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네 번째로 울렸을 때 경첩이 나갔다.
강철이 콘크리트에서 뜯겨 나오는 소리를 지오는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문은 부서지지 않았다. 부서진 것은 문틀이었고, 문은 그 틀을 통째로 매단 채 안쪽에서 바깥으로 삼십 센티쯤 밀려 나왔다.
그 틈으로 냄새가 먼저 왔다.
비린내였는데, 지오가 아는 어떤 비린내보다 진해서 냄새라기보다 밀려오는 물에 가까웠다. 옆에 있던 대원이 팔로 코를 막았고 지오는 막지 않았다. 막을 생각을 못 한 것이 아니라 그 냄새 밑에서 다른 것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락스였다.
매일 새벽 이 주차장에 깔리던 냄새가 비린내에 섞여 문틈으로 같이 나왔고, 그 순간 지오는 저 안쪽 어딘가에 아직 양동이를 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 번째가 나왔다.
지오가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크기였는데, 알아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 크기인 것이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 크기는 정보가 아니라 혼란이 된다.
머리에 털이 없었다. 두피에서 목까지 이어지는 표면이 젖어 있었고 그 젖은 것이 형광등을 받아서, 걸을 때마다 몸의 윤곽이 한 번씩 미끄러지듯 흔들렸다. 어깨는 사람의 어깨인데 그 위에 얹힌 선이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며,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는 막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는 회색 작업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허리 위는 벗겨져 나갔는데 아래는 남아서, 무릎 부분이 검게 젖은 채로 걸을 때마다 다리에 들러붙었다. 오른쪽 발목에 종이 밴드가 하나 걸려 있었다. 병원에서 채워주는 것과 같은 흰 띠였다.
지오의 걸음이 멈췄다.

저것은 사람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발목에 번호를 채운 누군가가 있었고, 그 번호를 표에 옮겨 적은 손이 지금 이 주차장 안에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같이 나왔다.
세 번째는 걷지 않고 네 발로 왔는데, 그 자세가 짐승의 자세가 아니라 무릎을 접을 줄 모르게 된 사람의 자세여서, 지오는 그 걸음을 본 순간 속이 뒤집혔다.
바닥에 자국이 남았다. 에폭시 코팅은 물을 튕겨내지만 저것에서 흐르는 것은 튕겨지지 않았고, 매일 새벽 여섯 명이 닦아서 반들거리던 바닥 위로 젖은 발자국이 찍혀서 마르지 않고 그대로 번졌다.
“문 닫아! 문 닫으라고!”
오반장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이 문으로 달려들어 어깨로 밀었지만 문은 밀리지 않았다. 문틀이 이미 뜯겨나가 문이 걸릴 자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안쪽에서 미는 힘이 두 사람의 힘보다 컸다.
네 번째가 나오고 다섯 번째가 나오는 동안 아무도 그 수를 세지 않았는데, 세고 있던 것은 지오뿐이었다.
지오는 문 쪽으로 뛰었다.
대원들과 같은 방향이었지만 이유는 정반대였다. 저쪽은 문을 닫으려고 갔고 이쪽은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갔다.
3주 동안 지오는 저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잡이가 없어서, 안쪽에서만 열려서, 열리는 시간이 하루에 20분뿐이어서 끝내 들어가지 못했던 그 문이 지금 열려 있었다.
지오와 문 사이는 열두 걸음이었고, 여섯 걸음에서 어깨를 잡혔다.
“한지오 씨.”
민현석이었다.
지오는 그 손을 뿌리쳤는데 뿌리쳐지지 않았다. 이 사람이 이렇게 힘이 세다는 것을 지오는 그날 처음 알았고, 3주 동안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사람이 손에 그만한 힘을 담아둔 채로 지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무서웠다.
“저 안에 제 동생이 있어요.”
“압니다.”
“놓으세요.”
“못 놓습니다.”
민현석의 안경에 형광등이 비쳐서 눈이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문 하나 너머에서 사람이 사람 아닌 것이 되어 나오는 중에도 이 사람은 말투를 바꾸지 않았다.
“지금 들어가면 저것들이 지나온 길을 거꾸로 걸어야 합니다.”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수용동 문은 잠갔습니다. 잠겨 있는 동안은 그 안이 제일 안전해요.”
열두 번째가 마지막이었다.
지오는 나오는 수도 셌다. 문에서 나온 것은 모두 12였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며,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오는 것만큼 이상했다.
저 아래에는 100명이 있다. 그런데 12만 나왔다.
지오가 그 숫자의 뜻을 생각하기 전에 경사로 쪽에서 셔터가 올라갔다. 누가 올린 것이 아니라 첫 번째가 강판 아래에 손을 넣고 폈고, 레일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밖의 가로등 빛이 한 줄 들어왔다.
12개가 그 빛을 향해 걸었다.
“막아야죠!”
지오가 말했지만 대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상으로 나온 것들은 골목을 지나 큰길로 갔다.
지오는 경사로를 뛰어 올라가서 그 뒷모습을 봤다. 여름밤이었고 아스팔트가 낮의 열을 아직 뱉고 있었으며, 그 위로 비린내가 얹혀 있었다.
첫 신고는 3분 만에 들어갔을 것이다.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어디선가 개가 길게 짖었고, 배송 오토바이 한 대가 골목을 돌아 나오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상자를 쏟았다. 지오는 그쪽으로 달렸다.
넘어진 사람은 다리가 오토바이 밑에 깔려 일어나지 못했고, 지오가 도착했을 때 쫓아오던 것은 이미 다섯 걸음 앞이었다.
지오는 그 사이에 섰다.
2년 동안 지오가 한 일이 그런 일이었다. 취객과 선로 사이에, 넘어진 사람과 밀려드는 인파 사이에 서는 일. 그때는 가슴에 이름표가 있었고 등 뒤에 역무실이 있었고 무전을 하면 사람이 왔다.
지금은 셋 다 없었다.
지오는 뒷목에 손을 올렸다.
검은 것이 나오기 전에는 늘 뒷목이 먼저 뜨거워졌다. 노인이 담장 앞에서 말한 그대로였다. 처음엔 뜨겁기만 하고, 그다음엔 무거워진다고.
여태 세 번 나왔다. 몰카범을 쫓을 때 한 번이었고 자다가 두 번이었으며, 세 번 다 지오가 부른 것이 아니었다. 부르면 오지 않고 나서기로 하면 온다는 것이 3주 동안 지오가 알아낸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 지오는 나서 있었다. 사람과 저것 사이에 서 있었으니 이보다 더 나선 자리는 살면서 없었다.
손바닥 밑은 차가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지오의 몸은 스물세 살짜리 사회복무요원의 몸 그대로였다.
저것이 팔을 휘둘렀고 지오는 넘어지면서 피했다.
발이 쏟아진 상자에 걸린 덕분에 궤적 아래로 떨어졌고, 그 팔이 지오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 가로등 기둥을 쳤다. 주철 기둥이 종이처럼 휘었다.
지오는 바닥에 누운 채로 휘어진 기둥을 봤다. 저 힘이 방금 자기 머리로 왔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이해하고 나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는데 이번 떨림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넘어져 있던 사람이 오토바이를 밀어내고 다리를 뺐다. 그 사람이 지오의 조끼를 잡아당겼고, 두 사람은 뛰었다.
차량이 온 것은 그때였다.
경찰차가 아니었다. 검은 승합차 넷이 사이렌도 없이 골목 양쪽을 막고 섰고, 문이 동시에 열리면서 사람들이 내렸다.
지오는 그 복장을 알았다.
남색 제복 위에 방탄조끼, 등판에 노란 글씨. 지오가 그 제복을 처음 본 것은 가족이 지하로 끌려 들어가던 밤이었고, 그날 이후로 지오는 그 네 글자를 잊은 적이 없었다.
CRPT.
열여섯 명이었다.
지오는 그 사람들도 셌다. 세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셌고, 세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빨랐다.
문이 뜯긴 것이 25분 전이었다. 경찰차 두 대가 오는 데 7분이 걸렸는데 이 사람들은 25분 만에 열여섯 명이 장비를 다 갖추고 골목 양쪽을 막았다. 강남 어딘가에 이미 앉아 있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속도였다.
지오는 벽에 붙어서 그 광경을 봤다.
저들은 오늘 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거나, 아니면 늘 이런 일에 대비해서 어딘가에 대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둘 중 어느 쪽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CRPT는 저것들을 잡지 않았다.
지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4분이 걸렸다.
처음에는 잡는 줄 알았다. 넷씩 조를 짜서 붙었고 긴 봉을 들었고 소리를 질러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12개 중 9개가 큰길 쪽으로 몰려 나가는 동안 아무도 그 아홉을 막지 않았고, 세 개만 이쪽 골목으로 들어왔다.
지오가 있는 골목이었다.
한 조가 그 세 개의 뒤에서 봉으로 아스팔트를 때렸다. 금속이 아스팔트를 치는 소리가 좁은 골목에서 크게 울렸고, 그 소리에 세 개가 전부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소리를 찾는 것들이다.
그 사실을 CRPT는 알고 있었다.
지오는 벽에서 등을 뗐다.
몰고 있었다. 잡는 것이 아니라 몰고 있었고, 모는 방향에 지오가 있었다.
지오는 골목 안쪽으로 물러났고 세 개가 따라 들어왔다. CRPT 한 조가 골목 입구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으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요!”
지오가 소리쳤다.
“거기 서서 뭐 해요!”
입구의 넷 중 하나가 지오를 봤다. 헬멧에 얼굴 가리개가 내려와 있어서 눈이 보이지 않았고,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오는 그때 알았다.
저들은 지오를 보러 왔다.
저들은 3주 동안 지오를 옆에 두고 지켜봤다. 지하 1층에 자리를 주고 노트북을 주고 명단을 맡겼고, 그동안 지오에게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오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매일 밤 불러봤는데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늘 밤 강남 한복판에 통제되지 않는 것들이 풀렸다.
이런 밤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오는 그 계산을 자기 머리로 따라갈 수 있었다. 3주 동안 명단을 정리하면서 배운 것이 그런 것이었다. 이 회사는 사고가 나면 덮는 것이 아니라, 덮기 전에 한 번 쓴다.
세 개가 골목 안으로 더 들어왔다.
지오는 뒷걸음질을 쳤고 등이 벽에 닿았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좌우로 담이 있고 앞에 세 개가 있고 그 뒤에 CRPT 넷이 서 있었다. 저들은 지오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켜보던 것이 죽으면 볼 것이 없어지니까. 다만 죽기 직전까지는 가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 판단이 정확한지 확인할 방법은 지오에게 없었다.
지오는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부르지 않았다. 부르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대신 나서기로 했다. 사람과 저것 사이에 섰던 자리를 떠올렸고, 문 앞에서 무릎이 꺾이던 밤을 떠올렸고, 벽 너머에서 기다리겠다고 두드리던 손가락 열세 번을 떠올렸다.
뒷목은 차가웠다.
첫 번째가 지오의 어깨를 잡았다.
젖은 손이었다. 손가락 사이의 막이 지오의 목에 닿았고, 그 감촉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고 그냥 살아 있는 것의 감촉이었다.
지오는 그 손을 봤다.
손목에 종이 밴드가 있었다. 아까 본 것과 같은 흰 띠였고 이번에는 가까워서 인쇄된 것이 보였다. 바코드와 번호. 그 번호의 첫 세 자리를 지오는 알았는데, 명단의 일련번호 체계에서 그 세 자리는 회수 지점을 뜻했다.
종로3가였다.
지오는 저항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저항할 수 없었는데, 그 순간 지오를 붙잡고 있던 것이 힘이 아니라 그 세 자리 숫자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종로에서 왔다. 지오가 2년 동안 매일 아침 지나다닌 그 거리에서 왔고, 어쩌면 지오가 규정집을 읊었던 사람이고, 어쩌면 지오가 클릭 두 번으로 대기에서 수용으로 바꾼 사람이다.
“…죄송합니다.”
지오가 말했다.
저것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을 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저것이 지오를 들어 올렸다.
발이 땅에서 떨어졌고 목에 걸린 힘이 기도를 눌렀으며, 시야 가장자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골목 입구의 CRPT 넷은 그대로 서 있었다. 하나가 팔을 조금 들었다가 내렸다. 아직이라는 뜻이었다.

지오는 그 동작을 봤다.
아직.
그 두 글자가 지오 안에서 무언가를 건드렸다.
지오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지금 시계를 보고 있다. 몇 초까지 견디는지, 어느 지점에서 몸이 반응하는지, 반응하지 않으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를 재고 있다. 그리고 그 자료는 내일 아침에 표가 되어 27층으로 올라갈 것이고, 그 표를 읽는 사람들은 폐기라는 단어 앞에서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다.
지오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 계측기였다.
지금 자기를 죽이는 쪽이 아니라, 자기가 죽는 것을 기록하는 쪽.
뒷목이 뜨거워졌다.
지오는 그다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끊긴 것이 아니라 그 사이가 없었다. 목에 걸린 힘이 사라졌고, 어느 순간 지오는 골목 바닥에 손을 짚고 네 발로 엎드려 기침을 하고 있었다.
입안에서 탄내가 났다.
고개를 들었을 때 세 개가 뒤로 물러나 있었다. 물러났다기보다 밀려나 있었고, 골목 벽면을 따라 검은 것이 아직 흩어지는 중이었다.
지오의 오른손이 검었다. 손목까지.
골목 입구에서 CRPT 하나가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계측기였다. 그 사람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고 승합차 쪽에서 다른 사람이 응답했다.
지오는 그 장면을 봤다.
방금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이 저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12주 동안 나오지 않던 자료가 방금 나왔고, 그 자료를 얻기 위해 저들은 사람 하나를 목이 졸리는 데까지 밀어 넣었다.
지오는 일어섰다.
일어서니 세 개가 다시 왔다.
지오는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날 데도 없었고, 무엇보다 방금 나온 것이 아직 몸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디에 남아 있는지는 몰랐지만 뒷목이 계속 뜨거웠고, 뜨거움이 이렇게 오래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오는 손을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들었고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세 개가 다섯 걸음까지 왔다.
부르면 오지 않는다.
지오는 웃을 뻔했다. 이 규칙은 정말이지 한 번도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때 골목 입구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엔진이었다. 승합차가 아니라 더 큰 것이었고 지오가 아는 소리였다. 3주 동안 하루에 두 번씩 듣던 디젤 엔진이 골목 입구로 들어와서, 그대로 CRPT 넷이 서 있던 자리를 밀어냈다.
흰 버스였다.
운전석에서 민현석이 내렸다.
민현석은 지오를 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뒷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대원 여섯이 내렸다. 회색 작업복이었다. 오반장이 제일 먼저 내려서 봉을 하나 지오 쪽으로 던졌다.
“잡아요!”
지오가 그 물병을 받았다.
그다음 30초 동안 골목에서 일어난 일을 지오는 순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대원들이 세 개를 벽 쪽으로 몰았고, 봉이 아스팔트를 치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 소리를 질렀고, 오반장이 하나를 넘어뜨렸다.
넘어뜨린 다음에 오반장이 멈췄다.
바닥에 누운 것의 발목에 종이 밴드가 있었다.
오반장은 그 밴드를 이 초쯤 봤다.
그러고는 봉을 내리지 않은 채로 뒤로 물러났다. 지오가 그 얼굴을 봤을 때 거기에는 화도 두려움도 없었고, 대신 회식 자리에서 집게를 잡고 고기를 뒤집던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이건 안 되겠는데.”
오반장이 말했다.
민현석이 CRPT 쪽으로 걸어갔다.
방탄조끼를 입은 열여섯 명 앞으로 회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걸어가는 장면이었고, 그 사람은 안경 한쪽 알에 금이 가 있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CRPT 쪽에서 한 사람이 무전을 들었고, 무전을 들은 다음에 손을 들었고, 열여섯 명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승합차 문이 닫혔다.
떠나면서 그중 한 대가 지오 앞을 지나갔다.
창은 검었다. 안이 보이지 않았고, 안에서는 지오가 보였을 것이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세 개는 벽 쪽에 몰려 있었고 대원들이 그 앞에 봉을 든 채 서 있었다. 아무도 더 때리지 않았다. 때려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여섯 명 전부가 방금 배웠다.
민현석이 지오 앞으로 왔다.
“괜찮으십니까.”
“…목이요.”
“병원은 못 갑니다. 오늘은.”
“알아요.”
민현석이 잠깐 지오를 봤다. 그러고는 지오가 3주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말했다.
“미안합니다.”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사람은 지오의 가족을 지하에 가둔 사람이고, 매일 새벽 사진 한 장으로 지오를 붙잡아 둔 사람이고, 명단을 만들라고 시킨 사람이다. 그 사람이 지금 미안하다고 했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지오는 알 수 있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일 수 있다는 것이 이 밤의 가장 이상한 부분이었다.
“반장님.”
“네.”
“저 아래로 내려갈 겁니다.”
민현석은 말리지 않았다.
셔터는 중간에서 걸려 있었다.
내려가다가 무언가에 걸린 채로 멈춰서, 그 밑으로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만한 틈이 남아 있었다.
지오는 그 앞에 섰다.
3주 동안 이 셔터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그 소리가 일과의 시작과 끝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민현석이 뒤에서 말했다.
“수용동 열쇠는 접수대에 있습니다.”
지오가 돌아봤다.
“그리고 아래에는 아직 9명이 남아 있습니다.”
지오는 그 숫자를 셈했다.
문에서 나온 것이 12였고 지상으로 올라간 것이 12였다. 그러면 아래에 9명이 더 있다는 말은 처음부터 12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뜻이 된다.
“12개 다 나갔잖아요. 제가 셌어요.”
“12명은 관찰동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민현석이 말했다.
“나머지 9명은 오늘 밤에 생겼습니다.”
지오는 셔터 밑으로 몸을 낮췄다.
낮추면서 벽 너머에서 온 두 글자를 떠올렸다. 위에 달린 것은 위에서 아래를 보고, 위에서 아래를 보는 것에는 반드시 보지 못하는 아래가 있다.
낮게 오라는 뜻이었다.

강판 밑을 지나면서 등이 긁혔고 조끼가 걸렸다가 빠졌다. 지나고 나서 지오는 일어섰다.
주차장은 어두웠다.
형광등이 절반도 남지 않았고, 남은 것들이 만드는 빛의 웅덩이 사이로 젖은 자국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자국은 전부 한 방향에서 왔다.
손잡이 없는 문 쪽이었다.
지오는 그쪽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손끝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3주 동안 하루에 스무 번씩 확인하던 그 감촉이었다.
돌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오는 돌을 쥔 채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등 뒤에서 셔터가 마저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