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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4

네가 주웠구나

22:45

공원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지오가 담장을 돌아 들어갔을 때 정문 쪽에서 2조가 움직이는 중이었다. 손전등 불빛이 나무 사이를 훑고 지나갔고 벤치마다 사람이 있었으며, 대원들이 둘씩 짝을 지어 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소리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100명 가까운 사람을 한밤중에 옮기는데 고함도 사이렌도 없이, 대원들은 조용히 말하고 노인들은 조용히 일어났다. 몇은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몇은 묻지 않았는데, 묻는 쪽에 돌아가는 대답은 늘 같았다.

따뜻한 데 모셔다드릴게요.

지오는 그 문장을 서른 번쯤 들으면서 담장을 따라 걸었다.

여름밤이었고 공원 안은 낮의 열기가 아직 빠지지 않아 미지근했으며 매미가 울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그 밑에 늘 깔려 있는 사람 냄새가 났는데 지오가 2년 동안 아침마다 지나던 바로 그 냄새였다. 다만 그때는 해가 떠 있었고 사람들은 장기를 두고 있었고 지오는 출근하는 길이었다.

담장 끝까지 마흔 걸음이었고, 지오는 그 마흔 걸음을 아주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걸으면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이.

세 번째 자리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담장에 등을 대고 무릎을 세운 늘 그 자세였고, 여름인데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발치에 끈으로 묶은 짐 보따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2년 동안 그 자리를 지나다닌 지오는 그것이 원래 거기 있던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싸놓은 것이었다.

노인은 도망가지도 자고 있지도 않았다. 담장에 등을 대고 앉아서 정문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오는 다섯 걸음 앞에서 멈췄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2년 동안 이 자리에서 지오가 한 말은 안녕하세요 하나였다. 아침에 고개를 숙이면 상대도 고개를 숙였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금은 밤이었고 지오는 검정 조끼를 입고 있었다.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노인이 지오를 봤고, 그 순간 지오는 몸속에서 무언가가 도는 것을 느꼈다.

뒷목이었다. 정확히는 뒷목 아래 어디쯤, 목뼈와 어깨가 만나는 자리가 뜨거워졌다. 데인 것도 아프지도 않았고, 굳이 말하자면 오래 잠겨 있던 문이 반 바퀴 도는 것 같았다. 열린 것은 아니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한 것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지오는 자기도 모르게 뒷목에 손을 올렸고, 노인의 눈이 그 손을 따라 올라왔다.

그리고 노인의 얼굴이 변했는데, 놀란 얼굴도 무서워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오래 기다리던 소식을 마침내 들은 사람의 얼굴이었고, 그 소식이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까지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네가 주웠구나.”

지오는 숨을 멈췄다.

2년 동안 서른 문장쯤을 나눈 사람이었고, 그 서른 문장 중에 이런 것은 없었다. 늙으면 여름에도 춥다고, 오늘은 덥다고, 밥은 먹었냐고. 그런 문장들이었지 사람의 인생이 갈리는 문장은 아니었다.

“…뭐라고요.”

“네가 주웠어.”

노인은 다시 말했다. 묻는 것이 아니었다. 확인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밤에 선로에 들어간 게 너였구나.”

지오의 입이 벌어졌다가 그대로 닫혔다.

머릿속에서 여러 개가 동시에 움직였다. 막차가 끊긴 승강장, 박성호와 함께 내려간 선로, 손전등에 걸리던 자갈, 그 사이에 박혀 있던 휴대폰, 그리고 그 옆의 것.

버려져 있던 것이 아니었다. 버린 사람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응.”

“할아버지가 그걸.”

“버렸어.”

노인이 담장에 기대 있던 등을 조금 뗐다.

“버릴 데를 삼십 년 찾았어. 태워도 안 되고 묻어도 안 되고 부숴도 안 되더라고. 그러다가 생각한 게 선로였어. 거기는 아무도 안 내려가니까. 내려가도 쓰레기만 줍고 올라오니까.”

노인은 거기서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런데 네가 주웠네.”

매미가 계속 울고 있었고, 정문 쪽에서 누가 우는 소리가 났다가 곧 잦아들었다.

지오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가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것인지를 아주 늦게 깨달았다. 이 사람이 삼십 년 동안 버리려던 것을 주운 사람이 자기이고, 오늘 밤 이 사람을 데려가는 사람도 자기였다.

“할아버지.”

“응.”

“지금 여기 계시면 안 돼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계산보다 먼저였고, 계산했으면 나오지 않았을 말이었다.

“저쪽으로, 후문 쪽으로 가시면 담장 낮은 데가 있어요. 거기로 나가시면…….”

“총각.”

노인이 지오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지오의 가슴께를 봤다. 아무 글자도 없는 검정 조끼였고, 노인의 시선이 그 위에서 몇 초 머물렀다. 2년 동안 저 사람이 봐온 조끼에는 늘 로고와 이름이 있었다.

“너, 저 사람들이랑 왔지.”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에 든 거 그거, 명단이지.”

지오의 손에는 태블릿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화면은 꺼져 있었고, 꺼진 화면에는 공원의 어둠과 그 어둠을 들여다보는 자기 얼굴이 함께 비쳤다.

“…네.”

“거기 내 이름 있고.”

“…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번, 아래로.

“그래.”

그것이 다였다. 화도 없고 원망도 없었고, 그래, 하는 두 글자뿐이었다. 차라리 멱살을 잡히고 욕을 먹었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지오는 나중에 여러 번 생각하게 된다.

노인이 짐 보따리를 끌어당겼다.

“할아버지, 제 말 좀…….”

“총각.”

“네.”

“내가 여기서 도망가면.”

노인이 지오를 봤다.

“저 명단에서 내 이름이 지워지나.”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지오였다. 오늘 못 잡으면 내일 다시 오고 내일 못 잡으면 다음 주에 온다. 나머지 절반은 다음 주에 간다고 민현석이 말했고, 지오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으면서 배차표를 정리했다.

“안 지워지지.”

노인이 자기가 대답했다.

“저런 건 안 지워져. 삼십 년 살아보니까 알겠더라. 종이에 한번 올라가면 그 종이가 없어지기 전에는 안 없어져.”

노인이 담장을 짚고 일어섰다.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아 두 번에 나눠 일어났고 일어나고 나서도 잠깐 숨을 골랐으며, 그러고 나서 짐 보따리를 들었다. 지오가 2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늘 거기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짐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가자.”

“…네?”

“가자고.”

노인이 먼저 걷기 시작했다.

버스까지 걸어가는 동안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지오는 부축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었다가 그 손이 방금 무엇을 하려는 손인지가 생각나서 도로 내렸고, 노인은 그것을 봤을 것이다. 봤어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담장 끝에서 정문까지는 여든 걸음쯤이었고, 그 여든 걸음 동안 노인은 딱 한 번 말했다.

“총각.”

“네.”

“뒷목 아프지.”

지오는 걸음이 흐트러졌다.

“어떻게…….”

“거기로 들어가거든.”

노인이 앞을 보면서 말했다.

“처음엔 뜨겁기만 해. 그다음엔 무거워지고. 그다음엔.”

노인은 그다음을 말하지 않았다.

정문에 버스가 서 있었다. 뒷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는 이미 이십 명쯤이 앉아 있었는데, 삼십 분 전까지 벤치에 흩어져 앉아 있던 사람들이 지금은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고 아무도 창밖을 보지 않았다.

오반장이 문 옆에 서 있다가 지오를 봤다.

“확인됐어요?”

지오는 태블릿을 켰다. 화면이 밝아지고 명단이 뜨고, 열아홉 번째 행이 거기 있었다. 사진과 이름과 생년, 그리고 맨 끝에 대기라고 적힌 상태 칸.

노인이 그 화면을 옆에서 봤다.

“내 사진이네.”

“…네.”

“언제 찍었대.”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됐어. 눌러.”

노인이 말했다.

지오는 상태 칸을 눌렀다.

목록이 아래로 떨어졌다. 대기와 수용, 그리고 그 밑으로 지오가 아직 읽을 수 없는 것들. 지오는 두 번째를 눌렀다. 클릭 두 번으로 사람 하나가 대기에서 수용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일 초도 되지 않았다.

노인이 버스에 올랐다. 계단 세 개를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렸고 마지막 계단에서 한 번 멈췄으며,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지오를 봤다.

“총각.”

“네.”

“이름이 뭐야.”

지오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2년 동안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에게 묻지 않은 것이었다. 물어볼 이유가 없어서 묻지 않았고, 묻지 않아도 아침마다 인사는 됐으니까.

“…한지오요.”

“한지오.”

노인이 그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말했다. 외우는 사람의 방식이었다.

“나는 나종배야.”

“…알아요.”

“어떻게 알아.”

지오는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아직 켜져 있는 화면, 열아홉 번째 행, 방금 수용으로 바뀐 상태 칸.

“거기서 봤어요.”

나종배가 웃었다.

2년 동안 지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웃는 얼굴인데 웃음이 아니고 슬픈 얼굴인데 슬픔도 아니어서,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미안해하는 얼굴이었다. 다만 오늘 밤 미안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가 그 얼굴 위에서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거 참.”

노인이 말했다.

“2년을 봤는데.”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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