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얼굴에 정면으로 왔다. 지오는 눈을 감았다가 조금씩 떴다. 3주 동안 지오가 본 가장 밝은 것이 지하 주차장의 형광등이었고, 그 정도에 익숙해진 눈에 지금 이 빛은 통증에 가까웠다.
후면 주차장이었다. 경사로가 끝나는 자리에 흰 버스가 아직 서 있었는데 문이 열린 채였고 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 너머로 담장과 화단과 관리동이 차례로 있었으며, 담장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파란색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담장 위를 훑고 지나갔다.
지오는 그쪽으로 걸었다.
뒤에서 여섯이 따라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저것들의 모양이 처음으로 다 보였다. 지하에서는 어둠이 절반을 가려주었는데 여기서는 가려주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지오는 자기가 무엇을 끌고 나왔는지를 정확히 보게 되었다.
여섯 중 넷은 사람의 실루엣이 아니었다. 어깨가 머리보다 높이 솟았고 등이 굽은 채로 앞으로 쏠렸으며, 걸을 때마다 젖은 것이 아스팔트에 길게 자국을 남겼다. 남은 둘은 아직 사람 모양. 사람 모양이라는 것이 오히려 더 보기 힘들었다.
맡으니 비린내가 더 심했다. 지하에서는 공간에 갇혀 있어서 오히려 익숙해졌는데, 여기서는 바람이 냄새를 실어 와서 자꾸 새로 맡게 되었다.
지오는 앞을 봤다.
담장에 철문이 있었다. 3주 동안 하역할 때 트럭이 드나들던 문이고 늘 열려 있었으며 오늘도 열려 있었는데, 그 문으로 나가면 관리동 옆길이 나오고 옆길을 따라가면 건물 정면이 나온다는 것을 지오는 알고 있었다.
정면에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으므로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하필 소리가 그쪽에서 나고 있었다.
지오는 철문 앞에서 멈추고 소리를 들었다. 사이렌이 여러 개 겹치고 확성기가 무언가를 반복하고, 그 아래에 사람 목소리가 넓게 깔려 있었다. 그렇게 깔린다는 것은 사람이 많다는 뜻.
지오는 뒤를 봤다. 여섯이 스무 걸음쯤 뒤에서 같은 속도로 오고 있었다.
지오는 옆길로 나가지 않고 담장을 따라 걸었다. 담장 안쪽으로 화단이 있고 화단 흙이 젖어 있어서 발소리가 죽었으며, 지오는 그 흙을 밟고 담장 끝까지 가서 담장이 꺾이는 자리에 몸을 낮추고 밖을 내다봤다.
강남대로가 끊겨 있었다. 왕복 열 차로가 통째로 비고, 그 빈 도로를 가로질러 노란 통제선이 두 겹. 안쪽에 경찰 버스 다섯 대, 그 앞에 방패를 든 사람들이 두 줄, 그 뒤에 국방색 차량 세 대.
군이었다. 지오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총을 들고 서 있는 것을 텔레비전 밖에서 처음 봤다.
통제선 바깥은 사람이었다. 인도에도 있고 건너편 상가 앞에도 있고 육교 위에도. 전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고, 그 손에 전부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폰이었다. 새벽 세 시 반의 강남대로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오는 그때 알았다.
수백 개의 작은 화면이 이쪽을 향해 서 있었고, 그중 몇은 얼굴 앞에 들고 말을 하고 있었으므로 방송을 하는 중일 것이었다.
지오는 그 그림을 보면서 목이 조여왔다. 두 시간 전에도 지오는 찍히고 있었다. 목이 졸린 채로 바닥에 눌려 있었고, 흰 옷을 입은 사람이 계측기를 얼굴 옆에 대고 있었으며, 지오를 화나게 한 것은 목이 아니라 그 계측기였다.
지오는 건물 정면을 봤다. 강남 노인복지센터의 정문이 통제선 안쪽 정면에 있었다. 지상 3층짜리 신축이라 유리가 많이 들어갔고, 1층 로비의 전면이 통째로 유리였다.
그 통유리 안쪽에 사람이 있었다.
100명이었다. 로비에 서 있고 앉아 있고 벽에 기대어 있고, 전면 유리에 얼굴을 붙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담요를 두른 사람이 많고 맨발인 사람이 더 많았다. 유리 밖에서 보면 대피한 것이 아니라 진열된 것 같았다.
정문 앞에 회색 방호복이 여덟 명 서 있었다. 문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 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문 앞을 막고 있는 것이고, 그 여덟은 통제선 안쪽에 있으니 경찰도 군도 건드리지 않았다.
지오는 그 배치를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에 있는 것을 안에 두는 것이 저들의 일이었고, 그 안에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오는 유리 안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다가 세 번째 기둥 옆에서 멈췄다.
지현이었다.
두 시간 전에도 이렇게 봤다. 그때는 지하였고 문에 난 작은 유리였고 지현이 손가락 하나를 펴서 유리에 댔는데, 지금은 통유리에 거리가 오십 걸음쯤 되었고 지현은 지오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지현이 보고 있는 것은 문 앞이었다.
문 앞에 노인이 서 있었다. 색 빠진 카키색 상의에 굽은 등, 느린 걸음. 다른 아흔아홉 명은 유리 안에 있는데 그 사람만 밖으로 나와 방호복 여덟 명 앞에 혼자 서 있었다.
나종배였다.
지오는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면서 자기가 여섯을 데리고 있다는 것을 잊었고, 잊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두 걸음을 걸은 뒤였다. 두 걸음 뒤에 지오는 다시 멈춰 섰다.
여기서 나가면 여섯이 통제선으로 간다. 통제선 뒤에 방패가 있고 그 뒤에 총이 있고 그 뒤에 수백 명이 있었으며, 지오가 두 시간 전에 한 계산은 아직 유효했다.
그래서 지오는 담장 안에 선 채로 앞을 보고 있었다.
노인이 손을 들었다. 높이 든 것도 아니었다. 가슴께까지 올렸을 뿐이고, 손바닥이 방호복 쪽을 향했으며, 사람이 사람에게 잠깐만요라고 할 때 하는 동작이었다.
방호복 하나가 봉을 들었고, 노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십 걸음 밖에서 지오는 그 두 동작을 다 봤고, 저 노인이 봉에 맞아본 적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뺨에 있던 멍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공기가 섰다.
소리가 없었다.
노인의 손바닥에서 검은 것이 나왔다. 지오는 그 검은 것을 오십 걸음 밖에서 알아봤다. 두 시간 전에 창고 문 앞에서 자기 손등에 앉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고, 조금 전 경사로에서 소매 밖으로 흘러넘친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만 양이 달랐다. 노인의 것은 손에서 나오는 즉시 연기처럼 부풀어 길 양쪽으로 벽처럼 섰다.
그리고 방호복 여덟이 뒤로 밀렸다. 밀렸다기보다 물러났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는데 여덟이 동시에 반 발짝씩 뒤로 갔고, 그중 둘은 봉을 놓쳤고.
노인과 정문 사이가 열렸다.
지오는 그 자리에서 숨을 멈췄다. 담장 아래에서 오십 걸음 밖으로 지오는 그 광경을 봤는데, 무엇을 본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지오에게는 없었다. 지하에서 노인이 자기 손을 오래 들여다보던 것이 그때 떠올랐다.
다만 두 가지는 알았다. 하나는 노인이 내는 것이 자기 손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물질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쓰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지오의 것은 나오는 대로 앞으로 터져 나가 무엇이든 밀어냈는데, 노인의 것은 나온 자리에 머물러 굳었다.
노인이 벽을 세웠다.
정문에서 인도까지 길이 났다. 폭이 두 사람쯤, 길이가 스무 걸음쯤. 그 길 양쪽으로 검은 것이 사람 키보다 높게 서서 방호복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조명을 받아도 안이 비치지 않는 벽이었고, 위쪽 가장자리만 연기처럼 계속 흔들렸다.
로비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느렸다. 절반은 부축을 받고 지팡이가 없는 사람은 옆 사람 팔을 잡고, 맨발이 젖은 보도블록을 밟을 때마다 미끄러졌다. 그래도 나왔다.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그 좁은 길로 나왔다. 지오는 그 줄을 세다가 그만두었는데, 세는 속도보다 나오는 속도가 느려서 세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손바닥을 앞으로 향한 채, 등은 아까보다 더 굽은 채로. 뒤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동안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오는 그 뒷모습을 봤다. 일흔여덟 살이었고, 오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나선 사람이었고, 상자 뚜껑의 종이 밴드 하나 뜯은 것이 평생의 저항이었던 사람이었다.
확성기가 켜졌다.
그 자리에 정지하십시오.
노인은 정지해 있었다. 처음부터 정지해 있었고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는데도 확성기는 같은 문장을 계속 반복했다.
정지하십시오. 반복합니다.
지오는 그때 알았다. 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노인이 아니었다.
경찰과 군이 알고 있는 것은 한 문장이었다.
안에서 사람이 아닌 것이 나온다.
그 한 문장이 이 밤에 저들에게 전달된 정보의 전부였고, 그 한 문장을 가지고 저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건물에서 걸어 나와 빈손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는 노인이었으며, 그 주위에서 빛이 휘고 있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지오는 나중에도 알지 못했다. 등이 계속 굽어가고 어깨가 떨리고, 세우는 데 힘이 전부 들어가서 말할 여유가 없었을지도.
뒤에서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일흔 명쯤 나왔을 때였다.

소리가 났다. 지오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영화에서 듣던 것과 전혀 달라서 훨씬 납작하고 짧았고, 여러 개가 거의 한꺼번에 났다가 한 박자 늦게 하나가 더.
그리고 노인이 앞으로 꺾였다.
세우던 것이 풀렸다. 양쪽의 검은 벽이 위에서부터 흩어지면서 그냥 연기가 되었고, 그 연기가 도로에 낮게 깔렸다. 방호복 여덟이 앞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왜 안 나오는지 지오는 그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남은 서른 명이 통제선 쪽으로 뛰었다. 그중에 지현이 있었고,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오는 담장을 넘었다.
여섯이 지오를 지나쳤다. 지오가 담장을 넘는 순간 여섯이 방향을 틀었는데 지오 쪽이 아니라 통제선 쪽이었고, 지오는 여섯이 자기를 완전히 잊는 것을 바로 옆에서 봤다.
소리가 났으니까.
이 밤에 난 소리 중에 제일 큰 소리가 저쪽에서 났다. 그러니까 저것들은 저쪽으로 간다. 그 한 줄이 지오가 3주 동안 배운 유일한 규칙이었고, 지금 그 규칙이 지오를 살렸다.
지오가 노인에게 갈 수 있게 된 이유가 노인을 쏜 총소리였다.
지오는 뛰었다.
노인은 옆으로 누워 있었다. 지오는 무릎을 꿇고 그 몸을 돌려서 안았는데 가벼웠다. 3주 전에 승합차 뒷자리에서 옆에 앉았을 때도 어깨가 좁다고 생각했지만, 안아보니 그때 생각한 것보다 더.
지오는 무엇을 봐야 할지 몰라서 얼굴을 봤다. 눈이 떠져 있었다.
“어르신.”
지오는 자기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오는 것을 들었다.
“어르신. 저예요.”
노인의 눈이 움직였다.
“제가 왔어요. 저 여기 있어요.”
지오는 그때 울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지현을 안고도 못 울었다. 그때는 소리를 내면 안 되는 곳이었고 지오는 소리를 내지 않는 데 익숙했으니까. 목이 막힌 채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소리가 났다. 지오는 자기가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소리 때문에 저것들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 조금만.”
지오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계속 말했다.
“조금만 있으면 사람 와요. 저기 구급차 있어요. 아까 봤어요. 저기 있었어요.”
구급차가 있었는지 지오는 확인하지 않았다.
“제가 부를게요. 지금 부를게요.”
노인이 지오를 봤다. 그리고 입을 움직였다.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지오는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갔다.
“…한지오.”
지오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2년이었다.
2년 동안 이 사람과 같은 골목에서 마주쳤고 같은 차에 실렸고 같은 담장 앞에 섰는데도 서로 이름을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오는 어르신이라고 불렀고 이 사람은 총각이라고 불렀고.
한 달 전에 이 사람이 처음으로 이름을 물었다.
물어놓고 두 번 소리 내어 외웠다. 한지오. 한지오. 그때 지오는 그게 왜 그렇게 이상하게 좋았는지 몰랐다.
“…네.”
지오가 대답했다.
“네, 저예요.”
노인이 다시 입을 움직였다.
“이번엔.”
지오는 숨을 멈추고 들었다.
“…내가 주웠다.”

지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끄덕이면서 더 물으려고 했고, 물을 수 없게 되었다.
노인의 눈은 계속 떠져 있었다.
지오는 그 자리에 한참 앉아 있었다. 한참이라고 나중에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여섯 걸음 정도의 시간이었다. 지오가 여섯 걸음을 셀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러고 나서 노인을 아스팔트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조심할 이유가 이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심했다.
내려놓으면서 손으로 눈을 감겼다. 그리고 일어섰다.
지오는 통제선 쪽으로 걸었다. 왜 걷는지는 몰랐다. 계산한 것이 아니었고, 계산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지오가 아는 것은 저쪽에 아까 그 소리를 낸 것들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걸으면서 손이 뜨거워졌다.
가루가 나왔다. 손등에서 나오고 손목에서 나오고 팔뚝에서 나왔으며, 이번에는 얇게 앉는 정도가 아니었다. 검은 것이 소매 밖으로 흘러넘쳐 걸음마다 발밑에 떨어졌고, 떨어진 자리가 아스팔트에 남았다.
목 뒤가 타는 것 같았다. 지오는 검은 것을 부르지 않았다.
방패 줄에서 소리가 났다. 지오는 그 소리를 들었고, 아까 노인을 향해 났던 것과 같은 소리라는 것을 알았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가 지오의 앞에서 멈췄다.
지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을 들지도 않았고 몸을 웅크리지도 않았다. 다만 몸 앞에서 검은 것이 두껍게 섰고, 그 안으로 들어온 것들이 안에서 힘을 잃고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나씩 났고 여러 개가 났다. 지오의 발밑에 납작하게 뭉개진 것들이 쌓였고, 쌓이는 동안 지오는 걸음을 늦추지도 빠르게 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그 자리에서 수거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발표되지 않았다.

방패 줄이 뒤로 밀렸다. 앞줄이 밀리면서 뒷줄과 부딪혔고 부딪히면서 사람이 넘어졌으며, 방패가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가 이쪽까지 왔다.
지오는 그 소리를 들었고, 넘어진 것이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알았는데 계속 걸었다.
지오는 나중에 이 대목을 여러 번 다시 생각하게 된다. 두 시간 전에 지오는 지하에서 계산을 했다. 100명과 밖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을 나란히 놓고 모른다는 것을 답으로 삼고 밖을 골랐으며, 그때 지오는 적어도 자기가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몰랐다.
사격 중지.
여자 목소리였다. 확성기가 아니었다. 통제선 안쪽에서 그냥 사람이 낸 목소리였는데, 그 목소리가 나자 방패 줄에서 나던 소리가 끊겼다.
지오는 그쪽을 봤다.
경찰 버스 옆에 여자가 서 있었다. 방호복이 아니었다. 헬멧도 없고 통제선 안쪽인데 코트 차림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고 신발도 젖지 않았다. 지오 나이보다 스무 살쯤 위로 보였고 머리가 단정했으며, 이 시각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지오는 그 여자를 몰랐다. 3주 동안 그 건물을 드나들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옆에 서 있던 방호복 하나가 그 여자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여자가 그쪽을 보지도 않고 짧게 대답했다.
표본이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확보해.
지오는 그 두 단어를 들었다.
표본.
그 단어를 지오는 알고 있었다. 3주 동안 사무실에서 여러 번 들었고, 명단에도 없고 서류에도 없는데 사람들이 말로는 그 단어를 썼다.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는 몰랐고 다만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는 것만 알았는데, 지금 그 단어가 지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총구가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대형이 바뀌었다. 방패가 좌우로 벌어지고 그 뒤에서 회색 방호복이 나왔는데, 그 손에 들린 것은 총이 아니었다.
죽이지 않고 잡는 대형이었다.
지오는 그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노인이 아스팔트에 누워 있었다.
그 사람을 향해서는 아무도 사격을 중지하지 않았다.
“오빠.”
지오는 그 목소리를 등으로 들었다. 여러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이렌과 확성기와 사람들의 비명과 저쪽에서 나는 다른 소리가 전부 겹친 가운데, 그 두 글자만 따로 들어왔다.
지오는 돌아보지 않았다.
지현이 지오의 팔을 잡았다. 잡은 손이 뜨거운 것에 닿은 것처럼 튕겼다가 다시 잡았다. 지오의 팔은 검은 것으로 덮여 있었고, 그 검은 것이 지현의 손바닥에 그대로 묻었는데도 이 애는 놓지 않았다.
“오빠.”
“…가.”
“오빠.”
“가라고.”
지오는 자기 목소리가 자기 것 같지 않은 것을 들었다.
“저리 가.”
지현은 가지 않았다.
“오빠, 몇 명이야.”
지오는 걸음을 멈췄다.
“…뭐.”
“지금 오빠 앞에 몇 명이냐고.”
지오는 앞을 봤다. 방패가 벌어진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 방호복 여덟과 그 뒤의 경찰, 넘어져서 아직 못 일어난 사람이 둘. 그중 하나는 헬멧이 벗겨져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젊었고, 지오보다 어려 보였다.
지오는 세기 시작했다. 세면서 이 애가 왜 하필 이 말을 골랐는지 알았다. 지오는 세는 사람이고, 3주 동안 사람을 세었고 상자를 세었고 침대를 세었으며, 세는 동안에는 다른 것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세면 저 사람들은 다시 사람이 된다.
숫자로 세는 순간, 하나씩 세는 순간, 앞에 선 사람들은 다시 사람이 된다.
지오의 손에서 나오던 것이 멎었다. 멎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흘러나오던 것이 소매 끝에서 멈추고, 손등에 앉아 있던 것이 굳고, 목 뒤의 열이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지오는 숨을 크게 쉬었다.
“…미안.”
지오가 말했다.
지현은 대답하지 않고 지오의 팔을 계속 잡고 있었다.
저쪽에서 비명이 나서 지오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섯이 통제선 왼쪽 끝에 도달해 있었다. 경찰 버스 사이로 들어가서 방패 줄 옆구리를 뚫었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지오는 지현의 손을 떼어냈다.
“세고 있어.”
“…오빠.”
“저기 몇 명 남았는지 세고 있어.”
지오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방향을 바꾼 것이 그 밤에 지오가 한 일 중에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지오는 혼자 이기지 못했다. 지오가 한 일은 소리를 내는 것이었고, 3주 동안 배운 것이 그 하나뿐이었으므로 그 일을 했다. 사람들이 있는 쪽에서 저것들을 떼어내고, 빈 도로 쪽으로 끌고 나가고, 저것들이 사람보다 지오를 먼저 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지오가 그 일을 하는 동안 군과 경찰이 조준할 수 있었다.
첫 번째가 도로 한가운데서 쓰러졌다. 여러 발이었고, 지오는 스무 걸음 밖에 서서 그 장면을 봤으며,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발목에 흰 종이 밴드가 있었다.
그리고 소리가 났다.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비명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었다. 아주 낮은 데서 시작해 위로 올라가는 소리. 귀보다 가슴뼈로 먼저 느껴졌고, 3초쯤 이어지다 뚝 끊겼다.
지오는 그 소리에 이가 시렸다. 주변에서도 몇 사람이 귀를 막았다. 창문에 금이 갔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뉴스에 나왔는데, 그때 지오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두 번째가 쓰러졌을 때 같은 소리가 났고,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거의 동시였으므로 그 소리가 겹쳐서 두 번 났다. 다섯 번째는 도로 건너편 화단에서였다.
여섯 번째가 제일 오래 걸렸다. 작은 개체였다. 몸빼바지를 입고 있었고 여섯 중에 제일 느렸으며, 지오는 그 사람이 쓰러질 때 눈을 감았다.
여섯 번째 소리는 다른 것들보다 길었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도로에 여섯이 누워 있고 조명이 그 위를 비추는데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지오는 그 사이 도로 한가운데에 혼자 서 있었고.
멀리서 누가 박수를 쳤다. 지오는 그 소리를 들었다. 육교 위 어디쯤이었고 한 사람이었으며, 두어 번 치다가 곧 그쳤다. 그치고 나서 아무도 따라 치지 않았고, 도로에 누워 있는 것들이 조금 전까지 무엇이었는지를 그제야 다들 생각한 모양이었다.
지오는 그 자리에 서서 여섯을 세었다.
지오는 그때 이겼다고 생각했다.
발밑이 흔들렸다.
처음에는 지오가 자기 다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두 시간 동안 서 있었고 힘을 여러 번 썼으니 다리가 풀릴 만도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경찰 버스가 흔들렸다.
사람들이 서로를 붙잡기 시작했다. 인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휘청거리면서 옆 사람을 잡았고 폰을 떨어뜨린 사람이 많았으며, 비명이 여기저기서 짧게 터졌다가 끊겼다. 가로수가 흔들리고 신호등이 흔들렸다.
지오는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췄다.
도로가 갈라졌다. 중앙선을 따라 금이 갔고 그 금이 사람 뛰는 속도보다 빠르게 길어졌으며, 아스팔트 조각이 위로 튀었다. 맨홀 뚜껑 하나가 3미터쯤 솟았다가 떨어졌고, 그다음에 신호등이 넘어갔다.
지오는 건물을 봤다. 복지센터가 부풀고 있었다.
무너지는 것이 아니었다. 건물이 무너질 때는 아래로 주저앉는 법인데 이 건물은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3층 유리가 안에서부터 밀려 나와 한꺼번에 터졌고, 외벽 패널이 뜯겨 나가 도로 위로 날아왔다.
지오는 몸을 숙였다.
무언가가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지오는 그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건물이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무언가가 입고 있던 옷이었고 지금 그 옷이 벗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옥상이 들렸다.
일어섰다.
지오는 고개를 들었다. 계속 들었다. 목이 완전히 젖혀질 때까지 들었고, 그러고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 오피스 빌딩이 15층. 그 높이와 비슷했다.
짙은 청록색. 젖은 채로 조명을 받아 기름처럼 빛났고, 어깨와 등에 겹쳐진 것이 비늘이었다. 벗겨진 피부가 아직 조각으로 매달려 있었는데 그 조각 하나가 사람 키만 했고,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다.
머리가 옥상 높이에 있었다.
얼굴이 있었다.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지오는 그 얼굴에서 무언가를 알아봤고, 알아본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안경 자국이었다.
관자놀이 양쪽에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오는 그 사람을 알았다. 3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마주친 사람. 복도에서 인사했고 회의 자료를 옮겼고 커피를 타 드린 적도 있었다. 열한 해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고, 자기 자리에 만족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보였고.
강인규였다.

강인규가 한 걸음 옮겼다. 발이 도로에 닿는 순간 지오는 공중으로 떴다가 떨어졌고, 경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넘어갔으며, 그 아래에 사람이 있었는지 지오는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수백 명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뛰었다. 그 광경이 그날 밤 지오가 본 것 중에 제일 무서운 그림이었고, 나중에 뉴스에 나온 영상도 대부분 이 순간에 끊겨 있었다.
지오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지오는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다리가 떨렸다. 두 시간 동안 얼마나 썼는지 지오 자신은 몰랐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손끝이 저리고 눈앞이 가장자리부터 좁아졌으니까.
지오는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돌이 있었다. 차가웠다. 3주 동안 하루에 스무 번씩 확인한 그 감촉. 오늘 밤에 세 번 부탁했는데 세 번 다 대답이 없었고, 지금도 똑같았다.
지오는 돌을 왼손에 쥐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었다.
왜 걸었는지 지오는 나중에도 설명하지 못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계산할 것도 없었다. 15층짜리와 사람 하나 사이에는 계산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오는 걸었다. 여기서 지오가 안 가면 강인규가 사람들 쪽으로 간다. 지오가 가면 잠깐 이쪽을 본다. 잠깐이 얼마나 짧든 그 잠깐 동안 사람들이 더 멀리 간다.
그 두 줄이 지오가 한 마지막 계산이었다.
지오는 소리를 냈다.
“여기요.”
두 시간 전에 지하에서 낸 것과 같은 소리였다. 그때는 여섯이 왔다.
“여기 있어요.”
강인규가 고개를 돌렸다.
지오는 손을 들었다. 검은 것이 나왔는데 아까보다 얇았고 아까보다 늦었지만 나오기는 나왔으며, 지오는 그 얇은 것을 앞으로 밀었다.
닿았다. 닿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인규가 팔을 휘둘렀다. 지오는 도로를 가로질러 날아가 경찰 버스 옆면에 부딪혔다.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지오는 그 소리를 자기 몸 안에서 들었다.
내려앉았다.
지오는 일어나려고 했다. 한쪽 팔이 말을 듣지 않았고 입안에서 쇠 맛이 났으며 귀에서 소리가 났다. 도로가 기울어 보였는데, 지오는 도로가 기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지오는 벽을 짚고 일어섰다.
다시 걸었다.
두 번째는 더 짧았다. 지오는 열 걸음쯤 가서 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검은 것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나온 것은 손등에 얇게 앉는 정도였고,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밀지 못했다.
지오는 그 자리에서 눌렸다.
아팠다. 지오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내면서 지오는 이상하게도 지현을 생각했다. 이 애가 3주 동안 소리를 안 내는 법을 어디서 배웠는지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물어볼 걸 그랬다.
압력이 사라졌다. 지오는 도로에 누워 있었다. 하늘이 보였는데 강남 하늘이라 별이 없었고, 대신 조명이 있었고 헬기가 있었고 회색 연기가 있었다.
지오는 손가락을 움직여보려고 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가 멀어졌다. 사이렌이 먼저 멀어졌고 그다음에 사람 소리가 멀어졌으며,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지오 자신의 숨소리였는데 그 숨소리마저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지오는 눈을 감으려고 했다.
감기지 않았다. 아까 경사로에서와 반대였다. 그때는 감고 싶은데 안 감겼고 지금은 감고 싶은데 감을 힘이 없었다.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어두워졌다.
돌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쥐고 있을 힘이 없어서 손이 펴졌고, 돌이 손바닥에서 굴러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지오는 그 소리를 들었다.
아.
지오는 마지막으로 그 생각을 했다.
못 세겠다.
“안 돼.”
지현이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오고 있었다.
경찰이 잡으려고 했는데 뿌리쳤다. 넘어졌다가 일어나고 다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으며, 신발 한 짝이 벗겨진 채로 갈라진 도로를 건너왔다.
“안 돼! 안 돼!”
이 애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3주 동안 소리를 내면 안 되는 데서 살았고, 두 시간 전에는 오빠를 안고 울면서도 목에서 아무것도 내지 않았던 애가, 지금 강남대로 한가운데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현이 무릎을 꿇고 지오를 안았다.
“오빠.”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빠, 안 돼.”
지현이 울었다.
소리를 내서 울었다. 어깨만 올라가는 울음이 아니라 목에서 나오는 울음이었고, 그 소리가 도로에 울렸으며, 아무도 그 애를 말리지 않았다.
눈물이 떨어졌다.
지오의 얼굴에 하나 떨어졌다.
그리고 팔에 하나 떨어졌다.
세 번째가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돌 위였다.

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3주였다.
지오가 돌을 주운 것이 3주 전이었고, 그동안 하루에 스무 번씩 확인했으며, 오늘 밤에만 세 번 불렀다. 창고 앞에서 한 번, 복도 끝에서 한 번, 강인규 앞에서 한 번.
세 번 다 아무 일도 없었다.
지오가 부를 때는 오지 않았다.
지금 지오는 부르지 않았다.
부를 힘이 없었고 부를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지오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못 세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왔다.
돌이 아스팔트에서 떠올랐다.
한 뼘쯤 떠서 잠깐 멈췄다가, 위로 솟구쳤다.
빛이 났다.
강남대로가 하얗게 됐다.

지현이 팔로 얼굴을 가렸다. 육교 위의 사람들도 가렸고 헬기가 방향을 틀었으며, 수백 대의 폰 화면이 전부 하얗게 날아갔다.
그 빛 안에서 지오의 몸이 떠올랐다.
축 늘어진 채였다. 팔이 아래로 처지고 고개가 뒤로 젖혀진 채로 지오는 아스팔트에서 사람 키 두 배쯤 되는 높이까지 올라갔고, 발끝에서 검은 가루가 아직 떨어지고 있었다.
돌이 내려왔다.
뒷목이었다.
박혔다.
파장이 퍼졌다.
동심원으로 퍼져서 도로의 물웅덩이가 밖으로 밀려 나갔고, 경찰 버스 유리가 한꺼번에 깨졌으며, 지현은 뒤로 밀려 앉았다.
지오가 입고 있던 것이 찢어졌다.
조끼가 먼저 가고 그다음에 셔츠가 가고 그다음에 나머지가 갔다. 3주 동안 지오가 매일 입었던 회색 작업복이 검은 가루와 함께 흩어져서 도로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빛기둥이 섰다.

수직이었다. 지오가 있던 자리에서 곧게 위로 올라가 구름까지 갔고, 도심의 밤하늘이 그 기둥 안에서만 낮이 되었으며, 그 빛을 그날 밤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지오는 그 안에 있었다.
지현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빛만 봤다. 육교 위 사람들도 빛만 봤고 폰 화면에도 빛만 찍혔으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밖에서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돌이 열렸다.
지오는 뒷목에서 돌이 열리는 것을 느꼈는데 열린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몰랐다. 다만 3주 동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안에 무언가가 접혀 있었고, 그 접힌 것이 지금 펴지고 있었다.
목에서 어깨로 내려왔다.
어깨에서 팔로, 팔에서 손끝으로. 등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다리로. 지오의 몸을 따라 무언가가 흐르면서 굳었고, 굳으면서 지오의 형태가 되었다.
무거웠다.
지오는 숨을 쉬었다.
들어갔다. 아까까지 반쯤만 들어오던 것이 끝까지 들어왔고 부러졌던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며, 입안의 쇠 맛이 사라졌다.
지오는 손을 폈다가 쥐어봤는데, 자기 손이었다.
빛기둥이 꺼졌다.
회색 가루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빛이 있던 자리에서 아주 고운 것이 천천히 내려왔다. 눈 같기도 했고 재 같기도 했으며, 아스팔트와 넘어진 버스와 사람들의 어깨 위에 소리 없이 얇게 앉았다.
강남대로 열 차로가 회색이 되었다.
수백 대의 폰이 그 광경을 찍었다.
그중 하나는 육교 위에서 실시간 방송 중이었고 시청자가 그때 4만 명이었는데, 그 화면 아래로 글자가 빠르게 올라가는 가운데 같은 단어 하나가 계속 반복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지오는 그 단어를 몰랐다.
지오는 서 있었다.
지현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오는 그 애를 봤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지현이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지오는 고개를 들었다.
15층 높이에서 강인규가 지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오는 왼발을 뒤로 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