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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8

명부

첫째 날

천장이 하얬다. 지오가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여기가 어디냐가 아니라 천장이 하얗다는 것이었는데, 3주 동안 지오가 본 천장은 전부 콘크리트였다. 지하 1층 사무실도, 안쪽 방도, 복도도 다 그랬다. 이 천장에는 형광등이 켜져 있고 그 옆에 화재감지기가 붙어 있었다. 지오는 한참을 그렇게 위만 보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목이 뻣뻣했고 어깨가 아팠는데, 겨우 돌리고 나니 창이 있었다.

창이었다. 3주 만이었다. 밖이 밝았고 건물 몇 개가 보였고 그 사이로 하늘이 있었다. 지오는 그 하늘을 보면서 지금이 아침인지 낮인지 가늠해보려고 했는데, 가늠이 잘 안 됐다.

창 아래 의자에 지현이 앉아 있었다. 자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있었고, 병원에서 준 슬리퍼를 신고 있었으며, 무릎에 담요가 반쯤 흘러 있었다. 지오는 그 애를 깨우지 않았다. 깨울 힘도 없었으니까.

지오는 자기 손을 들어보려고 했다. 왼손이 조금 움직였다. 손등에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그 아래 피부가 파랗게 멍들어 있었다. 손가락을 폈다 쥐어봤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검은 가루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지오는 몇 초를 썼다. 손목에서도, 팔뚝에서도, 뒷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주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새어 나오던 것이 지금은 하나도 없었다. 무섭기보다 이상하게 조용하다고 지오는 느꼈다. 목 뒤에 손을 대보고 싶었는데 팔이 거기까지 안 올라갔다.

첫째 날 오후

지현이 깼다. 깨서 지오를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옆으로 와서 섰고, 서서 지오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어.”

지오가 말했는데 목에서 소리가 제대로 안 나왔다.

지현이 물컵을 들어 빨대를 입에 대줬다. 지오는 두 모금 마셨다. 마시고 나서 숨을 한 번 쉬었고, 그러고 나서야 물이 얼마나 마시고 싶었는지 알았다.

“…며칠이야.”

“이틀.”

“…이틀.”

“이틀하고 반.”

지현이 컵을 내려놓았다. “오빠 계속 잤어.”

지오는 천장을 봤다. 이틀 반이면 목요일이었다. 목요일이면 원래 야간이었고, 야간이면 흰 승합차가 나가는 날이었다. 그 계산을 반쯤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제 그 차는 안 나간다.

“학교는.”

지오가 물었지만 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학교 가야지.”

“안 가.”

“…지현아.”

“안 간다고.”

지현이 의자에 다시 앉았다. 앉아서 담요를 무릎에 올렸고, 그러고는 창밖을 봤다. 지오는 그 옆얼굴을 보면서 3주 전에 이 애가 이런 얼굴이었는지 기억해보려고 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3주 만에 만난 사람의 얼굴은 원래 잘 기억나지 않는 법이다.

둘째 날

의사가 왔다. 지오보다 열 살쯤 위로 보이는 사람이었고, 차트를 넘기면서 몇 가지를 물었다. 어지러운지, 손발이 저린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지오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사실대로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오도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니까.

“수치가 이상해요.” 의사가 말했다. “헤모글로빈이 낮은데 출혈이 없어요. 어디서 새는 건지 못 찾겠습니다.”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사는 환자가 몰라서 대답을 못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실제로 지오도 몰랐으므로 반쯤은 맞는 셈이었다.

의사가 나가고 나서 지오는 자기 손을 다시 봤다. 새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것이었다. 그 문장을 지오는 이틀 전에 도로에서 만들었다. 만들고 나서 무슨 뜻인지 끝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병실에서 생각하니 뜻이 하나뿐이었다. 지오가 그날 밤 도로에 깔아놓은 500미터짜리 줄은 전부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둘째 날 오후

지현이 노트북을 들고 왔다. 병원 로비에서 빌려 온 것이었고, 화면에 명단이 떠 있었다.

“오빠.”

“…어.”

“이거 나왔어.”

지오는 화면을 봤다. 익숙한 표였다. 열의 순서도 익숙했고 칸의 폭도 익숙했으며, 상태 칸에 들어가는 여섯 단어도 익숙했다. 3주 동안 지오가 채운 표였으니까.

시설이 폐쇄되면서 수용자 명부 전체가 공개 자료로 나왔고, 언론사들이 그 자료를 받아 정리해 올렸다. 지오가 보고 있는 것은 그중 하나였다.

이름이 있었다. 이름과 나이와 이송된 날과 상태 칸이 있었고, 처리자 칸에 세 글자짜리 영문이 있었다.

`HJO`

지오는 그 세 글자를 오래 봤다. 3주 동안 클릭 두 번으로 옮긴 사람이 몇 명인지 세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백 몇십 줄이라고만 셌다. 지금 화면 오른쪽 아래에 숫자가 떠 있었다.

`HJO 처리 건수: 213`

이백열셋이었다. 지오는 그 숫자를 소리 내지 않고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 읽었고, 두 번째로 읽을 때는 그 숫자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애써도 되지 않았다.

둘째 날 저녁

지오는 어머니 줄을 찾았다.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름으로 검색하면 나왔고, 지오는 3주 동안 검색을 못 했다. 지하에서 명단을 볼 때는 권한이 없었으니까. 이제는 아무나 볼 수 있었다.

`정미숙 · 만 52세`

이송된 날이 있었다. 지오가 근무를 시작하기 나흘 전이었다. 상태 칸도 있었다.

`반출`

지오는 그 두 글자를 봤다. 3주 동안 이 단어를 여러 번 봤고, 여러 번 클릭했고, 여러 번 다른 사람의 줄에서 읽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뜻을 아는 척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그 옆에 칸이 하나 더 있었다. 목적지였다. 거기에 글자가 아니라 부호가 적혀 있었다. 영문 두 자와 숫자 네 자, 그리고 하이픈. 소리 내어 읽어봤는데 읽어봐도 아무 뜻이 되지 않았다. 부호는 아는 사람에게만 뜻이 된다.

지오는 그 부호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짚어놓고 한참 있었다. 이 여섯 자를 아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쯤 있을지 생각해봤고, 그중 지오에게 알려줄 사람은 없다는 것도 같이 생각했다. 어머니는 어딘가에 있다. 거기까지가 지오가 확실히 아는 전부였다.

지오는 화면 맨 위를 봤다. 문서 머리에 발행 기관이 적혀 있었다. 회사 이름이 있고, 그 아래 부서 이름이 있었으며, 부서 이름은 네 글자였다.

`서울지부`

지오는 그 네 글자에서 멈췄다. 지부라는 말은 본부가 있다는 뜻이고, 본부가 있으면 지부는 하나가 아니다. 서울지부가 있으면 다른 지부도 있고, 다른 지부에도 이런 표가 있을 것이다. 이런 표가 몇 개나 있는지 지오는 몰랐다.

지오는 노트북을 덮었다. 덮고 나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감고 나서도 여섯 자짜리 부호가 눈꺼풀 안쪽에 남아 있었다.

“오빠.”

“…어.”

“괜찮아?”

“어.”

거짓말이었다.

셋째 날

지오는 다시 명단을 열었다. 이번에는 어머니 줄이 아니라 처음부터 훑었다. 이름을 하나씩 읽으면서 내려갔고, 아는 이름이 나오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내려갔다.

나종배라는 이름이 있었다. 만 78세, 이송된 날은 지오가 같은 차에 탔던 그날, 상태 칸은 `수용`, 처리자 칸은 비어 있었다. 그날은 지오가 명단을 만지지 않았으니까.

지오는 계속 내려갔다. 그러다 한 이름에서 멈췄다.

세 글자였다. 지오가 열아홉 살까지 매일 들었고 그 뒤로 육 년 동안 한 번도 소리 내어 부르지 않은 이름이었다. 흔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도 아니었다. 나이 칸이 있었고, 만 나이가 맞았다.

지오는 그 줄을 오래 봤다. 이송된 날이 적혀 있었다. 지오가 근무를 시작하기 훨씬 전이었고, 상태 칸은 `수용`이었으며, 그다음 칸은 비어 있었다. 스크롤을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할 방법이 있었다. 생년월일 칸이 있었으니 열어보면 된다. 그 칸 하나만 보면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아는 데 삼 초면 됐다. 지오는 열지 않았다.

왜 안 열었는지 지오는 자기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무서워서라고 하기에는 이 밤에 무서운 것을 여러 번 봤다. 미워서라고 하기에는 미워하는 데도 힘이 드는데 지금 지오에게는 힘이 없었다. 지오는 스크롤을 내렸고, 그 이름이 화면 위로 사라졌다.

셋째 날 오후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병실 텔레비전은 소리를 작게 해놓고 늘 켜져 있었다. 지현이 심심해서 켠 것이 아니라, 아무 소리도 안 나면 병실이 너무 조용해져서 켜둔 것이었다. 거기 회사 이름이 나왔다.

발표문이 있었다. 화면에 문서가 뜨고 앵커가 읽었다. 지오는 그 문장들이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 알 것 같았다. 3주 동안 회의 자료를 옮기면서 그런 문장을 여러 번 봤으니까. 강남 시설을 폐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름이 나왔다.

`강인규`

전 센터장, 만 54세, 개인적 일탈, 회사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한 행위. 앵커가 그 네 마디를 차례로 읽었다.

개인적 일탈. 11년 동안 2,000명이 넘는 사람의 자료를 그 사람 이름으로 정리했다고 했는데, 그 자료를 누가 받았고 누가 결재했고 누가 다음 분기 계획에 넣었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 사람 혼자 한 일이 됐다.

발표문에는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서울지부는 인지하지 못했다는 문장이었다. 그 아래 본사는 더욱 인지하지 못했다는 문장이 있었고, 두 문장 사이에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근거가 필요한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화면이 바뀌었다. 기자회견장이었고, 회사 쪽 사람 셋이 나와 앉아 있었으며, 카메라가 그 뒤를 잠깐 잡았다. 뒤쪽 유리벽 너머에 다른 회의실이 있었다. 거기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그중 하나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고 자리에 앉는 중이었다.

지오는 그 여자를 알아봤다. 코트 차림으로 통제선 안쪽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방호복도 헬멧도 없이, 신발도 안 젖은 채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두 단어를 말했던 사람.

표본이야. 확보해.

카메라가 지나갔다. 그 여자는 화면에 이 초쯤 있었고, 그러고 나서 카메라는 앞쪽 세 사람으로 돌아갔다. 앞쪽 세 사람이 고개를 숙였는데, 숙이는 각도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지오는 그 여자의 이름을 몰랐다. 그날 밤에도 몰랐고 지금도 몰랐다. 화면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고 앵커도 부르지 않았으며, 그 여자는 회견장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리벽 너머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자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셋째 날 저녁

뉴스가 한 꼭지 더 나왔다.

시민단체 연합이라고 했다. 여러 단체가 모여 만든 기구라고 했고, 아르케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회견장에 열 명쯤 나와 앉아 있었고 뒤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으며, 한국 언론은 그 단체를 줄여서 불렀다.

엘피스.

지오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데가 하나 있었으니, 빨랐다.

회사 발표가 오후 두 시였고 이 회견은 오후 네 시였다. 두 시간 사이에 저 사람들은 회견장을 잡고 자료를 만들고 영상을 편집하고 현수막을 걸었다. 두 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지오는 그 계산을 침대에서 했다. 3주 동안 사무실에서 서류를 만져본 사람의 계산이었다. 자료 한 부를 인쇄해서 회의실에 돌리는 데도 반나절이 걸렸으니, 저 정도 분량이면 며칠은 걸린다.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무엇을 기다렸는지 지오는 모른다. 다만 저 사람들은 회사가 꼬리를 자르기를 기다렸고, 자르는 순간에 맞춰서 나왔다. 기다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뜻인데, 알고 있으면서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지오는 그 생각을 오래 하지 않았다. 지금 지오에게는 그 생각을 끝까지 끌고 갈 힘이 없었다.

회견장에서 영상을 틀었다.

그날 밤 강남역 사거리였다. 먼 데서 찍은 것이었고 흔들리고 있었으며, 화면 가운데에 잔해 더미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 위에 올라가 콘크리트를 들어내고 있었고, 그러다 한 자리에서 여럿이 몰려들었다. 들것이 들어갔다.

지오가 실려 나오고 있었다. 슈트가 반쯤 벗겨져 있었고 오른팔이 들것 밖으로 나와 있었으며, 옆에서 누가 그 팔을 안으로 넣어주고 있었다. 화면 아래쪽에 지현이 있었는데 화질이 나빠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오는 그 장면을 처음 봤다. 자기가 실려 나오는 것을 보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그리고 화면 오른쪽 아래에 마크가 하나 박혀 있었다.

그 단체의 마크였다. 영상 내내 거기 있었다. 지오가 실려 나오는 동안에도 있었고, 사람들이 콘크리트를 들어내는 동안에도 있었으며, 화면이 끝날 때까지 있었다. 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좋지 않은지 말로 만들지 못했다. 저 사람들이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었고, 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지오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저 영상은 지오의 것이었다. 지오가 그 안에 있었고 지오가 실려 나왔는데,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마크는 지오의 것이 아니었다.

지현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지오는 그 애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보면 이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될 것 같았고, 지금 그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셋째 날 밤

회견이 이어졌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십 대쯤 되는 남자였고 정장을 입었으며, 준비한 종이를 보지 않고 말했다. 준비한 종이를 안 보는 사람은 준비를 아주 많이 한 사람이다.

“시민 여러분이 보셨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국가가 못 한 일을 한 사람이 했습니다.”

지오는 그 문장에 이상하게 화가 났다. 그날 밤에 지오 혼자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이 있었고, 벽을 세우고 죽은 사람이 있었고, 라이터를 켠 사람이 수백 명 있었으며, 콘크리트를 들어낸 사람들이 있었다. 한 사람이 했다고 말하면 나머지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름을 불렀다.

“애쉬.”

지오는 그 두 글자를 들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그날 밤 강남대로에 재가 내렸고, 그 재 속에서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이름을 모르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화면 아래에 자막이 떴다.

`애쉬`

지오는 그 두 글자를 봤다. 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읽어보지도 않았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지오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정리했다. 병실에 사람이 여러 번 왔다. 의사가 왔고 간호사가 왔고 경찰이 두 번 와서 진술을 받아 갔는데, 이름을 뭐라고 부르면 되겠느냐고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지현이 텔레비전을 껐다. 껐다기보다 리모컨을 눌렀는데 그 버튼이 껐다. 화면이 검어지고 나서 병실이 조용해졌고, 두 사람은 그 조용한 데 한동안 있었다.

“오빠.”

“어.”

“…저거 오빠 아니야.”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는데,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셋째 날 밤, 늦게

지오는 휴대폰을 봤다. 지현이 집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3주 동안 사무실 서랍에 있었고 배터리가 나가 있었으며, 충전하니까 알림이 백 개 넘게 밀려 나왔다. 지오는 알림을 하나씩 내렸다.

박성호의 부재중 전화가 열한 통이었다. 첫 통은 3주 전이었고 마지막 통은 그저께 새벽이었다. 그 사이에 문자가 몇 개 있었는데 전부 짧았다.

`전화 좀 받아라`

`야`

`살아있냐`

마지막 문자는 그저께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이었다.

`국밥 사준다니까`

지오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걸어서 살아 있다고 말하면 되고, 그러면 저쪽에서 욕을 한 바탕 하고 그러고 나서 국밥 얘기를 다시 할 것이다. 지오는 걸지 못했다.

왜 못 거는지도 알았다. 전화를 걸면 그 사람이 물어볼 것이고, 물어보면 지오가 3주 동안 무엇을 했는지 말해야 한다. 명단에 이백열셋을 올린 것도 말해야 한다. 그 얘기를 할 준비가 아직 안 됐다.

최유진의 카톡이 있었다. 3주 동안 끊긴 적이 없었다. 유실물 얘기, 박성호 얘기, 지오 자리에 새로 온 애 얘기. 답을 한 적은 세 번이었고 세 번 다 한 글자였다. 마지막 메시지는 어제 낮이었다.

`그거 너지`

세 글자였다. 물음표도 없었다. 유진은 물음표를 잘 쓰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안 붙였고, 안 붙였다는 것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지오는 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할 말은 있었다. 다만 그 말을 하고 나면 이 사람도 저쪽 세계에 들어오게 되고, 저쪽 세계는 지오가 방금 겨우 나온 데였다. 읽음 표시가 하나 늘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흘째 아침

민현석이 왔다. 지오는 문 쪽에서 나는 소리로 그 사람인 줄 알았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3주 동안 지오는 그 발소리를 여러 번 못 들었고, 못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억하게 됐다.

병실 문이 반쯤 열렸다. 민현석은 들어오지 않았다. 문틀 안쪽에 서서 지오를 봤다. 정장 차림이었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으며, 3주 동안 매일 봤던 그 얼굴이었다.

지현이 일어섰다.

“괜찮아.” 지오가 말했다.

지현은 앉지 않았다. 서서 그 사람을 보고 있었고, 민현석은 지현 쪽을 한 번 보고 나서 다시 지오를 봤다.

“발령 났습니다.” 민현석이 말했다. “다음 주부터 다른 데로 갑니다.”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인수인계할 게 있어서 며칠 더 있습니다. 그다음엔 서울에 없어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민현석이 잠깐 지오를 봤다.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3주 동안 여러 번 들은 대답이었다. 그때마다 지오는 그 대답이 벽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이 사람은 벽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벽을 들고 다니는 사람 같았고, 그 벽이 이 사람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민현석이 문틀에서 손을 뗐다. “한지오 씨.”

“…네.”

“몸조리 잘하세요.”

그것이 전부였다. 인사도 사과도 설명도 없었다. 3주 동안 지오를 지하에 두었던 사람이 문틀에 서서 몸조리 잘하라고 말하고 돌아섰는데, 그 목소리가 배차를 말하던 목소리와 같았다.

지오는 그 뒷모습을 봤다. 복도 조명 아래로 걸어가는 동안 발소리가 나지 않았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두 시간 전에 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오는 그 질문을 만들어놓고 답을 찾지 않았다.

나흘째 낮

지현이 장례식에 갔다. 나종배의 장례였다. 연고자가 없어서 시에서 치른다고 했고, 사흘장이었으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지오는 못 갔다. 앉는 것까지는 되는데 서는 것이 안 됐다.

“뭐라고 해.” 지오가 물었다.

“…뭐라고 하냐니.”

“가서 뭐라고 말해야 되는지.”

지현이 잠깐 생각했다. “이름 부르면 되지.”

지오는 그 대답에 아무 말도 못 했다. 이 애는 그 노인을 만난 적이 한 번밖에 없다. 수용동 문이 열리고 나서 사람들이 나갈 때 줄 맨 앞에 선 사람이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면 된다고 했다.

지현이 나가고 병실이 비었다. 지오는 창을 봤다. 밖이 밝았고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버스가 섰다가 갔다. 세상은 나흘 만에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고, 그것이 정상이었다. 지오는 그 정상을 오래 봤다.

나흘째 저녁

지오는 명단을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세어보려고 했다. 3주 동안 대기에서 수용으로 옮긴 이백열셋 중에, 그날 밤 인도에 앉아 담요를 두르고 있던 사람이 몇인지 세어봤는데 셀 수 없었다. 명단에는 그날 밤 누가 어디 앉아 있었는지가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지오는 다른 것을 세었다. 상태 칸이 `수용`인 줄과 그렇지 않은 줄을 나눠 셌다. `수용`이 아닌 줄이 많았다. 관찰이 있었고 반출이 있었고 폐기가 있었으며, 그중 반출 뒤에는 전부 여섯 자짜리 부호가 붙어 있었다. 부호는 여러 종류였는데, 여러 종류라는 것은 여러 군데라는 뜻이다.

지오는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했다. 묶어서 실어 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지오는 몰랐다. 그날 새벽에 지오가 채운 여덟과, 그 뒤에 넘어간 사람들. 소방과 경찰이 묶었고 어딘가로 실려 갔고, 그 뒤로 뉴스에 안 나왔다. 병원이라고 했는데 어느 병원인지는 안 나왔다.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 강인규가 마지막에 안개를 뿜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서른 몇 명이 쓰러졌고 구급차에 실려 갔으며, 뉴스에서는 유독가스 흡입이라고 했다. 중독이라고 했다. 지오는 그 단어를 화면에서 봤고, 화면에서 본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나흘째 밤

지현이 돌아왔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디서 빌렸는지 지오는 묻지 않았다.

“어땠어.”

“…사람 없었어.” 지현이 의자에 앉았다. “시청에서 나온 사람 둘이랑 나랑. 그게 다야.”

지오는 천장을 봤다. “…그래.”

“근데.” 지현이 말을 이었다. “내가 이름 부르니까 그 사람들이 이상하게 봤어. 유족이냐고 물어보더라.”

“…뭐라고 했어.”

“아니라고 했어.” 지현이 잠깐 있다가 덧붙였다. “근데 그러고 나니까 내가 그 사람 뭐라고 불러야 되는지 모르겠는 거야.”

지오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이름은 안다. 지오는 한 달 전에 그 이름을 처음 들었고 사흘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오에게 무엇이었는지는 부를 말이 없었다. 2년 동안 아침에 고개를 숙이던 사람, 같은 차에 실린 사람, 이름을 불러준 사람.

닷새째 아침

지오는 앉을 수 있게 됐다. 앉는 데 이 분이 걸렸고 앉고 나서 십 분쯤 어지러웠지만 앉았다. 지현이 뒤에 베개를 받쳐줬고, 지오는 그 상태로 창을 봤다. 창밖이 밝았다.

“오빠.”

“어.”

“창문 열까.”

“…어.”

지현이 창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병실 안의 공기가 밀리면서 커튼이 한 번 부풀었고, 지오는 그 바람을 얼굴에 받았다. 차가웠다.

지오는 눈을 감았다. 3주 동안 창이 없는 데서 살았고, 그 3주가 끝나는 데 하룻밤이 걸렸으며, 그 하룻밤에 많은 사람이 사라졌다. 지오가 명단에 올린 사람들과, 지오가 문을 열어 꺼낸 사람들과, 지오를 위해 벽을 세운 사람. 세면 사람이 된다. 지오는 이제 그 사실을 알았고, 알기 때문에 앞으로 오래 세게 될 것이었다.

밖에서 버스가 서는 소리가 났다. 지오는 눈을 뜨지 않았고, 바람이 계속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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