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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5

같은 차

23:20

지오는 앞문으로 탔다.

인솔은 조수석에 앉는 것이라고 했다. 문이 닫히고 실내등이 꺼지자 차 안이 바깥보다 어두워져서 눈이 익는 데 몇 초가 걸렸고, 앞이 보이지 않는 그 몇 초 동안 지오가 받은 것은 전부 소리였다.

31명분의 숨소리였다.

기침하는 사람이 둘 있었다. 코를 훌쩍이는 사람이 하나. 나머지는 조용했다. 100명 가까이 옮기는데 고함이 없었던 것처럼, 실려 가는 동안에도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뭐가 달라진다고 믿는 사람이 그 안에 없었다.

지오는 앞을 보고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익선동 골목 입구가 지나가고 갈매기집 간판이 지나갔으며,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렸다. 초록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밖으로 술 마시고 나온 사람들이 웃으면서 건너갔고, 그중 하나가 버스를 힐끗 보다가 그냥 지나갔다.

아무 글자도 없는 흰 버스였다. 그런 차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람은 이름이 붙지 않은 것에는 시선을 오래 두지 않기 때문이고, 그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이 차의 색을 골랐을 것이었다.

23:40

통로 건너편 첫 자리에 나종배가 앉아 있었다.

누가 앉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른 자리라는 것을 지오는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대원들은 몇 명이 앉았는지만 셌지 누가 어디에 앉는지는 보지 않았고, 조수석 바로 뒤라는 것은 사람 하나 골라 말을 걸기에 가장 좋은 자리였다.

버스가 다리에 올라섰을 때 옆에서 목소리가 왔다.

“총각.”

작았다. 앞자리에만 닿을 만큼.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고, 대답하지 않으면 이 사람이 알아서 그만둘 것 같기도 했는데, 둘 중 뒤엣것은 틀린 예상이었다.

“이쪽 보지 말고 그냥 앞 보고 들어.”

지오는 앞을 봤다.

“운전하는 사람은 백미러 보고, 뒤에 있는 사람은 사람만 세. 말하는 건 안 봐.”

어떻게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묻지 않았다.

“아까 물어보려던 거 있었지.”

지오의 어깨가 조금 굳었다.

“뒷목.”

“…네.”

지오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엔 뜨겁기만 하다고 했잖아.”

“네.”

“그다음엔 무거워진다고 했고.”

“네.”

옆에서 잠깐 소리가 없었다. 버스가 다리 이음매를 넘어가면서 차체가 두 번 덜컹거렸다.

“그다음이 뭔지 안 말했지.”

“…안 하셨어요.”

“들을 준비가 됐나 싶어서 안 했어.”

지오는 창을 봤다. 강이 검게 흐르는 위로 자기 얼굴이 비쳤는데, 검정 조끼를 입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 뒤로 뒷자리 사람들의 실루엣이 겹쳐서, 유리 한 장 안에 실어 가는 사람과 실려 가는 사람이 함께 들어 있었다.

“지금은요.”

“지금은.”

노인이 아주 짧게 웃는 소리를 냈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숨에 가까웠다.

“지금은 뭐, 어차피 같은 데로 가잖아.”

“그다음엔 아무것도 안 하게 돼.”

지오는 그 문장을 두 번 들어야 했다. 한 번은 귀로 들었고 한 번은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해야 했는데,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쉬워서였다.

“…네?”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고.”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버스가 다리를 다 건너서 강변북로 대신 어두운 안쪽 길로 접어들었다. 이 시간에 굳이 이 길을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지오는 이제 짐작할 수 있었다.

“뜨겁고, 무거워지고, 그다음엔 그게 네 안에 자리를 잡아. 자리를 잡으면 이제 그건 네 거야. 아무도 못 뺏어.”

“그러면 좋은 거 아니에요?”

“좋지.”

노인이 대답했다.

“좋으니까 문제야.”

지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노인은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멈춰 선 동안 어디선가 새벽 배송 오토바이가 요란하게 지나갔고, 그 소리가 다 사라지고 나서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내가 그걸 언제 받았는지 알아?”

“…모르죠.”

“스물여덟에 받았어.”

지오는 계산했다. 일흔여덟에서 스물여덟을 빼면 오십이다.

“오십 년이요?”

“그중에 삼십 년은 몸에 있었고.”

“…삼십 년.”

“응. 삼십 년 동안 몸에 있었고, 나는 삼십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

노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자기 인생을 말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랬다. 오래 생각한 것을 여러 번 다듬어 짧아진 문장들이었다.

“그거 알아? 힘이 있으면 안 나서게 돼.”

“…반대 아니에요?”

“반대 같지.”

버스가 커브를 돌자 뒤에서 누가 창에 머리를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잠깐 뒤척이는 기척이 났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힘이 없으면 못 나선 거야.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못 한 거니까.”

노인이 말했다.

“근데 힘이 있는데 안 나서면, 그건 안 한 거야.”

지오는 숨을 삼켰다.

“그러면 한 번 안 하고, 두 번 안 하고, 그다음부터는 안 하는 게 그냥 내가 되는 거야. 나는 원래 안 나서는 사람이다. 그렇게 정리가 돼.”

“…”

“삼십 년이면 아주 잘 정리가 되지.”

00:10

버스는 강남으로 들어섰다.

빌딩 사이로 아직 켜진 창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야근하는 사람들의 창이었고, 그 아래로 31명을 실은 흰 버스가 조용히 지나가는 동안 내다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저 창 안의 누구도 오늘 밤 자기 건물 아래로 무엇이 지나갔는지 끝까지 모를 것이었다.

지오는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서 두 번에 나눠 말해야 했다.

“할아버지.”

“응.”

“그럼 왜 버리셨어요.”

“뭘.”

“돌이요.”

옆에서 아주 긴 침묵이 왔고, 지오는 자기도 모르게 그 침묵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세는 버릇은 동생한테 옮은 것이었다. 열까지 셌을 때 노인이 대답했다.

“안 나서는 나를 계속 보는 게 힘들어서.”

“…”

“그게 몸에 있으면 매일 알잖아. 나는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다. 매일 아침에 눈뜨면 그게 먼저 와. 삼십 년을.”

노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주 조금이었고, 흔들린 다음에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없애버리면 그 생각도 없어질 줄 알았지.”

“없어졌어요?”

“아니.”

“…”

“안 없어지더라고. 그래서 알았어. 그게 그거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버스가 속도를 줄이자 익숙한 경사로가 앞유리를 채웠고, 그 아래에서 셔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지오가 두 걸음을 못 넘었던 문이 저 안에 있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총각.”

“네.”

“너는 나처럼 해.”

지오는 그 말에 고개를 돌릴 뻔했고, 돌리지 않은 것은 규칙을 지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목이 굳어 있어서였다.

“…네?”

“쓰지 마.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밥 먹고, 집에 가.”

“할아버지.”

“나 봐. 일흔여덟까지 살았어. 안 쓰고도 살았어.”

셔터가 다 올라가고 버스가 지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동안 천장의 형광등이 창을 하나씩 훑고 지나가서, 지오의 얼굴 위로 밝은 줄이 몇 번 스쳤다가 사라졌다. 마지막 줄이 지나가고 나자 창에 비치던 얼굴도 함께 사라졌다.

“그게 제일 오래 사는 방법이야.”

버스가 정위치에 섰다.

00:20

하역은 조용했다.

뒷문이 열리고 대원들이 붙어서 한 명씩 내렸다. 계단이 힘든 사람은 부축을 받았고 그 부축은 조금도 거칠지 않았으며, 늘 그렇듯 능숙하고 부드러웠다. 이 건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늘 그 부드러움이었다.

지오는 앞문으로 내려서 그 광경을 봤다.

31명이 손잡이 없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줄을 세운 사람이 없는데도 줄이 만들어졌고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데,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서가 아니라 돌아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어서였다.

나종배는 그 줄의 중간쯤에 있었다.

짐 보따리를 들고 등이 굽은 채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걸어서,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저 사람이 오십 년 전에 무엇을 받았고 삼십 년 동안 무엇을 참았는지 이 주차장에서 아는 사람은 지오뿐이었고, 아는 사람은 서서 보고만 있었다.

문이 열렸고, 노인은 돌아보지 않고 들어갔고, 문이 닫혔다.

민현석이 어느새 옆에 와 있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오는 이제 놀라지 않았다. 이 사람은 늘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어야 할 때만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네.”

“오늘 좀 많았죠.”

“네.”

민현석이 화이트보드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다음 주에 나머지 갑니다.”

나머지. 절반이 남았다고 했으니 80명쯤 될 것이었다. 지오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굴려봤고, 차량 세 대면 두 번, 네 대면 한 번에 되겠다는 데까지 계산이 갔을 때, 그 계산을 하고 있는 자기를 알아차렸다.

사람을 숫자로 굴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05:00

봉투가 왔다.

지오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봉투를 열었다. 손이 조금 떨렸지만 떨리는 것은 이제 매일 있는 일이라 셈에 넣지 않았다.

사진 속에서 지현이는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담요를 어깨까지 덮고 등을 조금 돌리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화질이 나빴고 각도도 나빴다. 지오는 그 두 가지를 이유로 받아들였다.

지오가 보는 곳은 늘 동생의 손이었다. 무릎 위에 오른손 다섯, 왼손은 접혀 있었다.

다섯이면 다섯 번째 자음이었다. ㅁ.

새 문장의 첫 글자였다. 두 번째 문장은 나 봤어였는데 무엇을 봤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고, 다음 세 글자를 다 받으려면 사흘을 더 걸어야 했다. 사흘이 얼마나 긴지를 지오는 이제 몸으로 알았다.

지오는 서랍을 열었다. 종이컵이 있었고 사진이 스물몇 장 쌓여 있었으며 안쪽 나무에 볼펜 자국이 줄지어 그어져 있었고, 그 옆에 지난번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ㅇㅈㅁ

ㄴㅂㅇ

그 아래에 지오는 새 글자를 그었다.

ㅁ

06:30

퇴근 버스에서 지오는 사진을 다시 꺼냈다.

주머니에 넣어 나오는 것이 규정 위반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런 규정이 있을 것 같았고 있다면 위반이었다. 2년 동안 규정집을 외우고 다닌 사람이 요즘은 규정을 어기는 쪽으로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아침 햇빛에 비춰 봐도 보이는 것은 어머니의 어깨와 담요와 돌린 등뿐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원래 등을 돌리고 자는 사람이고 지하는 추울 것이고 담요를 덮는 것은 당연하니까. 당연한 것들의 목록에 한 줄이 더 늘었을 뿐이었고, 그 목록이 길어질수록 지오는 편해졌다.

지오는 사진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창에 머리를 기댄 채, 어젯밤 버스에서 들은 말을 다시 꺼냈다.

너는 나처럼 해.

쓰지 마. 시키는 대로 하고, 밥 먹고, 집에 가.

그게 제일 오래 사는 방법이야.

지오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이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고, 버스가 한강에 올라설 때쯤에야 알았다. 맞는 말이어서였다.

오래 사는 방법으로는 그 태도가 정답이었다. 노인은 일흔여덟까지 살았고 지오의 어머니는 오십둘이고 지현이는 열아홉이니, 오래 사는 것이 목표라면 답은 진작 나와 있는 셈이었다.

다만 지오는 어제 자기 손으로 그 노인을 명단에서 눌렀다. 클릭 두 번이었고, 오래 살기 위해서였다.

아침 해가 물 위에 부서지는 것을 지오는 눈을 감은 채로 얼굴에 받았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한 가지를 아주 분명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오래 살 거면.

End of Episode
같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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