각한 곳이 무릎이 아니었고, 대신 등 쪽에서 여태 없던 감각이 하나 새로 생겨서 그쪽으로 자꾸 주의가 갔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 제일 이상했다.
11년 동안 그가 본 12명은 전부 아파했다. 소리를 냈고 몸을 접었고 붙잡을 것을 찾았다. 그래서 그는 이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기록해왔는데, 지금 겪어보니 아니었다. 아픈 것이 아니라 지워지는 것이었고, 지워지는 데에는 통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차이를 기록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생각이 그날 밤 강인규가 사람으로서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작업대 위에서 휴대전화가 아직 녹음 중이었다.
거기 남은 마지막 몇 분에는 사람 목소리가 없다. 젖은 소리가 있고, 무언가가 바닥을 미는 소리가 있고, 유리 기구가 넘어지는 소리가 두 번 있다. 그리고 3분 42초 지점에 아주 짧게,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소리가 한 번 들어가 있다.
그 파일은 나중에 회수되지 않는다.
강인규가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동작은 벽으로 가는 것이었다.
실험실 벽에는 시설 전관 방송 콘솔이 있었다. 화재나 대피 안내를 위한 것이었고, 12주 전에 강인규가 거기에 채널 하나를 더 물려두었다. 발현 유도용 음원. 특정 주파수, 재생 시간 무제한, 출력 최대.
그는 그 소리를 자기에게 쓸 생각이었다.
6배를 넣었으니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하게 하고 싶었고, 확실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를 이 자리까지 데려온 것이기도 했다. 그 배선이 실험실에만 가지 않고 시설 전관으로 나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 눌렀다.
수용동에 100명이 있고 관찰동에 12명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12명이 무엇인지는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강인규는 위층의 사람들을 계산에서 뺐다. 뺀 이유는 악의가 아니었다. 11년 동안 그 사람들은 한 번도 계산에 들어와 본 적이 없어서, 마지막 밤에도 자리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버튼이 눌렸다.
소리는 처음에 소리 같지 않았다.
너무 낮아서 귀보다 뼈가 먼저 받았고, 지하 1층 사무실에 있던 지오는 그 진동을 발바닥으로 느꼈다. 형광등이 웅웅거리는 것과는 달랐다. 이 진동은 바닥에서 올라왔고 의자 다리를 타고 척추까지 왔으며, 오는 동안 몸의 어딘가를 계속 건드렸다.
지오는 일어섰다.
책상 위의 종이컵에서 물이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다. 아주 가는 원이 안쪽에서 계속 새로 생겼다.
복도로 나가자 소리가 커졌다.
주차장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고,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한 번 튀었고, 손잡이 없는 문 쪽에서 무언가가 두꺼운 것을 통과해 올라오고 있었다.
대원 하나가 문 앞에서 뛰어왔다.
“이거 뭐야, 방송이야?”
“모르겠는데요.”
“콘솔 3층인데.”
“올라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려가야지, 3층이면.”
두 사람이 서로를 봤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시설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절차가 없었다. 화재 절차가 있고 정전 절차가 있고 침입 절차가 있는데, 아래에서 소리가 올라올 때의 절차는 없었다.
지오는 문을 봤다.
손잡이가 없는 문이었다. 사흘 전 새벽에 그 문 안쪽 벽에 손가락 열세 번으로 약속을 하나 남기고 나왔고, 남기고 나온 뒤로 지오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문틈으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낮은 것 위에 다른 것이 얹혀 있었다. 여러 개였다. 문 하나 너머에서 사람이 아닌 것들이 동시에 깨어나는 소리를 지오는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들어본 적이 없어도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문이 안쪽에서 한 번 울렸다.
무언가가 부딪힌 것이었다. 강철 문이 그렇게 우는 소리를 지오는 처음 들었고, 두 번째가 왔을 때 문틀 위쪽에서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졌다.
대원 하나가 뒷걸음질을 쳤다.
“야, 이거…….”
세 번째에 문이 조금 벌어졌다.
손잡이가 없는 문은 안쪽에서만 열린다. 지오는 그 사실을 3주 동안 매일 생각했고, 오늘 밤 그 구조가 자기에게 무슨 뜻인지를 처음으로 알았다.
안쪽에서만 열린다는 것은, 안쪽에서는 열린다는 뜻이었다.
문틈으로 냄새가 먼저 나왔다.
비린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